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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Jan 21. 2021

환대

정현종, 방문객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이 시 때문에 '환대'라는 말을 좋아한다. '환대'에는 정성을 담아 베푸는 마음도 있지만 그 사람의 삶과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이 담겨있다. 요가를 시작할 때 합장을 하고 "나마스떼" 인사를 하는데 이 말은 "당신 안에 있는 신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뜻이다. 인도에는 개개인이 믿는 신이 많다. 각자가 믿는 신 또는 신념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환대'는 그리스 고전에서부터 시작했다. 자신의 문을 두드리는 나그네를 누구인지도 묻지 않고, 집으로 맞이하여 목욕을 하게 하고, 먹을 거와 잠자리를 제공한다. 호메로스의《오뒷세이아》에는 '환대' 문화가 잘 드러나 있다. 그리스 고전에는 신이 사람으로 변해서 인간의 집을 찾아오는 경우가 자주 등장한다. 인간은 신을 미처 알아보지 못해 문전박대를 하지 않도록 자신의 집에 찾아온 사람을 정성껏 대접하는 문화가 생겼다고 한다.


헤르만 헤세의《크눌프》에서도 방랑자 크눌프가 친구 로트푸스를 밤에 찾아가자 반갑게 맞이하며 소시지와 다락방을 제공한다. 의사 마홀트도 길가에서 우연히 옛 친구 크눌프를 만나게 되자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우유와 빵을 주고 아픈 몸을 진찰한다.


돌아보면 나도 여행길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낯선 곳에서 받은 환대는 한 사람을 바르게 세운다. ‘환대’라는 선물에서 전해지는 고마움은 세상의 어둠이 사라지고 오직 밝음만 보이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선물을 누군가에게 건네야 하는 전달자가 된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스물아홉 살 12월에 떠난 홍콩 여행이다. 스물아홉 살은 마음이 복잡다단하다. 서른이 되면 뭔가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과 왠지 나이 듦에 서글퍼진다. 그래서 해외여행 두 번째 만에 난 의식적으로 혼자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행 준비 기간 두 달, 여행책 두 권을 독파하고 여행카페에서 얻은 자료로 완벽하게 여행을 준비했다. 홍콩 공항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기까지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문제는 버스에서 내린 순간부터였다. 저녁 8시, 침사추이 귀금속 상가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올라갔다. 그런데 게스트하우스가 없다. 1층으로 다시 내려와 보니 다른 구역에 엘리베이터가 또 있었다. 다시 올라갔다. 거기도 없다. 큰일이다. 시간도 늦었는데 어쩌지. 갑자기 불안해졌다.


고민 끝에 1층에 계신 수위 아저씨. 아니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불현듯 중국어 단어가 띠엔화(전화)가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전화기를 빌려주셨고 게스트하우스에 전화를 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는 번호였다. 더 난감해졌다. 할아버지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나를 어느 귀금속 상점으로 데려가셨다. 상점 사장님은 젊은 여자분이셨는데 영어로 어디를 찾느냐고 물어보시고, 나는 테이블에 놓인 노트북을 보고 잠깐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넷 속도는 느렸지만 다행히 게스트하우스 홈페이지가 열리고 하단에 전화번호가 있었다. 그분이 직접 게스트하우스에 전화를 해서 나를 데리러 와달라고 했다. 그제서야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문득 내 주위에 네다섯 명의 상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따뜻한 차를 한잔 가져다주었고, 이제 다 해결되었으니 앉아서 쉬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 나는 그들에게서 환대를 받았다. 3박 4일 짧은 일정이었지만, 환대는 계속되었다. 침사추이 야경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자기 배낭에서 삼각대를 꺼내 사진을 찍어준 남학생. 버스에서 내리면서 지하철역을 물었고 걷고 있는데 갑자기 자동차 경적소리가 크게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게 걱정이 되어 내게 손짓으로 방향을 가르쳐준 버스 아저씨.


홍콩은 내게 특별하다. 혼자 여행을 떠나서  보내고 왔다는 경험, 여행길에서 내 자신과 나눈 대화들,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나는 뭐든지   있을  같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서른을  맞이할  있었다.


홍콩 야경ⓒ 책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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