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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Feb 16. 2021

나는 누구와 연결되어 있을까

손원평, 프리즘

손원평의『아몬드』를 재미있게 읽었다. '공감'이라는 소재를 다룬 내용도 좋았지만 계절에 대한 표현이 인상적이다. 윤재는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이 재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려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천연색 꽃이 피어나는 . 힘겨운  런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앞으로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그래서 나는 5월이 한해  나태한 달이라고 생각했다".


소설『프리즘』은 2018년 여름부터 2019년 가을까지 '일종의 연애소설'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이야기를 개작해서 2020년 가을에 출간된 작품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글을 연재했던 시기는 프리-코로나 시대였지만 책 출간이 2020년에 되어 작품에 코로나의 상황을 다루어야 하나 고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스크를 씌우면 인물 간 사건이 개연성이 떨어질 수 있어서 코로나 시대를 반영하지 않는 것으로 하였다.


이 소설은 먼저 장제목이 눈에 띈다. '여름-한여름-초가을-겨울-이른 봄-다시 여름'으로 계절로 구분되어 있고, 계절에 대한 속성을 다룬 표현이 아름답다. 등장인물은 네 명의 남녀이다. 재인, 호계, 도원, 예진은 저마다 마음에 깃든 어둠의 조각들이 있다. 그들은 그 어둠을 가슴에 안고 가능하면 봉인한 채 살아가려고 한다.


준비된 것도 없는데 늘 무언가가 시작되려 해서 불안한 봄밤. 지도없는 혼란한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기가 달콤했다. 평온하고 다행한 기분이었다(…) 아무런 일 없어도 불안하고 달콤하고 조금은 몽롱한…. 붕 뜬 기분이 못마땅해도 어쩔 수 없이 이끌려가는 계절. 정리되지 않는 감정과 말도 안 되는 온갖 상념들을 모두 품은 채 어쨌든 계절은 진행하고 있었다. 봄의 속성이란 무릇 그러한 것.
단순히 열기와 습기라는 말로는 충분히 않다. 여름의 본질은 작열감과 윤기다. 올여름은 대기의 질마저 쾌적하다. 먼지 따위는 지구 반대편으로 자취를 감춘 듯 하늘은 꿈결 같은 구름을 머금은 채 내내 높고 푸르렀다.
가을은 늘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한 해가 끝나가고 있음을 자각시켰고 예진이 외면하던 불안을 일깨웠다. 짧은 계절에 비해 고통의 체감시간은 늘 길었다. 예진은 이 뜻 모를 부당함에 대항하고 싶었지만 저물어가는 햇살만큼이나 빠르게, 자신에게서 빛이 거두어져가고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1월의 풍경은 스산하다. 헐벗고 황량하다. 그러나 그 안에 고요한 운치가 있다.


예진의 기억 속에 프리즘은 아름답고 날카로웠다. 작은 조각이 뻗어내는 아름다운 빛깔, 색깔을 분명하지만 색간의 경계는 흐릿한 부드러운 무지개를 만들어낸다. 누가 내게 다가온다면 누군가에게 다정하고 찬란한 빛을 뿜어내게 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누군가를 빛내주는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예진은 생각한다.


사람 사이에 맺는 관계는 자신이 확장된다. 누구와 연결될지 알 수 없고, 언제고 끊어질 수 있는 관계일지도 모른다. 사랑 또한 특별한 감정을 통과하며 자신의 확장해 간다. 사랑은 아름답고, 상처 받고, 아파서 후회해도 멈춰지지가 않는 속성이 있다. 사랑은 시작한다, 끝난다. 꺼진다, 그리고 또 다른 얼굴로 시작한다. 작가는 사랑은 그렇게 원하든 원치 않든 영원히 계속된다고 말한다. "한 겨울에도 늘 여름인 마음속에서 태양이 녹아 없어질 때까지. 우주가 점이 되어 소멸하는 그날까지".




* 상단 이미지: Photo by Michael Dziedzic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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