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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Jan 05. 2021

카프카님, 당신의 해석이 궁금합니다

프란츠 카프카, 소송

앗! 큰일이다. 100페이지가 넘었는데 무슨 내용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요제프 K(독일어 발음 카)는 어느 날 아침에 체포가 되었다. 하지만 평상시처럼 은행에 출근할 수는 있다. 그는 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아직까지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설명은 없다. 법원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고 K는 자기 나름대로 소송에 도움을 줄 사람들을 만난다. 실체 없는 대상에 대항하는 K를 보면서 카프카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스토리 전개만큼 답답한 상황이 또 있다. 한 문단의 길이가 2~3페이지, 인물의 대화는 줄 바꿈 없이 조밀하게 쓰여있다. 밀집된 텍스트 속에서 한 발자국씩 나아가지만 숨이 막힌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은 2월 독서모임에 내가 선정한 책이다. 카프카의 장편을 접해보고 싶었고, 출판사 책 소개에서 본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불안과 부조리에 대한 통찰”에서 이 책이 궁금했다. 소설은 완독 했지만 당혹감은 가시지 않았고, 이 책을 읽을 회원들이 나를 원망할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걱정이다. 아니다. 그 걱정보다는 발제문 만들기가 더 문제다. K처럼 나도 '소송'에 휘말렸다. 아도르노의 말처럼 카프카의 소설은 “모든 문장이 ‘나를 해석해보라고’하면서 어떤 문장도 그것을 허용하려 하지 않는다."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두 번을 읽었지만 여전히 물음표다. 그런데 자꾸 생각하게 한다. 해석은 안되는데 느껴진다. 분명 무언가 있다. 일단 지금까지 알게 된 내용을 정리하고 논의할 내용을 생각해봐야겠다.


1. 친구의 유언을 지키지 않은 편집자, 막스 브로트

카프카의 세 편의 장편 소설 《실종자》,《소송》,《성》은 미완성된 소설이고, 그는 죽기 전에 친구에게 자신의 모든 원고를 불태워달라고 부탁한다. 친구인 막스 브로트는 그의 작품이 문학적인 가치가 뛰어나서 출판하기고 결심한다. 카프카는 왜 직접 처리하지 않고, 편집자 친구에게 부탁했을까. 편집자는 당연히 좋은 작품이라면 출판을 해야 한다는 직업의식이 발동할 텐데. 작가로서 미완의 작품을 세상에 내보낼 수는 없기에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원고의 생사를 맡긴 게 아니었을까.


2. 요제프 K의 죄는 무엇인가

이 소설은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모략한 것이 틀림없다. 그가 무슨 특별한 나쁜 짓을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체포되었기 때문이다.”라고 시작한다. K는 자신의 죄가 없음을 주장하고, 감시인은 그런 그에게 법을 모르면서 자신이 죄가 없다고 주장한다며 핀잔을 준다. 그는 논리적이면서 때로는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들을 하는 장면을 통해 어디까지나 불완전한 인간임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단 한 번도 자신의 죄가 있음을 의심해 보지 않는다. K의 죄는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다. 독일어 'Prozess’은 소송이자 과정을 의미하기도 하다. K의 소송이 판결로 넘어가는 과정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3. ‘법’에 대한 다양한 해석

K는 1년간의 ‘소송’을 거쳐 최종 판결을 맞는다. 그에게 법은 정의의 여신 아닌 사냥의 여신이었다. 법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말했던 법은 이러하다. “단 한 번도 실질적인 무죄판결을 본 적이 없다”, “피고는 매력적이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소송이 피고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법은 인간적인 판단에서 벗어난다.” 결국 K는 판사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상급법원에서 변론도 못해보고 사형을 당한다. 치욕적인 그의 죽음에서 거대한 법원 조직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영원한 부유 상태로 어떠한 손상도 없이 이전과 다름없이 존재하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은 독자가 읽는 과정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한계단 한계단을 오르며 문을 열고 나아가지만 여전히 계단은 높고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법원의 조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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