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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한진 Sep 10. 2024

챕터 3. 차메로(1)

3. 차메로(1)



이 자식은 또 어디로 간 거지?

차메로는 방금 전 정진이 그들 옆을 슬금슬금 빠져나가는 것을 다 알고도 굳이 아는 체하지 않았다. 그때에 사람들과 나누고 있던 이야기가 워낙 핫뉴스이기도 한 탓에 집중을 깨트리기 싫었던 것도 있었고, 종종 일을 마치고 밤 생활을 즐기러 나가는 정진의 모습이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녀석은 아직 한창 에너지를 발산하고 다닐 만큼 젊었으니까. 평소라면 신경 쓰일 일 없는 지극히 일상적인 상황이었다.

평소라면 지금 이후의 시나리오는 아래와 같을 것이다. 그들이 단골들과의 술자리를 파하고, 가게 마감은 대충 큰 것만 정리해 놓은 다음, 가게 문을 잠그지 않고 닫아만 두고, 아내 페넬로페와 집으로 가서 둘만의 사랑 가득한 회포를 풀고 있으면, 녀석은 알아서 가게로 기어들어가 자신의 방으로 향하겠지.

하지만 오늘은 어딘가 불편한 예감이 들었다. 불길함은 엉덩이에 난 작은 낭종처럼 은근하게, 또 수시로 그의 신경을 툭툭 건드렸다.

모르싸의 카타리나. 그녀가 이곳 하바나에 오늘 들어왔다는 소식은 하바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캐리비안 베이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면 확실히 참고해 둘 만한 소식이었다. 헛소문을 주로 퍼트리기로 정평이 난 산쵸가 아까의 술자리에서 뿌린 정보였는데, 산쵸는 마을에 도는 소문 대부분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다. 그렇다 해도 그냥 술안주 삼을 만한 가십거리로 삼고 넘길 수는 없었다. 아무리 산쵸가 이리저리 나르는 소문 중에 헛소문이 많지만 그만큼 사실인 소식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오늘 오전, 차메로가 어시장에 오늘의 장사를 위한 해산물을 구매하러 갔을 때 들었던 얘기가 이 소문과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이른 아침이라고 하기엔 조금 늦은 아침. 새벽장이 파한 후의 어수선한 활기와 진한 바다 냄새, 생선 내음. 그리고 바다와 육지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활개 치는 갈매기들과 그들이 싸 갈긴 변의 흔적들. 아침 끝자락, 느지막이 도착한 차메로가 경매가 파하고 어수선한 어시장을 방문했을 때 어부들 몇몇이 모여 수군대는 것을 보고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차메로에게는 모두 익숙한 얼굴들이었기에 반가움이 들어 그도 모르게 활짝 웃는 표정이 되었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경매 시간보다 모든 것이 끝나고 유유히 나타나 저들에게서 남은 재고를 싸게 챙겨가는 것이 제법 쏠쏠했다. 작은 가게라 메뉴의 유동성도 사장인 차메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에게 꽤나 근접했지만 아무도 차메로가 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양반들 뭔 얘기를 그리하는 중이야?

항상 남들 눈에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으로 보이고, 또 그렇게 기억되고 싶었던 차메로는 황급히 고양이 세수를 하며 혹시나 얼굴에 남아있을 자다 온 티를 털어냈다. 어시장 사람들은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대충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내용은 이러했다.



'이 근방에서 보기 힘든 흰색 호화 요트 한 대가 오늘 새벽에 조용히 들어왔더라.'

'얼핏 얼핏 요트를 지키는 사람 몇몇이 보였는데 그중에 소총을 메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더라.'


차메로는 무슨 헛소리들이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그들에게 다가가 반갑게 소리쳤다.


'아침부터 무슨 헛소리들이야! 됐고 늘 주던 걸로 주쇼! 선착순 한 명!'


차메로가 손가락 하나를 펼치고 팔을 번쩍 들으며 외쳤다. 마침 자기 어물전이 바로 옆에 있었던 어부 하나가 차메로의 팔이 올라가기 무섭게 재빨리 움직여 물건을 준비했다.


'오늘 문어가 좋은데 추가로 한 마리 어떤가?'

'아 그래요? 그럼 한 마리 줘봐요. 오늘은 모처럼 문어 카르파초를 내봐야겠구먼.'


차메로는 방금 들었던 이야기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파장 후에 심심한 바닷가 사람들이 만들어낸 뜬소문일 거라 치부했다. 이 푸른 열대의 바다가 아름다운 카리브해는 휴양지로 완벽한 곳이었고, 돈 썩어 나는 양반들 요트가 근방을 돌아다니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이 고용한 개인 경호원들은 종종 무장하고 있었다.

차메로는 주문한 해산물들의 박스를 확인하고는 값을 치렀다.


'그럼 다른 생선들은 오늘도 배달 잘 부탁드립니다.'

'아, 물론이지! 걱정하지 말라고, 하하.'


오늘의 주문을 낙찰한 가게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거대한 문어 한 마리를 해수와 함께 담은 봉투를 ‘척’하고 어깨에 둘러멨다. 주인의 말처럼 문어는 정말 실했고 힘이 넘쳤다. 어시장 특유의 비릿한 생선 냄새들을 언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훌훌 털어내주었다. 냄새와 함께 머릿속의 뜬소문도 함께 날아갔다.

집으로 돌아온 차메로는 수조에 문어를 풀어놓고 침실로 올라갔다. 페넬로페는 아직 한밤중이었다. 그녀의 취향인 꽃무늬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한낮의 햇살이 은근한 조도로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조용히 이불을 들고 그녀의 옆으로 기어들어 간 그는 그녀를 살포시 껴안고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그녀가 불편한 듯 뒤척였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아내를 따라 눈을 감았다. 오후 장사를 하는 그들에게는 아직 몇 시간 더 잘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렇게 그의 몫이었던 오전 일과를 마친 차메로는 아내의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빠져들었다.



"모르싸의 카타리나…"

"뭐라고?"


손님들을 모두 내보내고 간단히 테이블을 정리하던 페넬로페가 차메로의 혼잣말을 듣고 반응했다.

정리 안 하고 뭘 중얼거리고 있어?

페넬로페는 분주히 마감을 했다. 먼저 상할 수 있는 음식물들을 간단히 치웠다. 이리저리 섞여버린 음식물들을 한데 모아 처리하고, 그릇들을 물로 헹궈 싱크대에 담가 놓았다.

오늘은 이 정도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내일 와서 처리하자.

부엌에서의 일을 끝내고 홀로 돌아오자 차메로가 단체석을 만들기 위해 붙였었던 테이블을 원래 자리로 정리하다 말고 그 자리에서 서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니, 아까 산쵸가 했던 이야기 말이야."

"산쵸? 아, 모르싸 이야기? 또 그냥 그런 헛소문이겠지."


그녀는 움직이지 않고 멍하니 서있는 차메로에게 다가가 그가 쥐고 있기만 하던 의자를 빼앗아 제자리로 옮겼다. 그제야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차메로는 그녀를 도와 테이블을 옮기며 이어 말했다.


"그냥 오늘 아침 어시장에서도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서 말이야. 조금 수상한, 일반적이지 않은 배가 하바나에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거든."

"아, 정말? 그럼 그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거야?"

"뭐,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차메로는 마지막으로 남은 세 개의 의자를 한 번에 옮기며 정리를 마무리했다. 그의 길쭉하고 굵은 한쪽 팔에 의자 세 개를 동시에 걸어 올렸다. 그가 발걸음을 옮길 때 그의 무게에 낡은 나무 마룻바닥이 삐걱거렸다.

정리가 다 끝났다고 생각한 그들은 가게를 쓱 둘러보고 남은 일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다음에야 가게를 나섰다. 그의 팔짱을 끼며 페넬로페가 말했다.


"그나저나 그런 사람이 여기는 어쩐 일이래?"

"모르지. 휴가라도 왔나?"

"하하하, 이 동네가 휴가를 오기에도 나쁘지 않은 곳이지. 그런데 왜 아직도 표정이 심각해?"


페넬로페는 아직도 찌푸려진 미간의 차메로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보통은 자신이 웃으면 반사적으로 따라 웃는 차메로였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있다면 그를 웃게 만드는 것이라고 자신해 왔었다.


"음, 관련 업계에 일하고 있는 내 오랜 친구가 수상한 소식을 전했거든. 카타리나가 큰일을 하나 꾸미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이야."


페넬로페가 차메로의 엉덩이를 장난스럽게 움켜쥐며 말했다.

또 맷인가 뭔가 하는 녀석인가?


"관련 업계? 그런 딴 세상 사람들의 계획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왜 신경을 써?"


차메로는 아내의 손에 잡힌 자신의 둔근에 은근슬쩍 힘을 주며 대답했다. 자연스레 그의 목소리에도 팽팽해진 그의 엉덩이처럼 힘이 들어갔다.


"아니, 정진이 말이야."

"정진이 왜? 설마 걔 마약 시작했어?"


페넬로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치듯 물었다. 차메로는 피식 웃으며 그의 아내를 진정시켰다.


"아니야,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어느 순간부터 그녀도 녀석을 많이 아끼게 되었구나.

한 순간이었지만 정진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느껴져 차메로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그냥, 오늘 밤은 왠지 신경이 쓰이네."


이곳에서 차메로는 정진의 보호자였다. 이전에 정진이 자신을 보호해 줬던 것처럼. 자신의 인생이 구렁텅이에 빠질 뻔한 것을 막아준, 새로이 태어나게 해 준 소중한 소년. 지금 그는 정진에게 마음속 빚을 갚는 중이었다. 피닉스의 길 건넛집 소년 정진.




3.차메로(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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