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심 Jan 30. 2021

엄마의 독서 레시피



"엄마~ 엄마~ 주황색이고, 이렇게 이렇게 세모나고 유우~"

"엄마는 너가 무슨 말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뭘까?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을까?"

"그러니까 유우~"

딸은 지금 같은 말을 몇 번 반복하고 있다. 나는 몇 번을 듣고 있지만 딸이 무엇을 얘기하는지 알아채지 못한다. 유튜브도 아니고 뭘까. 유로 시작되는 장난감이 있던가...

아! 한참 후에 전후 맥락을 생각해보니 아까 사 왔던 유부초밥이 생각났다.

"너 유부초밥 말하는 거야?"

"응, 유부초밥 언제 해줄 거야?"

다시 생각해보니 다섯 살 딸의 설명은 다 맞는 말이다. 주황색이고 세모나고 유부초밥인데 그걸 계속 못 알아듣고 있었다.


며칠 전에 집에서 처음으로 유부초밥을 만들었다. 딸은 먹어보더니 엄청 맛있다고 하며 손으로 집어 한입씩 크게 베어 문다. "엄마 맛있어서 멈출 수가 없어". 시중에 파는 유부초밥 재료를 사다가 밥에다 그냥 버무려서 유부에 밥만 집어넣은 거뿐인데 딸이 엄청 좋아한다. 엄마가 요리를 잘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든다. 지금부터라도 연습을 해서 딸 소풍 갈 때 김밥은 예쁘게 싸줘야겠다.


요리를 잘하면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토미 웅거러의 그림책《제랄다와 거인》은 아이들을 거인이 잡아먹는다. 거인은 어느 날 요리를 잘하는 소녀 제랄다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요리에 반한다. "세상에 이런 맛이!" "한 마디로 하늘나라 맛이야!" 그 이후로 거인은 아이들을 잡아먹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거인 때문에 숨어서 지냈던 아이들은 예전처럼 즐겁게 살 수 있게 된다.


드라마《철인왕후》는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가 독특해서 보는 요즈음 보는 재미에 빠졌다. 내용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남자 요리사가 사고를 당해 조선시대 중전의 몸에 영혼이 들어가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연회행사에 쓰일 음식 재료들을 도둑맞는 위기상황에서 중전은 재치있에 연회 음식을 만든다. 용수 감자(회오리감자), 맥두날두(비건 햄버거), 포춘양갱(포춘이벤트가 들어간 양갱)이다. 철종은 대신들에게 연회를 베풀며 기근 때문에 힘들어하는 백성의 고통을 나누고, 당쟁은 잠시 멈춰달라고 이야기한다. 대신들은 처음 음식을 보고는 대접이 너무 소홀한 거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한 입 베어 문 순간,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한 새로운 맛에 눈을 뜨며 먹는 동안 만족해한다.


영화《리틀 포레스트》는 시골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정취와 계절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들이 나와 오감이 힐링되는 영화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은 엄마(문소리 역)가 딸(김태리 역)에게 음식을 해 주는 장면이다. 한적한 시골에서 엄마의 요리는 지루하지 않았고, 어느 날 친구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딸에게 재치 넘치는 요리로 위로를 해준다. 딸은 성인이 되어 엄마가 해 준 음식을 만들고, 기억을 더듬어 엄마의 맛과 비교해 본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도 어릴 적에 엄마가 해줬던 음식들이 생각났다. 카스테라, 도넛, 팥시루떡 등



나는 우리 딸에게 어떤 레시피를 알려줄 수 있을까. 요리는 아무래도 어려울 듯하다. 최근에 생각하고 나의 버킷리스트에 추가한 게 있다. '엄마의 독서 레시피'이다. 지인분 중에 딸에게 책 이야기를 편지로 써서 보내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책 속 이야기와 자신의 생각 그리고 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딸에게 보내는 글은 멋지고 의미가 있다. 나도 딸을 생각하며 좋은 책을 소개해 주고, 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장기적인 목표와 실행 계획을 가지고 책을 읽고 하나씩 정리해야겠다. 물론 '엄마의 독서 레시피'를 읽고, 자신이 책을 읽을지는 본인 선택이고, 그 선택을 존중한다. 엄마와 딸이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나누고 싶다. 지금은 혼자의 꿈이지만, 함께 꾸는 꿈이길 소망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성을 잘 사용하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