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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한진 Apr 11. 2024

ep.15 영국의 국기, '크리켓'을 맛보다

그리니치의 푸르름을 가르는 형광색 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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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니치는 푸르르다.
조부모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



계속해서 그리니치 공원을 탐험했다.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가던 중 넓은 잔디밭을 지나갔다.

한 가족이 영국의 스포츠 크리켓을 하고 있는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보기만 해도 평화로움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남자 아이 둘에 사춘기에 갓 접어든 여자 아이 하나, 그리고 그들의 보호자인 할머니, 할아버지로 구성된 가족.

사람이 없어 조용한 공터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퍼져 봄을 더 빨리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벚꽃길에 이어 내가 가려고 했던 곳도 장미 정원처럼 정비가 한창이었다.

여기는 손이 많이 가는지 아예 중장비가 동원되고 있었다.

그래서 빠르게 원래의 길로 복귀.

복귀 하는 길에 다시 그 가족을 지나치게 되었다.


크리켓이라... 한번 인터뷰나 해볼까?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기로 했다.



천천히 다가갔다.

조부모들과 잘 어우러지는 아직 사춘기에 접어들지 않은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이 좋았다.

열중하고 있는데 방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을 걸 타이밍이 나올까?


우선 이 무리에서 대장격인 사람을 파악해야 한다.

나는 우리가 아직 인간으로 진화하기 직전의 본능을 따라 우두머리를 찾았다.

짧은 시간에 캐릭터들을 정리했다.


- 할아버지는 멀찍히 떨어져 조용히 관람하고 계신다. 발언도 거의 없으시다.

- 사춘기에 접어든 손녀. 그 시기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가족 게임에 별로 관심이 없고 휴대폰만 보고 있다.

- 두 남자 아이들. 이번 나들이의 주인공. 열심히 크리켓에 몰두하고 있다.

- 그리고 할머니. 두 남자 아이들과 열심히 놀아주며 큰 목청으로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게 관람 허락을 승인해줄 책임자는 바로 할머니이다.




그들을 이대로 지나치지 않고 대화를 할 기회가 나올까?

그때 아이가 공을 치지 못하며 공이 뒤로 빠졌다.

공이 멀리 나가며 게임이 잠시 중단되고, 할머니와 독대할 수 있는 찬스다.

틈을 포착했다!


나는 작전 브리핑을 따라 대장격으로 보이는 할머님을 바로 공략했다.


"안녕하세요. 이게 크리켓인가요?"

"네, 크리켓이에요."(국어 표기는 크리켓이지만 영어 발음은 크리킷이었다.)

"제가 온 한국에서는 크리켓을 보기 힘들어서 실제로 보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예요."

"정식 룰은 아니고 아이들을 위한 약식 룰이긴 하지만 크리켓 맞아요. 마음껏 보세요!"




대장의 허락을 받았다!

나는 옆에 가서 그들의 플레이를 촬영했다.

아이의 플레이를 감상해 보자.


긴장했는지 미스가 나왔다.

그러자 바로 누나가 장난스럽게 뭐라고 한다.  

친남매 인증완료.

(둘이 주고 받은 짧은 대화를 알아듣고 싶다.

 "That's rubbish." 맞나? 내 얄팍한 영어 실력으로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문장. 막내의 항변은 그냥 으르렁 거리는 소리인지 영어단어인지 모르겠다.

 영어 능력자분 계시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잽싸게 대장님의 지시를 따라 짐을 내려 놓고 카메라를 세팅했다.




두근두근 타석에 들어선다.

아이들 용이라 그런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채는 가벼웠다.

채를 잡고 바로 동방예의지국식 예절을 주입해 주었다.

야구와 다르게 베이스 역할을 하는 것의 옆이 아닌 앞에 서는 것이라고 한다.



첫 타석.

너무 멀리 날아가면 안 될 것 같아 가져다 대는 수준으로 해보았다.

원 바운드로 투구되는 크리켓의 공에 채를 가져다 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힘 없이 오른쪽으로 튀어 나가는 공.


"이제 뛰어야 하나요?"

"뛰어요!"


희안한 풍경에 할아버지도 한마디 거드신다.

아이들의 호수비로 금방 수비당한 것 같았다.


다행히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졌다.

원래 룰이 그런 건지 손님 접대용 아량을 배풀어준 것인지.

그러나 기회는 놓치지 말고 잡아야 한다.




다시 찾아온 기회.

나를 상대하는 투수는 오스카 선수.

이번에는 진심이다.

덤벼라 오스카!


아까보다 제대로 맞은 공은 뒤로 쭉 날아갔다.

이번에는 완주에 성공했다!


"That's it. That's cricket!"




호수비를 펼친 수비수의 이름은 샘.

오스카와 샘.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까지.

좋은 추억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눈치껏 빠져야 할 때를 잘 알고 있었다.

두 번이면 충분하다.

아이를 불러 채를 건네주었다.


짐을 주섬주섬 챙겨서 대장님께 다시 다가갔다.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녀도 내 감사에 감격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게 건넨 '이런 경험들을 많이 가지고 돌아갔으면 한다'는 말은 조금 감동적이기까지 했달까.


속으로 그들의 행복을 빌며 다시 여정의 궤도에 올랐다.

나는 북쪽으로 향해야 한다.




ep.1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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