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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한진 Mar 25. 2024

ep.13 세미누드 드로잉 클래스에 참석하다

학교 인근 탐험, 그리고 뜻밖의 드로잉 클래스

#사진을 클릭하면 커져요!
#그리고 다시 누르면 작아져요!



미대 투어를 마치고 드디어 학교 밖으로 나왔다.

쫄래쫄래 길을 따라 나오니 눈에 보이는 것은 '더 뉴 크로스 하우스'.

이것은 카페인가, 식당인가, 펍인가?

혹은 셋 다인가?


더 뉴 크로스 하우스
식사도 된다.
퀴즈쇼? 요일별 다양한 이벤트도 열리는 것 같다.


창문으로 내부를 살폈다.

바에 여러가지 술병들과 맥주 탭들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나는 이곳을 펍으로 분류하기로 했다.

한국과 다르게 이곳의 카페들은 식당과 구분이 모호한 경우가 꽤 있는 것 같다.


한바탕 걸었던 터라 몸이 많이 지쳐있었다.

그러므로 지금은 커피타임을 가지기 매우 적당한 시간.

나는 가장 먼저 레드 라이언 커피를 떠올리고 그쪽으로 움직였다.

잠깐동안 내 호기심이 가봤던 곳보다 새로운 장소인 여기 더 뉴 크로스 하우스에서 마시는 건 어떨까 제안했지만, 결국 내 마음의 캡틴은 레드 라이언으로 가라 말하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 옆에서 보이던 학교 건물로 드디어 들어와 봤다. 더 깊은 곳으로는 학생증이나 통행증이 필요한 모양
영국 런던 물가 체감용 메뉴판 사진 첨부


이제 지도를 보지 않아도 길을 능숙히 찾을 수 있었다.

룰루랄라 레드 라이언 커피가 있는 길로 접어들었는데.

쿠궁!

문을 닫았다!

오늘은 정기 휴무일인 것 같았다.

상당히 곤란했다.

지금 몸 상태가 커피를 절실히 원했기 때문.


그때부터 플랜 B로 사용할 카페를 찾는 것에 돌입했다.

약간 비상상황 돌입이랄까.

지도 검색은 물론이고 걸으면서 지나치는 모든 카페들에 눈이 갔다.



문 닫은 레드 라이언 커피, 절박한 내 마음, 그리고 런던 청년
미대 투어를 하고 나온 내 눈에 이제 이 뉴 크로스의 낙서들이 예비 거장 작가들의 예술 투혼이자 습작으로 보인다.
오늘 몇 번이나 지나는 줄 모르겠는 정류장 옆 학교 건물. 녀석 덕분에 학교가 내 관심을 끌 수 있었지.


정처 없이 방황하는 나는 결국 더 뉴 크로스 하우스 인근으로 돌아왔다.

결국 이곳인 건가.

가게 맞은편에 작은 책방이 보여 잠깐 구경했다.

한국에도 독립 서점들이 유행처럼 생기고 있다.

그것과 비슷하면서 다른 느낌이 있었다.


디스플레이


그리고 결국 들어온 이곳.

바로 더 뉴 크로스 하우스다.

저녁이 되기 전 어수선한 시간대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덕분에 조용히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생각보다 밝은 내부 분위기
개성 넘치는 맥주 탭들
한국인이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아까의 책방. 창문으로 아기자기한 내부가 일부 보인다.



시원한 커피와 폭신한 의자는 지쳐가던 내 몸을 회복시켜 주었다.

슬슬 저녁시간이 되어가니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늘어났다.

그런데 나는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일부 가게에 들어온 손님이 직원에게 비밀스러운 '티켓'을 주문하는 것이었다.

티켓을 주문한 손님은 지불을 마치고 음료 한 잔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바 뒤편의 비밀스러운 문으로 사라졌다.

아니, 저게 뭐지?!

온갖 상상의 나래가 내 머리에 펼쳐졌다.

이 가게가 알고 보니 이 대학가에서 몰래 마약을 거래하는 장소라던가, 비밀스러운 종교 모임이 이뤄지고 있다던가.

그리고 그 비밀스러운 티켓을 주문하고 뒷문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결국 내 호기심이 또 사고를 쳤다.

커피를 다 비웠던 나는 은밀하게 점원에게 다가갔다.


"아까 사람들이 티켓을 주문하던데, 무슨 티켓이죠? 그리고 저 문은 어디로 이어져있나요?"


그리고 천천히 점원의 입이 열렸다.

드디어 이 미스터리의 정체가 드러난다.

아니면 외지인이자 비밀 클럽의 멤버가 아닌 나에게는 거짓으로 둘러댈까?

점원은 너무나 태연하게 알려주었다.


"오늘 저녁 드로잉 클래스 티켓이에요. 10파운드인데 한 번 해볼래요?"


드로잉 클래스?

내가 생각한 범죄 스릴러 장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미술로 유명한 대학가의 펍에서 진행되는 드로잉 클래스라... 구미가 상당히 땡겼다.

그나저나 10파운드?

맥신이 다니는 요가 클래스가 수업 한 회당 1파운드라고 했는데, 그것에 비하면 가격이 상당하다.

혹시 드로잉 클래스는 암호 같은 거고 실제로는 정말 뭔가가 있는 거라면?

확인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좋아요, 저도 해볼게요!"


묘한 주문을 하고 왼쪽의 문으로 사라지는 손님들. 부활절 시즌이라 구운 계란 관련 사인보드도 보인다.
티켓을 구매하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말이 티켓이지 결제를 한다고 건네받는 지류 티켓이 있지는 않았다.

나는 결제를 마치고 나를 더이상 신경 쓰지 않는 그를 떠나 사람들이 사라진 비밀스러운 문을 열었다.

문은 그냥 2층으로 올라가는 좁고 낡은 계단실로 연결되어 있었다.

오래된 건물의 삐걱이는 계단을 밟으며 2층으로 향했다.


아, 정말 드로잉 클래스구나.

2층에는 아까 점원과 비밀거래를 하던 손님들이 둥글게 배치된 의자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무나 붙잡고 참여 방법에 대해 물었다.

처음인데 좀 도와주세요!

문 앞에 테이블에 도구들이 있으니 거기서 종이와 도구를 원하는 만큼 챙기고 빈자리에 앉으면 되는 모양.

준비물을 챙겨 나도 그들 틈에 끼어들었다.



누가 봐도 평범한 드로잉 클래스다.
준비물 비치 테이블. 늦게 들어온 편인 내게 선택지는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어둑한 분위기의 방. 오래된 건물의 오래됨이 아름답다.


그리고 클래스가 시작되었다.

갑자기 사람들 틈에서 한 사람이 진행을 시작했다.

고급스러운 슈트 차림에 민머리의 흑인인 그는 어디 소속일까?

설마 이 학교 교직원일까?

진짜 영어를 하는 그의 발화량 중 50% 정도만 알아들었다.

오늘 클래스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흑인 모델이 등장했다.

오늘의 드로잉은 세미누드 드로잉으로 그는 하의에 타잔처럼 천 하나만 두르고 있었다.

그는 중간의 의자와 지팡이를 이용해 포즈를 잡았다.


드로잉 클래스는 포즈 4개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포즈 하나에 시간이 몇 분이나 배정되어있는지 재보진 않았지만 집중해서인지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허나 초반 두 포즈에는 집중이 잘 되었지만 중간쯤 지나가니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여학생 4명 무리는 중간에 포기하고 조용히 클래스를 떠났다.

나도 그들을 따라갈까 하는 충동이 들었지만, 지불한 10파운드를 생각하며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모델이 사용할 의자와 지팡이. 쉽지 않은 직업이겠구나 생각했다.
강의가 끝났다.


배가 너무 고팠다.

저녁 7시에 시작한 클래스에 계획 없이 무작정 참여했던 터라 저녁 먹을 시간은 이미 넘긴 때.

집까지 걸어가는 길에 있는 마트에 들러 뭐라도 대충 먹기로 했다.


테스코에서 저렴한 치즈롤을 발견했다.

나는 매일 산해진미를 먹지 않아도 된다.

특히나 이번 여행에서는 말이지.

고민 없이 구매하여 마트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열심히 씹어 먹었다.

침실에서 고상하게 먹기를 기다리기에는 배가 너무 고팠다.

삐쩍 마른 빵은 훌륭하다고는 말 못 할 정도였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누가 봐도 맛없어 보이는 빵을 씹어 먹으며 등장한 나를 보고 맥신은 놀랐다.


"그게 네 저녁이야?"


장난삼아 불쌍한 표정으로 답했다.


"Yeah, I am a terrible budget traveler."


그녀는 올라가려는 나를 붙잡더니 냉장고에서 이것저것을 꺼내주었다.

직접 구웠다는 베이글칩과 방울토마토, 그리고 라즈베리 잼.

거기에 추가 토핑 격인 그녀의 잘 먹고 다니라는 말에서는 따스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빵을 먹고도 약간 부족했던 양을 맥신의 보살핌으로 채우고 따뜻하게 잠들 수 있었다.



테스코 없었으면 어쩔 뻔했니.
맥신이 챙겨준 야식



ep. 1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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