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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Feb 14. 2021

두부 단상

이영광, 두부

두부는 희고 무르고

모가 나 있다

두부가 되기 위해서도

칼날을 배로 가르고 나와야 한다

아무것도 깰 줄 모르는

두부로 살기 위해서도

열두 모서리,

여덟 뿔이 필요하다

이기기 위해,

깨지지 않기 위해 사납게 모 나는 두부도 있고

이기지 않으려고,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모질게

모 나는 두부도 있다

두부같이 무른 나도

두부처럼 날카롭게 각 잡고

턱밑까지 넥타이를 졸라매고

어제 그놈을 또 만나러 간다


- 이영광, 두부 - 



오늘 저녁 아이 반찬은 두부다. 딱히 떠오르는 게 없을 때 쉽게 해 줄 수 있는 두부부침. 다행히 아빠를 닮아서 그런가 두부를 좋아한다. 반면에 난 두부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소하고 담백하고 영양이 풍부한 두부를 왜 좋아하지 않는지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남편이 언제가 왜 싫어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반찬인데 두부를 먹으면 배가 불러서 싫어"하고 이상한 대답을 했다.


그렇다고 두부를 전혀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금방 만든 따끈따끈한 모두부를 좋아한다. 간장에다 찍어 먹어도 좋고, 김치랑 같이 먹어도 좋다. 그 뜨끈하고 부드러우면서 고소한 맛을 좋아한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몇 달을 지낸 적이 있다. 아침마다 할머니는 어디선가 모두부를 사 오셨다. 두부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좋았다. 매일 먹어도 두부가 질리지 않았다. 


순두부찌개도 좋아한다. 몽글몽글 보드라운 두부에 흰색 찌개도 좋고, 매콤한 빨간 찌개도 좋다. 바지락 몇 개 넣고 끓인 엄마표 순두부찌개 참 맛있다. 두부를 직접 만드는 음식점에서 파는 순두부찌개가 좋다. 시중에서 파는 순두부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고소하다. 흰색 순두부찌개에 청양고추 몇 개가 들어가면 특별한 간이 안되어 있어도 짭조름하면서 칼칼하니 맛있다. 


두부에 대해 생각해 보니 내가 싫어하는 두부는 이런 것이었다. 이영광의《두부》에서 표현한 것처럼 원래는 희고 무른 두부지만 '깨지지 않기 위해 사납게 모 나는 두부', 그 각짐이 싫고 그 차가움이 싫다. 특히 두부부침은 겉이 바싹하고 각져서 싫고 아무리 안에가 부드러워도 그 각짐에 기름과 두부의 고소함이 뒤범벅이게 싫다. 찌개에 들어가는 그냥 두부는 말랑하긴 하지만 두부 본연의 부드러움이 느껴지지 않아서 싫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이고, 쓰다 보니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리가 된다. 


한편으로는 시인의 표현처럼 희고 무른 두부가 날카롭게 각 잡고 살아가려는 몸부림이 남일 같지 않다.




* 상단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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