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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Apr 20. 2021

기억에 남는 따뜻한 손

조용히 손을 내밀었을 때

- 이정하-


내가 외로울 때 누가 나에게 손을 내민 것처럼

나 또한 나의 손을 내밀어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다

그 작은 일에서부터 우리의 가슴이 데워진다는 것을

새삼 느껴보고 싶다


그대여 이제 그만 마음 아파하렴



지난주에 잠깐 산책을 나갔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 나무에서 떨어지는 꽃가루가 많았다. 그날 이후로 눈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오늘 안과를 갔다. 생각해보니 안과를 가본 건 라식 수술을 하려고 검사받으러 몇 군데 병원을 갔던 일과 수술받을 때 빼고 처음이다. 이제 라식수술을 한 지도 거의 스무 해가 되었다.


처음 안경을 썼던 건 열세 살 겨울방학 때부터다. 내심 안경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느 날 버스를 기다리는데 다가오는 버스 번호가 잘 안 보여서 그만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안경을 쓰고 나서 얻은 것과 잃은 게 있다. 눈 크기가 예전보다 작아졌다. 왕눈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눈이 컸다고 하는데 지금은 보통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없던 콧대가 생겨서 안경 쓰기 전보다 코가 오뚝해졌다.


대학교 입학하고 나서 콘택트렌즈를 꼈다. 처음에는 렌즈를 눈에 넣는다는 게 무서웠고 렌즈를 끼고 잠깐 잠을 자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날 버스 안에서 잠깐 졸다가 정류장에 부랴부랴 내렸는데 잠이 덜깬 상태에서 눈은 뻑뻑했고 눈을 몇 번 깜박였는데 한쪽 렌즈가 눈에서 튀어나와 날아가버렸다. 그렇게 한쪽 렌즈를 잃어버리고 시험을 봤다. 문제를 푸는데 눈이 뱅글뱅글 어지러웠다. 렌즈는 안경다리에 눌린 코를 해방시켜주었지만 밤이 되면 눈이 토끼눈처럼 빨개진다.


직장생활을 하고 얼마 안 되어 드디어 라식수술을 결심했다. 몇 군데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명동에 있는 한 병원에서 수술을 했다. 내 생애 첫 수술이었고 많이 떨렸다. 부분 마취를 하고 수술대 위에 누웠다. 의사 선생님은 천장 기계에 빨간 불빛을 계속 쳐다봐야 한다고 했다.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집중해서 그곳을 바라봤다. 천장에 있는 유리에 내 눈이 보였다. 눈의 각막을 한 꺼풀 벗겨내는데 마치 면도칼로 살짝 벤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손과 발이 떨리고 무서웠다. 그런데 누군가 덮개 아래쪽에 있는 내 손을 꼭 잡아줬다. 따뜻한 손이다. 내 온몸이 그 손에 의지했고 안심이 되었다.


나는 이제 아침에 눈을 뜨면 모든 사물이 또렷이  보인다.  그대로 밝은 세상을 얻었다. 그리고 얼굴을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따뜻한 온기,  촉감을 기억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따뜻한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이싶다.



* 상단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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