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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Feb 01. 2021

나에게 쓰는 편지

캘린더 활용하기

나는 오늘 또 한통의 긴 편지를 쓴다
다시, 십 년 후의 나에게
내 몸에 깃들여 사는 소녀와 처녀와 아줌마와 노파에게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 그 늑대여인들에게
두려움이라는 말 대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책갈피 같은 나날 속으로,
다시 심연 속으로 던져지는 유리병 편지
누구에게 가 닿을지 알 수 없지만
줄곧 어딘가를 향해 있는 이 길고 긴 편지

- 나희덕,「다시 십 년 후의 나에게」- 

며칠 전 이화정의『북 코디네이터』라는 책에서 이 시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독서모임마다 이 시를 소개하고, 회원들과 십 년 후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오늘이라는 해변에 다다른 유리병'안에 십 년 전에 보냈던 편지는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이가 보낸 편지라서 뜻깊을 것이다.


직장생활을 접고 중국에 어학연수를 갔다. 새로운 시작에 설렜고, 남들보다 좀 늦은 감이 있는 도전이라 두려웠다. 룸메이트는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였다. 직장생활에 일과 사람에 지쳤고, 문득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녀의 방을 구경했다. 침대 머리맡에 앨범 두께의 10년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한 페이지에 오늘 날짜의 10년간의 기록을 함께 볼 수 있다. 다이어리를 사용한 지 몇 년 되었고, 계속 써야 되어서 중국까지 들고 왔다고 한다. 그녀는 밤마다 촛불을 켜고 요가를 한 후, 다이어리에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정리한다. 10년 다이어리는 자신의 마음 성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새로운 달의 시작은 언제나 설레고, 새롭게 무언가를 계획하고 싶다. 2021년 1월도 금세 지나갔다. 2월이 되니 작년 2월에는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분명 작년에도 지금 하고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 같다.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았을 텐데 게으름이 아쉽다.


십 년 뒤에 나에게 보내는 편지는 기간이 길어서 특별한 날에 하면 좋을 듯하다. 10년 다이어리는 찾아보니 앱이 있다. 매일 일기 쓰듯 기록해야 되어서 나는 오래 하기 힘들다. 간단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휴대폰에 있는 캘린더를 생각했다. 캘린더에 일정을 등록해 두면 일정이 시작되기 전에 알람이 온다. 캘린더를 활용해서 나에게 쓰는 편지를 써보기로 했다.


<월간> 나에게 쓰는 편지

1. 캘린더 앱에서 일정을 추가하기

2. 날짜는 오늘 날짜(2월 1일), 연도는 2021년, 시간은 알람을 받고 싶은 편한 시간대.

3. 일정 제목은 2월 나에게 쓰는 편지

4. 일정 설명에 1년 뒤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쓰거나, 미리 적어둔 내용을 붙여 넣는다.

캘린더 일정 등록 화면

나는 아이폰을 쓰고 있지만, 구글 캘린더와 구글 포토를 사용한다. 휴대폰에서 이따금 알람이 온다. 3년 전, 5년 전, 7년 전 등 오늘의 사진이다. 대부분은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다. 잠시나마 사진을 보면서 그 시간으로 소환된 느낌을 받는다. 사진을 보는 것도 좋지만 여행지에서 나에게 쓴 편지가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앞으로는 여행지에서 메모를 남기고 이미지 파일로 저장해 두려고 한다. 알람이 왔을 때 여행 사진과 편지를 함께 즐길 수 있으리라. 


새로운 달, 조금은 어제와 다른 날이 되기를 소망하며 소소한 나만의 이벤트를 생각해 보았다. 일상의 어느 날 유리병 속에 담긴 편지는 자신에게 위안과 기쁨을 줄 수 있다. 10년 다이어리도 좋고, 1년 뒤에 도착하는 편지도 좋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유리병을 만들고, 편지를 써서 해변에 띄워보면 어떨까. 





* 상단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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