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우리 갑순이
가을을 넘어, 이제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어느 겨울보다 더 춥고, 더 어둡게 느껴졌다.
찬바람이 불 때면 늘 했던 일이 있었다.
해가 바뀌고 1월 3일, 갑순이 생일을 챙겨주는 것.
내 생일은 그냥 넘길지언정,
갑순이 생일만큼은 매년 꼬박꼬박 챙겼다.
“올해도 이제 두 달이 채 안 남았네…”
하지만 이젠,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럴 일이 없으니까.
갑순이의 유골함도 묻었고,
조금씩 갑순이가 정말 떠났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그 실감이 오히려 더 아프게, 가슴을 깊숙이 찌른다.
살아생전, 내가 갑순이에게 뭘 해줬을까?
생각해보면, 잘해준 게 하나도 없다.
가난하고 독고다이 아빠 잘못 만나서…
조금만 실수해도 혼내고…
그런 모습들만 떠오른다.
“혼냈어도, 삐지긴커녕…”
갑순이는 정말 성격이 밝은 아이였다.
13년 동안, 단 한 번도 삐진 적이 없었다.
혼을 내면 잠깐 시무룩했다가도
금세 내 품으로 파고들던 그런 아이였다.
이제는 나도,
갑순이가 없는 현실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중일까.
가끔은 갑순이 생각에
“그땐 그랬지…” 하며 피식 웃는 나를 본다.
“하… 나 음악하는 놈이었지…”
두 달이 채 안 남은 지금부터 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고, 녹음하고,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한다면—
갑순이 생일 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순아. 이번 생일엔 시저는 못 주지만,
널 위한 노래를 만들게…”
소리라는 건 공기의 파장으로 전달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서,
갑순이가 있는 무지개다리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노래를 부르게 된다면,
그 소리는 공기의 파장을 타고
퍼지고, 또 퍼지고, 또 퍼져서…
갑순이에게도 닿을 수 있겠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시작했다.
큐베이스를 열고, 구상부터 해야 했다.
하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갑순이는, 이 지구에서 유일한 레‘개’니까.
밝은 성격에 맞게 루츠 레‘개’ 스타일로…“
드럼 샘플을 하나하나 들어보고 신중히 골랐다.
작업을 어렵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떠난 갑순이를 위한 노래라고 해서
어둡고 슬프게 만들 필요도 없었다.
갑순이의 성격처럼, 밝고 따뜻하게 만들면 됐다.
소스 하나하나,
모두 갑순이를 생각하며, 갑순이와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골랐다.
그렇게 사흘, 나흘을 컴퓨터 앞에서
악기들과 씨름했다.
“1절, 2절… 가사는…”
가사는 13년의 시간을 담아내야 했다.
그건 내게 어렵지 않았다.
2012년 1월 3일 오후 6시부터, 갑순이와
나는 단짝이었으니까.
1절은 첫 만남, 2절은 함께했던 날들,
브릿지와 3절은… 갑순이가 떠난 날.
제목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 갑순이’
자손이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뭐하세요~”
“어휴~ 그냥 쉰내가 나~.”
“아하하, 형. 믹스랑 마스터링 좀 맡겨도 될까요?”
“노래? 또 뭐 만들었어?”
“네…”
“쩝… 뭔지 짐작 간다. 다 완성되면 데이터
메일로 넘겨.”
“네, 형. 고마워요.”
-가사
우리 갑순이
더 안아 주지 못해서
널 혼자 둔 적 많아서
널 지켜주지 못했어
후회밖에...
잘해준 게 난 없어
어쩜 이리 작고 눈이 예쁜 천사
손바닥보다 더욱 작은 꼬마
이름은 갑순이로 정해버리자
큰 거 안 바란다, 서른 해만 같이 살자
하품하고 넘어지고 놀고 자다 깨고
아직 애기라서 깜찍하고 설레죠
우리 부녀 사이, 12년 1월 3일
내겐 가장 좋은 날로 기억됐죠
더 안아 주지 못해서
널 혼자 둔 적 많아서
널 지켜주지 못했어
후회밖에...
잘해준 게 난 없어
사랑이 날 버리고 떠나버릴 때
남은 친구조차 모두 나를 버릴 때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버려질 때
나의 곁엔 갑순이, eh
웃을 때나 눈물을 마구 뱉을 때도
꼬순내 진동한 털복숭이 젤리로
내 얼굴을 어루만져 주던 갑순이
쓰러지는 나를 지켜주던 깡순이, eh
천사같이 착한 우리 아가
아장아장 걷던 꼬마 갑순이가
나와 함께 쉽게 넘긴 열세 살
앞으로 더 같이 이렇게만 살자
그러던 어느 날, 너는 잠에 들어
움직이지 않아, 일어나지 않아
설마설마하며 병원으로 뛰어
심폐소생에도 너무 늦어버렸어
내가 과연 너를 어떻게 보내
눈을 감고 잠든 것만 같아
멈춰버린 너와 나의 시간에
돌이킬 수 없는 현실에
이 노래로 이제 놓아줄게
가끔 비나 바람으로 찾아와 줄래?
나의 곁에 맴돈 걸 알기에
꼭 다시 만나, 다음 생에 eh
더 안아 주지 못해서
널 혼자 둔 적 많아서
널 지켜주지 못했어
후회밖에...
잘해준 게 난 없어
가사 틀을 잡고 다듬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내가 겪은 진심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갑순이가 옆에서 도와준 게 아닐까.
수월했던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음원 유통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음원을 낼 건데요,
정확히 1월 3일에 발매하려면 언제까지
제출해야 하나요?”
“발매 일주일 전까지는 주셔야 해요.
그러면 국내 플랫폼은 날짜 맞춰서 올라가고요,
해외는 조금 더 걸릴 수 있어요.”
“아… 모든 플랫폼에 동시에 1월 3일에
발매됐으면 해서요.”
“그럼 최소 2주 전에는 넘겨주셔야 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2주 전까지 데이터
드리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아직 한 달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트랙도 나왔고, 가사도 완성됐고,
가이드 녹음을 해보니 본 녹음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순아… 아빠가 정말 잘 녹음할게.”
녹음을 잘하기 위해,
가이드를 여러 번 녹음하며 연습했다.
발성이 잘 나오도록 컨디션 관리도 시작했다.
그렇다고 너무 힘을 줄 필요는 없었다.
릴렉스해야 했다.
무슨 일이든, 힘을 줘서 잘된 적은 없었으니까.
올해가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
큰 이슈가 생겼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는 뉴스였다.
계엄…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일이, 현실로 닥쳐온 것이다.
“가지가지 한다…”
하지만 계엄이 선포되든, 전쟁이 나든,
지금 내겐 중요한 일이 있었다.
나는 지금, 우리 갑순이를 위한 노래에
집중해야 하니까.
본 녹음을 시작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반복해서 다시 녹음했다.
작품에 어떤 큰 획을 그을 필요는 없었다.
이 노래는 다른 사람이 듣고 좋다고
말해주기를 바란 것도 아니다.
이건 오로지, 무지개다리에 있는
우리 갑순이를 위한 노래니까.
다른 사람의 의견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녹음을 완성했다.
각 트랙별로 믹스다운을 했고, 악기 반주
트랙들도 동일하게 믹스다운한 후
압축해서 자손이 형에게 메일로 보냈다.
며칠이 지나 자손이 형에게 연락이 왔다.
“믹스 다 끝냈어. 믹스하다가 다른 건 다
뮤트하고 기타만 솔로로 나오게 해봤는데
이것도 느낌이 좋더라.
그래서 두 가지 버전으로 나눴어. 한번 들어봐.”
자손이 형의 손을 거친 믹스·마스터링 결과물은
‘우리 갑순이’ 노래의 완성도를 확실하게 높여줬다.
“형, 감사해요… 기타 버전도 너무 좋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앨범 커버는, 갑순이 사진 중 웃는 얼굴이
가장 예쁘게 나온 걸 골라
아이패드로 블렌딩해서 만들었다.
애초에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것조차도 내 손으로 했다는 점에서
갑순이가 좋아해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완성된 커버와 함께,
음원들을 유통사에 발매 신청했다.
“네, 리치만님 안녕하세요. 자료들 모두 잘
받았고요. 신청하신 날짜인 2025년 1월 3일
낮 12시에 발매됩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 2024년도 몇 일 안 남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연말 모임이다 뭐다 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것들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저 우리 갑순이 생각을 계속하고 싶고,
그리워하고 싶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큰 이슈가 있어서,
따뜻함 없이 시끄러운 뉴스들만 속보로
터져 나오고 있었다.
보통은 매년 크리스마스가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던 것 같다.
적어도 서울이라면…
그런데 나에게는, 하늘에서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나는 갑순이에게 가끔 비나 바람으로
찾아와 달라고 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갑순이가 비가 되어, 나를 찾아왔다.
너무 반갑고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갑순아… 아빠 찾아온 거니?…”
우연이겠지만… 나는 저 빗방울들이
갑순이처럼 느껴졌다.
“아빠 혼자 울까 봐… 이렇게 왔구나, 요녀석…”
며칠이 지나 해가 바뀌었고,
2025년 1월 3일 낮 12시, 갑순이 생일에 맞춰
노래가 세상에 발매되었다.
멜론의 URL을 따서, 몇몇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그들은 하나같이 노래가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갑순이는 정말 행복했을 거라며,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주었다.
“이 노래를… 갑순이가 살아있을
때 불러줬어야 했는데…”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비는 다시 내릴 것이고,
그렇게 나는 갑순이를 자주 만날 것이다.
그리고 정말 선하게, 바르게 살아서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