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심 Apr 15. 2021

그곳에 가고 싶다

공항과 기차역

공항과 기차역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이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시작과 끝은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사람들이 반갑게 만나는 장면이다.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 부모, 자식, 부부, 연인, 친구 간에.


돌이켜보면 공항과 기차역에서 내가 누군가를 만날 일은 없었다. 나는 그냥 여행자였고, 그곳은 잠시 스쳐가는 장소일 뿐이다. 낯선 공항과 기차역에 도착했는데 누군가 나를 맞이해준다면 얼마나 든든하고 좋을까.


# 2008년 5월 베이징역

나는 중국 하얼빈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었다. 5월 첫째 주는 노동절이라서 학교가 1주일을 쉰다. 긴 휴가기간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 베이징에 여행을 가기로 했다. 하얼빈에서 가장 빠른 고속열차를 타도 7시간이나 걸린다. 내 옆자리에는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가 앉았다. 마주 보는 4인석이어서 맞으편 아저씨는 내가 외국인이라는 걸 알고 신기해하며 이따금 말을 걸었다. 옆자리 아저씨는 관심이 없는 듯하면서 어눌한 내 얘기를 다 듣고 계시는 듯하다. 내가 한참을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면 걱정하는 눈빛으로 어디 갔다 왔냐고 묻는다. 


드디어 베이징역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하고 나도 내려서 일행을 기다렸다. 앞에 아저씨가 보인다. 아저씨는 아들 내외를 만난 듯하다. 오랜만에 만났는지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의 아저씨 얼굴에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눈물을 흘리신다.


# 2011년 뉴욕 존 에프 케네디 공항

나의 버킷리스트 중 두 개를 지웠다. 카드실적으로 몇 년을 모은 마일리지로 무료 항공권을 끊었고, 뉴욕을 가게 되었다. 좌석은 창가 쪽이고 세 자리인데 가운데는 비었고 복도 쪽에 아주머니가 앉으셨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시간이 좀 흐르자 아주머니는 내게 말을 걸었다. 비행기를 처음 타신다고 한다. 딸이 뉴욕에 사는데 이번에 아이를 낳아 급하게 항공사 사이트에서 항공권을 150만 원 주고 구매했다고 한다. 나는 비싸게 구매한 티켓이니 가운데 자리까지 편하게 이용하시라고 했다. 


비행기는 착륙했고 아주머니는 입국 심사할 때 같이 있어달라고 하셨다. 입국심사를 무사히 마치고 나는 이만 가보겠다고 인사를 드렸으나 아주머니는 고맙다고 하시면 딸을 보고 가라고 하신다. 출구로 나가니 딸은 마중을 나와 있었고 드디어 모녀상봉이다. 두 사람은 서로 안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나는 중간에서 내가 어찌해야 할지 몰라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빠져나왔다. 딸의 표정이 떠오른다. 타국에서 아이를 낳고 몸조리를 했을 때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었을까. 


# 2008년 7월 카스 역

여행자로서 낯선 기차역에서 현지인의 환대를 받은 일이 있다. 여름방학 동안 룸메이트 언니와 하얼빈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시안을 둘러보고 우루무치를 가는 기차를 탔다. 3박 4일을 기차에서 보내면서 임호군을 알게 되었다. 중국식 발음으로 하면 린후이지만 한자를 우리식으로 발음하면 임호여서 룸메이트 언니랑 우리끼리 있을 때는 임호라고 얘기하곤 했다. 임호군은 우루무치에 있는 동안 여러 곳을 안내해 주었고 카스 기차표를 구하러 갈 때도 동행해 주었다. 임호군은 우리가 카스에 가는 게 걱정이 된다며 가지 말라고 했다. 기차표를 사는데 줄이 참 길었다. 임호군은 잠깐 사이에 앞에 있는 부부와 마치 몇 년 만에 만난 고향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는 내 친구가 한국인인데 카스에 여행을 가려고 한다. 둘만 보내기가 걱정스럽다. 부부는 우리는 우루무치에서 은행에서 일하고 있고, 카스에 은행에 다니는 친구가 있다. 자기가 친구한테 부탁해서 카스 기차역에 마중을 나오라고 얘기하겠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카스 역에 도착했을 때 친구분이 마중을 나왔다. 우리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서 있었고 자가용으로 우리를 자신이 알고 있는 호텔에 데려다줬다. 임호군 덕분에 내 소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임호군이 생각난다. 우루무치역까지 배웅해주고 기차에서 먹으라고 건넨 간식 꾸러미. 임호군과의 에피소드는 몇 개 더 있는데 다음 기회에 나누고 싶다.


글을 쓰다 보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추억으로 잠시 행복해지는 밤이다.

곧 주말이네요. 즐겁고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 상단 이미지: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니체에게 배우는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