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그 때의 사건으로 나는 너무나 큰 쇼크를 받았고
그때서부터였을까?
학원에 출근하기도 전부터 두통을 시작으로
온 몸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아이들이 예뻐보였던 나는 어디로 가고,
이 아이들이 혹시 또 나를 힘들게 할까
걱정이 가득한 채로 하루하루 수업을 하는
나를 보며 ‘이게 맞는 걸까?‘ 싶었다.
몸은 자꾸만 아파오고,
밀려드는 부담감과 더 극심한 책임감.
그리고 내가 뭘 어디까지,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들로
매일 두통을 달고 살았다.
대학병원에서 CT,MRI,
뇌파검사 등등 그 많은 검사를 해도
원인도 치료법도 없이 두통은 계속됐다.
그러던 와중에
나는 타 과목까지 맡게 되면서,
점점 더 피폐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열심히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더 열정적으로 수업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며 아이들과 함께했다.
퇴근 시간이 지나도 학원에 남아
할 일이 없나 찾아서 하고,
뭐라도 더 도움이 되고 내가 더 발전할
일들을 찾아하며 정말 열심히 했다.
인정받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원장은 내가 제시간에 퇴근하면
싫은 표정을 지으며 다른 쌤들께 날 찾았다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 회의를 하고 난 뒤였던 것 같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하고,
중고등학교 때도 백일장에서 수상을 한 적이
꽤나 있었던 날 알아본 원장은
국어 수업이나 논술 수업에도 나를
투입했고 난 그렇게 호구가 되었다.
열정으로 살아남겠다, 내가 버텨보겠다
마음을 먹고 처음보는 학원 아이들과도
반갑게 안부를 묻고 인사하고,
좀 큰 아이들과는 학업 고민, 진로 고민 등을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주며 나름의 삶의 숨통과
보람을 찾아갈 때 즈음...
갑자기 자기가 수업하는 아이들 외에는
인사도 하지 말라는 원장의 말에
어이를 상실했다.
.
.
.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나는 그저 아이들에게
어떻게해야 하나라도 더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나’이기에...
이런 처사는 너무 황당했고,
납득도, 이해도
전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더이상 이 곳에서의
미래도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결국 1년을 버티다 퇴사를 결심했다.
.
.
.
4편에서 계속
[“선생님, 같이 일해보시죠!”_2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