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돌이킬수 없는 현실에…
화장하는 데엔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기다리는 내내 가슴이 아파서 울고, 또 울고,
다시 울었다.
화장이 모두 끝났을 때, 기계가 열리고
갑순이의 마지막 흔적이 보였다.
모든 부위는 산산이 가루가 되었고,
두개골만이 그 형체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직원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쓸어 담아
마지막으로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뼈를 작은 절구에 담아 빻기 시작했다.
곱게 빻아진 하얀 뼛가루는
작은 나무로 만들어진 유골함에 담겼다.
“반영구적이라 오래 보관하실 수 있어요.”
직원은 유골함을 고급스러운 보자기로
정성스럽게 싸서 묶어주었다.
나는 그것을 가방에 넣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허무했다.
두 팔로 안아야 하는 갑순이가…
작은 유골함에 담겨 가방 속에
들어가져 버리다니.
이 모든 일들이, 하루에 일어났다.
서울에 도착했고, 익숙한 집으로 가는 길을 걸었다.
익숙한 문을 열고, 익숙한 방문을 열었다.
늘 내가 자던 침대 머리맡에
갑순이의 유골함을 놓았다.
작은 방 어딘가에, 갑순이가 있는 것 같았다.
어딘가 구석진 곳에 움크려 숨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름을 부르면 금방이라도
‘우다다’ 소리를 내며 내 품에 뛰어들 것만 같았다.
약을 끊고 단 한 번도 마시지 않았던 술을 찾았다.
다시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올까 봐
철저히 금주해왔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술이 들어가니 감정이 격해졌다.
휴대폰에 저장된 사람들에게
마구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이성이 빠져나가고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
마치 육신만 움직이는 좀비처럼…
술을 들이켰다가, 전화를 걸었다가,
휴대폰 속 갑순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다가 크게 울다가…
그렇게 나는 쓰러져 잠에 들었다.
깊지만 얕은 잠이었다.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에 깼다.
속이 너무 좋지 않았다.
냉장고를 열어 콜라를 꺼내 마셨다.
“갑순아…”
이름을 불러봤다.
하지만 갑순이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 리가 없다.
냉장고 앞에서 다시 힘없이 주저앉았다.
거실에는 갑순이의 배변 패드가 그대로 있었다.
어제 오전, 정신이 없어서 미처 치우지 못한 것이다.
창고 같은 작은 방엘 들어가 창문을 열고
담배를 물었다.
연거푸 세 개비를 피워서, 속에 있던
답답함을 내뱉었다.
그곳을 나와 큰방으로 들어갔다.
컴퓨터를 켜고, 그동안 사진을 모아뒀던
폴더를 열었다.
사진 폴더 안에는 ‘갑순이’라는
이름의 폴더가 따로 있었다.
그 안을 열어, 갑순이의 사진과 영상 개수를 확인했다.
“13년 동안… 이거밖에 안 찍었었네…”
13년이란 시간이 적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무심했던 걸까?
잘 생각해보니,
안 예쁘게 나왔다며, 혹은 배경이 별로라며
지워버린 사진들이 떠올랐다.
이제 와서, 그 지운 사진들조차 너무
소중했던 것들이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갑순이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목이 말라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로 향하거나,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작은 방으로 가는 것뿐이었다.
내가 머문 방의 밖은, 갑순이가 존재했을
때와 똑같았다.
도로 위의 자동차들은 여전히 어디론가
바쁘게 가고 있었고,
인도 위 사람들도 모두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 갑순이가 없어진 거 말곤 달라진 게 없네…”
당연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당연함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0월 중순이 넘어서며, 바람은 제법 시원해졌다.
작년 같았으면,
“자전거 타기 딱 좋은 날씨네” 하고 한강으로
나갔을 텐데… 이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상실한 채, 내 영혼은 점점 병들어갔고,
그럴수록 내 방은 점점 더 지저분해져 갔다.
밥을 거의 먹지 않아서 배가 고팠다.
갑순이가 떠나고 나흘째 되던 날,
편의점에서 파는 죽을 겨우 넘겼다.
죽이라 넘기기는 쉬웠지만,
그거마저도 넘기며, 왠지 갑순이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2023년 7월부터 신경정신과 약을 먹지 않았고,
병원에도 더 이상 가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약해진 나는 결국 다시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송준혁님, 어서 오세요. 너무 오랜만이네요.”
“네…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냈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나는 선생님 앞에서
수돗꼭지가 틀어진 것처럼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10년 넘게 다닌 병원이라,
의사 선생님도 우리 갑순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선생님… 목 저기 안쪽에서, 왼쪽 가슴 중간 사이가…
매운 건지, 뜨거운 건지 모르겠는데… 여기가 좀 불편해요.”
“괜찮아요, 준혁 씨… 살점을 도려낸 건데… 아픈 건 당연한 거예요.”
‘살점을 도려낸 거’란 표현이 너무 적절해서,
나는 그 자리에서 다시 소리 내어 울어버렸다.
선생님은 그저 화장지를 내밀며, 말없이 지켜봐 주셨다.
“준혁 씨, 약은 신경안정제 정도로만 처방해 드릴게요.
일주일 뒤에도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가 눈에 들어왔다.
대형 마트라 채소와 과일도 함께 살 수 있는 곳이었다.
뭔가에 이끌리듯 들어간 건,
주먹보다 작은 고구마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집어 계산하고 나왔다.
집에 돌아와, 더운 여름쯤 샀던 오븐에 고구마를 구워봤다.
설명서대로 20분, 그리고 다시 꺼내 뒤집고 20분…
다 구워진 고구마들을 꺼냈다.
이걸 해주려고 여름에 샀던 건데…
단 한 번도 해주지 못했다. 덥다는 이유로,
날이 좀 시원해지면 해줘야지…
미뤘었다.
“더운 거 참으면서 해줄 수 있었는데…
우리 갑순이, 먹는 거 정말 좋아하던 녀석인데…”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울다 보니,
밥은 안 먹어도 물은 마셔야 흘릴 눈물이
저장될 것 같았다. 그래서 쿠팡으로 1.5리터
생수 30병을 주문했다.
갑순이와 자주 갔던 공원을 혼자 터벅터벅 걸어갔다.
공원도 그대로였다.
이젠 제법 가을이 무르익어, 벤치 앞 나무들의 잎들이
가을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갑순이와 함께 앉았던 벤치에 나 혼자 앉았다.
여기서 우리는 각자 커피와 시저를 하나씩
마시곤 했었다.
이 공원의 터줏대감처럼 있던 길고양이와도
갑순이는 사이좋게 지냈었다.
내가 벤치에 앉아 슬퍼하는 걸 그 고양이도 아는지,
멀리서 나를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평소 알고 지내던 동생을 우연히 마주쳤다.
“형, 안녕하세요!”
“아… 기현이구나.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냈어?”
“아, 저 지금 큰아버지 댁에서 농사 배우고 있어요.”
“농사? 무슨 농사?”
“마늘 농사요…”
기현이는 서울 토박이로 자란 녀석이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였는데,
서울 사람답지 않게 순수하고 참 착한 아이였다.
“서울 깍쟁이가 농사라니… 농사도 쉬운 게 아닐 텐데?”
“하하하, 농사 쉽진 않죠. 그래도 재밌어요.
형, 커피나 한 잔 하실래요?”
기현이는 공무원 준비를 하던 시절,
한국사 공부하면서 이것저것 나에게 자주 묻곤 했었다.
나는 사학과 출신은 아니었지만,
책을 좋아해서 아는 만큼 알려주다 보니 가까워졌다.
“형… 근데 얼굴이 좀 많이 상하셨어요.”
“하… 티가 나나 보네.”
“무슨 일 있으셨어요?”
“너, 내가 강아지 키운 거 알지?”
“알죠. 갑순이… 맞죠?”
“어. 8일에 죽었어…”
내가 자주 갑순이 사진을 보여주고,
이야기도 많이 했던 기억이 있어서
기현이는 내가 갑순이를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덤덤하게 “갑순이가 죽었어…”라고 말했을 때,
많이 놀란 듯 보였다.
“형… 괜찮으세요?”
나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어느새 눈가엔 이슬이 고여 있었다.
“기현아… 나, 우리 갑순이 떠나고 나서… 정말 많이 느끼는 게 많아…”
“형… 많이 힘드신 거 다 보여요.”
“나… 예전에 세월호 기억나지?
그때 사람들 많이 슬퍼했잖아.
근데 난 사실 별로 슬프지 않았어.
내 일이 아니었으니까.
거기 피해자들 중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그래서 공감이 잘 안 됐던 것 같아.
안타깝다고는 느꼈지만… 남들처럼 슬프기까진 않았어.
그래서 난 내가 싸이코패스인가 싶기도 했어.
근데 뭐… 그냥 그땐 나 살기 바빴던 거야.
요즘은 유튜브나 인스타에 유기견 피드가 자주 보이더라.
그 강아지들도 꼬물이 때는 예쁘다고 귀여워하다가,
크고 병들고 안 예뻐졌다고 버린다잖아.
그런 인간들 보면… 진심으로 죽탱이 날리고 싶어져.
고양이나 강아지 학대하는 기사만 봐도 피가 거꾸로 솟아.
이 모든 게…
갑순이가 옆에 있었을 땐 몰랐던 것들이야.
갑순이가 무지개다리 건너고 나서야… 비로소 느껴졌어.
나는 어리석은 인간이라,
직접 겪어봐야 느끼는 것 같아…”
나는 마치 모노드라마처럼,
기현이 앞에서 독백을 쏟아내듯 말하고 있었고,
그런 내 말을 묵묵히 들어주는 기현이가 너무 고마웠다.
어느 날, 잠이 들었는데…
갑순이가 꿈에 나타났다.
꿈속의 장면은,
갑순이의 장례를 치렀던 그 장소였다.
꿈이지만… 여전히 슬펐다.
갑순이가 화장 기계로 들어가려는 순간,
나는 마지막으로 갑순이의 모습을 보고 싶어
얇은 담요 같은 것을 걷어냈다.
그 순간—
갑순이는 살아 움직이고 있었고,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너무나 생생했다.
꿈에서나마 갑순이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날 하루를 보내고 다시 잠이 들었을 때도…
또다시 갑순이가 꿈에 나왔다.
이번 꿈에서는
맘껏 갑순이를 쓰다듬고, 안아주고,
갑순이도 반갑다며
배를 보이며 애교를 부렸다.
꼬리도 힘차게 흔들며 나를 반겼다.
이 꿈도, 너무나 생생했다.
잠에서 깬 나는,
꿈의 의미가 궁금해져
네이버를 뒤져 이런 경우의 해몽을 찾아봤다.
대체로 “좋은 꿈”이라고 나와 있었다.
요즘 현대인들이 쓴다는 챗GPT에도
꿈 내용을 입력하고 해몽을 부탁해봤다.
챗GPT는 이렇게 말했다.
“강아지가 ‘나는 괜찮아. 너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 같아요.”
프로그래밍된 기계가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이…너무 반가웠고, 너무 고마웠다.
“갑순아… 너 정말 괜찮은 거 맞지…?”
가을이 지나고,
11월 겨울이 성큼 다가오는 추운 날씨 속에서—
나는,
아이폰 액정화면을 통해
그 무엇보다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