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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Apr 06. 2021

도서관, 책, 사서

강민선, 도서관의 말들

나는 운명을 믿는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듯이 책과의 인연도 그렇다. 하릴없이 도서관 서가를 거닐며 눈에 들어오는 책을 들춰보는 걸 좋아한다. 최근에는 전자도서관에서 그냥 책 목록을 쭉 살펴본다. 이런 책 저런 책을 보면서 세상에 다양한 주제의 책들을 만난다. 비슷한 주제이지만 작가 나름의 관점으로 글을 쓴 책을 보면서 감탄도 하고 배우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기 일쑤이지만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이 아깝지 않다. 


도서관에는 분명히 좋은 책이 많이 있다(...)누가 봐도 흠 없고 진실한 문장이어도 나와 그 문장 사이에서 내밀한 연결선을 찾을 수 없다면, 그 문장에 나의 이야기를 보태어 쓸 수 없다면, 그건 내가 함부로 끌어올 수 없는 타인의 문장이다(...)
내게 필요한 문장, 나를 위한 문장이 어딘가에 반드시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다시 서가를 천천히 거닐었다.


오늘은 책 산책 끝에 강민선의  《도서관의 말들》을 만났다. 작가는 도서관 사서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도서관'을 주제로 책의 문장과 자신의 이야기를 보태어 글을 썼다. 마치 사진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것처럼 책의 문장이 있고 작가의 단상이 있다. 글에는 도서관에 대한 생각, 사서로서의 마음, 책에 대한 사람이 담겨 있다.


강민선 작가는 작가가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했던 때에 그저 하루하루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하고 메모를 바탕으로 자신의 글에 적용해 보았다고 한다. 책을 읽다가 인상적인 단어나 문장이 나오면 공책에 옮겨 적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 단어가 적절하구나'. '이 문장은 인물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표현하고 있어' 등 갖가지 이유로 마음에 들어온 단어와 문방에 번호를 매기며 기록한다. 책을 읽다가 쓰고 싶은 글의 정서와 비슷한 상황이나 묘사를 발견하면 역시 메모했다. 인물의 성격을 대변할 만한 수식어를 기록해 두었다가 자신이 쓰는 글에 차용했다. 혼자서는 생각해 낼 수 없는 말들이기에 마치 누군가 조판해 둔 활자를 채집하여 필요한 자리에 배열하는 식자공 같았고, 작가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고 한다. 


자신이 책을 냈다는 사실을 가장 마지막으로 알게 된 사람이 부모님이라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엄마, 내가 서른 넘어서도 작가 되겠다고 취직도 안 하고 방황하고 그랬을 때 엄마가 작가는 마흔이 되어서도 할 수 있으니까 그때 하라고 했던 거 기억나? 나 진짜 마흔에 작가 됐어." 작가가 했을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압축적으로 느껴졌고, 작가가 되었다는 이야기에 부모님이 많이 좋아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방법이 실패하면 포기하고 도서관에 갈 것". 이 책에 마지막 문장은 스티븐 킹의 《11/22/63》에 나오는 말이다. 1963년 11월 22일 존 F. 케네디의 암살 사건을 막는 시간여행 이야기인데, 주인공이 휴대전화도 구글도 없는 과거에서 단서를 찾기 어려울 때 문득 대학생 때 교수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되는 마지막 순간에 남은 보루가 도서관이라는 사실'이 작가가 도서관에 대한 글을 쓰는데 힘이 되어 준 말이지 않을까 싶다. 


책은 분명 서점에도 있다. 하지만 조용한 도서관을 거닐면 책들이 숨 쉬는 소리가 더욱 잘 들리는 듯하여 나는 도서관이 좋다.


* 상단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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