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월급이 없는 생활이란..

김 차장의 퇴사 그  후의 삶에 대해 6편

187만 원의 실업급여 생활의 시작


실직을 하고 그동안 제가 급여에서 원천징수당했던? 고용보험의 혜택을 보게 되었습니다.


집 근처 고용노동부 지부에 가서, 실업 사유와 실업 인정과 관련한 서류를 작성하고,

실업급여라는 것을 신청해서 25일? 주기로 약 187만 원 정도의 금액을 수령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담당 주무관님께 들었습니다. 기간은 대략 10개월 가까이.

작년 4월 신청, 수령했던 실업급여 카드

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중간에 실직 기간도 없었고, 한도액까지 고용보험을 납입한 경우라

해당이 된다고 이야기해주시더군요.


처음엔, 뭐 이 187만 원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살지 않겠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만,

생각보다 이 돈의 소중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게 되었고, 몇 개월이 흐르니, 이 날을

급여일처럼 기다리게 되더군요.


약간의 퇴직금과(제 경우 계열사 전배로 인해 중간정산을 받은 상황이라 수령 퇴직금이 적었습니다)

위로금이 있었지만, 퇴직 후 그동안 급여생활자로 활용했던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상환 통보를

받았던 터라, 이를 변제하니 손에 쥔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평소 급여에 체 1/3이 되지 않은 돈으로 일단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었지요.




물론, 퇴사 전부터 퇴사 이후까지 구직활동에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과 현실은 많이 다르더군요.

40대 중반에 관리자급 연배와 연차의 직원을 구하는 곳은 전문경영인이나 전문직렬이 아닌 곳이면

수요 자체가 극히 드물었고, 특히 일반 사무업무를 담당했던 저와 같은 General Staff과,

legacy media에 종사했던 마지막 경력으로는 취업의 문은 쉽지 않았었습니다.


고용노동부에서 알선해 주었던, 취업 포탈을 통해 수십 차례 이력서를 전송해 보았지만,

비 장애인이라서, 여성이 아니라서, 대기업 경력자라서, 기술이나 자질이 부족해서,, 등

여러 가지 사유로 서류심사에 탈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생활을 하는 데 있어, 줄여야 하는 것들을 계산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계살림에 대해 아내와 먼저 점검을 해 봤습니다.


우리 집 살림에서 고정비와 변동비로 구분을 하고, 고정비 중 필수로 나가야 하는 것들과

조금은 불편하지만, 삭감하거나 줄일 수 있는 것들을 추려 보았습니다.


변동비는 아이 교육비와, 식비(외식비), 여가와 관련된 비용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아이 교육은 멈출 수 없는 영역이었기에 외식비와 여가와 관련된 비용들을 대폭 줄이기로

협의 아닌 협의를 하고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이 교육비는 줄이지 않으면서, 부모님께 조금씩 드렸던 용돈을 줄였을 때 미안함과

죄책감이란...


제가 부자는 아니었지만,

드라마에서 보면 부자들이 잘 살다가 망해서 어려워졌을 때 더 빠른 속도로 몰랐다는 이유가,

그들이 살았던 썼던 씀씀이가 하루아침에 변하지 못하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라고

하던데요. 어떤 느낌인지 아주 조금은 알 수가 있었습니다.


대형마트에 가서 늘 상 카트에 담았던 과일을 만지작 거리게 되고,

늘 먹던 브랜드의 유제품(우유, 치즈, 요구르트)이 아닌 PB제품이나 증정상품이 있는 것을 담게 되고,

국내산이 아닌 수입산 돼지고기를 사게 되고,

아들 녀석이 원하는 간식을 다 사주지 못하게 되고,

좋아하는 수입맥주가 아닌, 1,000원 미만의 코끼리 맥주를 담게 되더군요.


한 두어 달은 적응이 쉽게 되지 않았습니다.


"가난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행복이 문틈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었던가요.."

아내와 다툼도 종종 있었고, 이 모든 게 회사 때문이라는 어리석은 원망도 수시로 하고 그랬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렇게 대체할 수 있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말이죠)


집에 있는 시간이 늘고 특히 혼자 있는 시간이 늘면서 또 아침에 고정적으로 나가는 곳이 없어지니,

자연스럽게 '술'을 가까이 더 가까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퇴근하고 아이가 잠이 들면, 불 꺼진 거실에서 혹여 아내와 아이가 깰 까 봐 다른 방에서

술을 마시면서 시름을 잊곤 했습니다.


뭐랄까, 그 액체 한잔 두 잔이면 지금의 고민과 괴로움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그런 물약과 같은 느낌으로

들이켰던 것 같았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숙면을 취할 수 없던 때가 많아서, 술을 마셔도 다음 날 늦게 까지 누워 있을 수가 있다는

그런 안일함이 더 악순환으로 저를 이끌었던 것 같았습니다.


출퇴근을 할 때 매일 아침 일어나 운동을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했던 저의 모습은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점점 사라지고, 진짜 '백수'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며칠 동안 현관문 밖을 나가지 않는 생활도 자주 반복이 되던 어느 날,

현관 앞 거울을 통해 비친 제 얼굴이 참.. 흉측하더군요


술에 절어 눈 빛은 부어있고 흐리멍덩한 눈동자에, 정돈되지 않은 수염과 머리.


"왜 이렇게 사는 거냐.." "그 깟 회사가 뭐라고.."


스스로가 많이 초라해 보였습니다. 비단 비치는 외모뿐 아니라,

내가 회사라는 곳에 참 많이 의존하면서 살았구나라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 회사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실제론 그게 아니었나"라는 생각까지..


아직 40 중반인데, 너무 소극적으로 사는 건가, 줄이기만 하는 삶을 살기엔 아직 젊은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라도 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누가 죽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처져 있는 거지..




퇴근 후 돌아오는 아내가 이야기하더군요.


"집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커피도 마시고 운동도 하고 뭐라도 하라고"

"배우고 싶은 것 있으면 배워 보라고"


백수가 무슨 커피고, 무슨 운동이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아내 말을 되뇌어 보면서, 그리고 스스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이런 식의 생활은 아니라는 것을..


쉬운 것부터, 뭐라도 바꿔 보자.

마음까지 가난해지진 말자고..


(다음 편에 계속)



"김 차장의 퇴사 그 후의 삶"은 진행형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재택근무 중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