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지인 중에 소개팅을 나가면 물어보는 질문이 있었다. 횡단보도에서 초록색 불이 몇 초 안 남았을 때 당신은 뛰나요? 그다음 신호를 기다리나요? 그래서 내가 그건 왜 물어보냐고 했더니 자기는 원래 뛰기 싫어하는데 상대방 때문에 뛰어야 한다면 싫을 것 같다면서 미리 확인해 봐야 한다고 했다. 상대방이 어떤 성향인지 파악하고자 하는 질문이겠지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다. 나는 대체적으로 급하게 뛰는 걸 싫어한다.
누구나 각자의 속도가 있다. 공부도, 일도, 결혼도 그리고 밥 먹는 것도. 나는 보통 밥을 빨리 먹는 편이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여자 동료는 두 명은 밥을 빨리 먹고, 두 명을 밥을 느리게 먹는다. 느리게 먹는 동료가 그래도 늦게 먹는 동료가 한 명이 같이 있어서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 먹었는데 혼자 늦게 먹고 있으면 괜히 신경이 쓰여서 더 먹고 싶어도 오래 먹기가 불편하다고 한다. 그리고 가끔 급하게 먹어서 속이 불편할 때도 있다고 했다. 언젠가 점심을 먹을 때 좌석배치가 남자 동료 두 명과 나 이렇게 앉아 먹은 적이 있다. 나도 밥은 빨리 먹는 편이지만 남자 동료 두 명을 따라갈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두 사람의 먹는 속도에 괜히 나까지 덩달아 빨라졌다. 밥을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오후 내내 소화가 안되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오누리의 《나는 그냥 천천히 갈게요》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작은 소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자신을 자칭 슬로우어라고 소개한다. 슬로우어는 'slow+er', '느린-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작가의 슬로건인 "나는 그냥 천천히 갈게요"를 바탕으로 만든 이름이다. 작가의 슬로건은 내게도 필요한 말이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일 때, 해 놓은 건 없고 해야 할 것이 많게 느껴질 때, 원인 모를 불안과 초조함이 느껴질 때 그럴 때 이 주문을 내게 말해 주고 싶다.
"나는 그냥 천천히 갈래"
* 상단 이미지: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