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골드스미스 대학, 그 진수를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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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햇볕 아래 펼쳐진 아리따운 녹지의 이름은 'College Green'.
학교 안의 녹지라고 이름이 이렇게 지어진 걸까?
그렇다면 참으로 직관적인 명명법이 되겠다.
초록의 들판에는 사람들 몇이 흩뿌려져 있었다.
카페테리아 더 발코니에서를 제외하면 학교에서 영 사람 보기 힘든 시기에 방문했나 싶었는데, 내 아쉼움을 이곳에서 달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주말 오후의 서울숲처럼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건 아니었다.
각자 서로의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다.
확실히 학교에 사람이 없는 시기인 것은 확실했다.
녹색의 여유.
유럽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뒤따라 나오는 풍경이다.
이 컬리지 그린에는 돗자리를 펼치고 있는 무리도 있는가 하면, (내 기준에는) 대범하게도 보호장치 없이 폭신한 잔디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은 모르겠지만, 언제 생각이 날 때 잔디밭을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 생각보다 이 잔디밭에는 이름 모를 작은 벌레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앉아 있는데 이 친구들이 내 옷이나 신발을 타고 기어 오른다면?
거기다 잔디밭에서 걸릴 수 있는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유행성 출혈열'이나 '쯔쯔가무시' 같은 병들도 있지 않나.
그럼에도 살다 보면 기분이 너무 잔디에 앉고픈 기분이거나, 함께 하는 일행들의 분위기에 휩쓸리면 돗자리 없이도 과감히 잔디에 앉을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 일정하지 않은 맛이 또 지루하지 않게 삶을 사는 조미료가 되겠지.
그러나 적어도 이날은 그 의외성의 날이 아니었다.
눈으로 그들의 여유를 대리만족하는 것에 충분히 만족했다.
녹지 옆에는 내가 통과했던 건물과 전혀 다른 시대의 건물이 서 있어 시야에 바로 들어왔다.
잔디밭 옆을 천천히 산책하듯 걸어 문제의 건물에 다가갔다.
알록달록한 색감이 섞인 현대적인 유리 건물은 상당히 멋들어진 친구였다.
아쉽지만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직 학교에 돌아볼 곳이 남아있을 터였다.
내 탐험은 계속 되었다.
걷다가 호기심을 끄는 좁고 복잡한 길이 보이면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요리조리 걷다보니 RGB 컬러의 유리문이 예쁜 교회 하나를 지나가게 되었다.
뭔가 이 교회를 기점으로 캠퍼스가 끝난 느낌이 들었다.
주변에는 다시 주택가의 모습을 한 집들이 거리를 따라 쭉 이어져 있었다.
그 마을길을 따라 학교 밖을 걸었다.
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가정집이라고 생각한 곳들의 명판이 무슨무슨 학과, 무슨무슨 연구실, 무슨무슨 교수 이런 식으로 적혀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아하, 여기도 아직 학교구나!
한국에서 보기 힘든 신박한 모습이었다.
런던은 이런 건가? 아니면 학교 부지가 모자라서 인접한 주택들을 사들이거나 임대해서 쓰고 있는 건가?
뭐가 되었든 새로운 깨달음에는 앎의 만족감이 따라왔다.
조금 지쳐가던 발걸음도 다시 가벼워졌다.
내 기분을 대변하듯이 무지개색의 모자를 쓴 여학생이 내 옆을 지나쳐 갔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탐방을 시작했다.
다시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우연히 마주친 Goldsmith CCA, 바로 현대미술 센터.
미술로 유명한 학교라더니 아예 센터가 있구나!
기쁜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갔더니 오늘은 문을 닫는 날이었다.
슬픈 마음에 운영 요일을 확인하니 일주일에 쉬는 날이 꽤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이 그 중에 하나.
그래도 오픈 일을 숙지하고 다음에 오기로 결정.
다행히 다음 숙소로 옮기기 전에 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슬슬 학교를 떠날까 하는데 미술 센터 근처에서 해그리드 오두막의 축소판을 발견했다.
잔디밭 위에 위치한 오두막 느낌의 텐트에는 정원을 가꾸는 데에 필요한 도구들이 있었다.
가드닝 창고인 모양.
옆에는 나무 테이블과 벤치가 있었다.
넓지 않은 공간이라 잔디밭에 서 있으면 옆에 있는 건물에서 들려오는 대화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일렬로 서있는 2층짜리 학교 건물들.
대화소리는 그중 한 건물의 열린 2층 창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대화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그 어느때보다 영국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열린 창문으로 들리는 영어 대화의 분위기는 경쾌한 편이었다.
면담인가?
머릿속으로 상상해본 그들의 정체는 남자 학생과 여자 선생님.
그들의 대화를 배경삼으며 주변 여기저기의 사진을 찍었다.
그러던 와중 잔디 밭 위의 테이블에 사람이 바뀌었다.
누군가 하고 보니 그녀의 모자가 눈에 익다.
바로 무지개 모자의 학생이었다.
뭘까 이 반가움은?
그렇담 인사를 안 해볼 수 없겠지?
다가가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아까 옆의 길에서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너의 무지개 모자를 단 번에 기억했다고.
그러자 그녀도 나를 봤었다고 말했다.
나를 지나치며 학교에서 처음 보는 얼굴이라고 생각했었단다.
우리는 장난스럽게 악수를 나눴다.
그녀는 미대생이었다.
미대생이지만 취미로 음악도 만든다고 했다.
진심으로 놀라는 나의 반응에 신이 났는지 그녀는 직접 만든 작업물들을 보여줬다.
그녀는 아주 제대로 비트메이킹을 하고 있었다.
완전 힙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2023년의 잘나가는 대학생 캐릭터가 바로 내 눈앞에 나타난 것 같은 느낌.
외모부터 일상까지 힙한 그녀는 내 예상과 다르게 스코틀랜드 출신이라고 했다.
그녀는 내게 미대생들의 비밀 장소를 소개해준다고 했다.
비밀장소의 정체는 바로 미대생들의 작업실.
그녀는 나에게 비밀 투어를 선물했다.
ep.12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