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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Jul 28. 2020

[소설] 식물원을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민음사, 57쪽 -


일주일 한번 그녀는 그곳에 간다. 식물원 커피숍에 앉아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그녀는 책을 읽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비 오는 날의 식물원이 가장 좋다고 한다. 그녀는 나에게 식물원 이야기를 자주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근처에 식물원이 있어서 좋으시겠어요. 저도 가고 싶네요.” 하고 답을 했다. 하지만 난 그녀가 좋아하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느낌이 오지 않는다.


여자 셋은 수서역에 모였다. 여름이 막 시작된 어느 날 햇살은 따가웠고, 보도블록은 이미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수서역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신구대학교 식물원이 있다. 드문 드문 전원주택과 아파트가 보이고, 서울 공항을 지나 그곳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티켓을 구매하고 들어가면 우측에 커피숍이 있다. 널찍한 등나무

테이블이 기다랗게 여러 개가 놓여 있고 창 너머 바깥에는 항아리마다 연꽃이 피어있다. 그 뒤에 알록달록 꽃들이 보이고, 저 멀리 숲도 보인다.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매주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책을 읽다가 산책도 하고, 준비해 온 도시락을 먹고 그녀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겠구나라고 생각하니 내심 그녀가 부럽다.

 “선생님 너무 좋으시겠어요. 이렇게 좋은 곳을 매주 오시다니 너무 부러워요.”
“그래, 사람들은 다른 것에만 관심이 있고, 이렇게 좋은 걸 잘 몰라…”.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일구어낸 식물원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오직 그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그녀는 오래전부터 오롯이 즐기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최근에 읽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생각났다. 서른아홉의 폴은 오랜 연인인 로제에게 익숙해져 있고 그녀의 미래는 그와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한 듯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와 함께 있어도 외롭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고자 하는 청년 폴이 그녀에게 나타난다. 폴은 어느 날 그녀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며 브람스 음악회를 가자고 제안한다.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의 질문은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 같았다. 폴은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여전히 갖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지금의 ‘나’를 알게 하고, 지금의 삶 너머의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미래의 ‘나’를 만나게 한다. 어찌 보면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규정할 때, 내 미래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식물원에는 해바라기가 한참 피기 시작했다. 뜨거운 태양의 빛을 받으며 노오란 꽃잎이 강렬하다. 여름날의 식물원에서 나는 더 의미 있게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당신에게 질문합니다

 “식물원을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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