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아, 속상해.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암 투병을 하고 항암을 하며 암을 극복한 여주인공의
스토리를 보면서,
'참 외로웠겠다... 많이 아프고 힘들었겠다...'
생각하며 눈물을 왈칵 쏟아냈었다.
괜시리,
하염없이 흘러 내리는 눈물에, 콧물까지,
누가보면 내가 그렇게 아팠는 줄 알았을만큼
그 상황이 참 어느 정도 와닿았다.
나는,
꽤 오랜시간 난치병을 투병하면서,
너무 많은 시간을 홀로 울었고,
여전히 또 울고 또 운다.
그러면서 느끼는 건,
'환자의 마음은 환자가 아는 것'이랄까?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나와 같은 질환을 가진 이들이,
아프지만,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일어나서 걷고, 뛰고, 웃고, 떠들며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주제 넘게도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치만, 나보다 더 아프고 힘든 이들이
세상에 왜이리 많은지...
아무리 세상사 모든 일보다도
내 손에 박힌 작은 가시가 더 아프다지만,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암 투병을 하고 항암을 하며 암을 극복한 여주인공의
스토리를 보면서,
'참 외로웠겠다... 많이 아프고 힘들었겠다...'
생각하며 눈물을 왈칵 쏟아냈었다.
괜시리,
하염없이 흘러 내리는 눈물에, 콧물까지,
누가보면 내가 그렇게 아팠는 줄 알았을만큼
그 상황이 참 어느 정도 와닿았다.
나는,
꽤 오랜시간 난치병을 투병하면서,
너무 많은 시간을 홀로 울었고,
여전히 또 울고 또 운다.
그러면서 느끼는 건,
'환자의 마음은 환자가 아는 것'이랄까?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나와 같은 질환을 가진 이들이,
아프지만,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일어나서 걷고, 뛰고, 웃고, 떠들며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주제 넘게도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치만, 나보다 더 아프고 힘든 이들이
세상에 왜이리 많은지...
아무리 세상사 모든 일보다도
내 손에 박힌 작은 가시가 더 아프다지만,
'초민감자'인 나의 경우는,
주변의 슬픔도, 아픔도 너무나 세게 느낀다.
그래서일까?
내가 칼이나 종이에 손을 베지 않아도,
그때의 그 느낌을 생생히 전달받아 소름이 돋거나,
고통을 느끼기까지 하는 정도이다.
이런 사람들을 '초민감자'라고 부른다는 걸
어떤 기사에서 본 후, 다 내 얘기 같았다.
한편으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세상에 나처럼
과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것에
안도하기도 했다.
이렇다보니, 난 슬픔에 취약하고,
불쌍하고 잔인하고 징그러운 건 볼 수 없다.
특히, 어린아이들이나 동물들이 다치거나 학대받는 건
글로도 읽기가 어렵다...
어쨌든,
그래서 난 타인의 아픔에 잘 공감하는 편이지만,
그만큼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에 있어서
어려움이 없으나, 이로 인해 가끔 내가 우울에 빠져
힘이 들거나 가라앉을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극심한 두통과 흉통에 힘이 들어도,
내가 이걸 감수하면 상대가 조금 더 편해질 수 있으니
그걸로 됐다고 참는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공황과 함께 와서,
적당한 선에서 잘라내는 법을 익히는 중이다.
주변에도 아픈 사람들이 꽤 있고,
가족들 역시 환자들이 꽤 있다 보니,
아픈 사람에게 특히나 마음이 여린 나는,
아픈 사람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나누는 편이다보니
늘 초감각적인 상태인 것 같기도 하다.
이런 현실이다보니 제 3자가 보기엔,
내가 환자가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 같을 수밖에.
내가 말하지 않는 이상 티도 안나지만,
매 순간,
매 초,
숨을 쉬는 그 순간에도 흉부의 근육의 통증,
등의 통증, 어깨의 통증들이 계속된다.
이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섬유근통 환자 외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나는 나의 고통을 누군가가 1/10000이라도
알아주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저 난치병이라는 단어에 안타까워하고,
프로그램을 통해 보게 된 정보만 갖고
나의 고통의 정도를 일반화하는 게 아니라,
나의 매 순간이 얼마나 치열한지,
나의 매일이 얼마나 힘겨웠는지를 누군가
알아주길 바랐었던 것 같다.
빛 좋은 개살구처럼,
겉은 번지르르 멀쩡해도, 속은 영 이모양이다보니,
늘 꾀병이다 오해받고, 놀림받던 내가 참 안쓰럽기도 했기에,
누군가는 부디, 나의 고통을 진심으로 알아주길 바랐던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이런 걸 원했구나를 알아가고 있기도 하고,
왜 이런 걸 원했을까를 다시금 새겨본다.
며칠 전,
한 친구가 나의 상황을 이야기 도중 듣고 나서,
내 앞에서는 아프단 말도 못하겠다고 하는데 그 말이
그날따라 왜이리 아픈건지...
환자이지만 환자이긴 싫고,
환자이긴 싫지만, 내 상황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양가감정들 때문인지, 이상한 변덕스러운 마음이 드는
나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치만... 이게 사실인 걸.
아픔과 고통의 정도를 통계치마냥
정확하게 어느 정도다 일반화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감사하다 생각하고 살아가는 매일에,
나보다 더한 이들 역시 열심히 살아가는 그 매일에,
여기저기 너무 아파 눈물이 나기도 하고,
흐린 날씨에 컨디션이 더 안좋기도 하며 투덜이는 내가
'아파'라는 말조차 과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주 빠르고, 강렬하게.
고통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스치기에...
이 모든 고통들이 자고 일어나면 싹 사라져서
모두가 아프지 않고, 매일 웃을 수 있는 날들이
지속되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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