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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표 Sep 26. 2018

셰일 오일, 미국이 앞으로도 세계 최강대국인 이유.

세계 1위 산유국이 될 미국. 더  이상 다른 나라 눈치 볼 필요가 없다

경제는 에너지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공장을 돌려서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차와 배에 실어 외국에 수출하고, 사람들이 회사로 출근해 일을 하고, 상점을 열어 고객들에게 상품을 팔기 위해선 에너지가 필요하다. 석유, 석탄, 가스 같은 에너지가 없다면 국가 경제는 돌아갈 수 없다. 모든 국가가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거는 이유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석유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어딜까?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넣을 때 빼곤 딱히 석유에 대해서 생각해볼 일이 없는 일반인들은 중동 국가들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모래 벌판이 끝없이 이어진 사막에서 펌핑 유닛(채굴 장비)가 시소처럼 위아래로 움직이며 석유를 뽑아내는 모습이야 말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유국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다. 그렇다면 역시 세계 최대 산유국은 중동 국가들 중에서도 석유 생산량이 가장 많은 사우디 아라비아일까?


  그렇지 않다. 세계 최대의 산유국은 러시아다. 차르(러시아 황제를 칭하는 말)가 다스리던 1879년 카스피해 인근에 있는 바쿠 유전을 개발하면서 산유국인 된 러시아는 그 이후로 줄곧 주요 산유국의 지위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러시아가 1등이라면 사우디아라비아는 그 뒤를 잇는 두 번째 산유국일까? 이 역시 틀렸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석유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7월 기준 미국의 하루 석유 생산량은 1100만 배럴로 사우디 아라비아를 제쳤다. EIA와 미국 에너지업계에선 2019년 미국의 일일 산유량이 1180만 배럴까지 늘어 러시아까지 제치고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974년 옛 소련에게, 1976년에는 사우디 아라비아에게 생산량을 추월당한 지 약 오십 년 만에 다시 최대 산유국의 지위를 되찾는 것이다.  


  물론 석유 생산량은 산유국 정부의 판단에 따라 늘리거나 내리는 게 가능하다.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산유국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판단과 경제적 이익에 따라 석유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이 세계 1,2위 산유국으로 급부상한 이유는 이와 다르다. 채굴할 수 있으면서도 일부러 뽑아내지 않고 나눴던 석유를 이제야 뽑아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 아니란 말이다. 미국이 세계 최대 산유국의 지위를 넘볼 수 있게 된 건 그동안 채굴하고 싶어도 기술력이 부족해서 그리고 기술이 있더라도 생산 비용이 너무 높아 그냥 놔둘 수밖에 없었던 유전에서 이제는 석유를 뽑아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셰일 혁명’으로 부르는 기술 발전 덕분이다. 


  그리고 2013년께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셰일 오일은 앞으로도 미국이 오랫동안 국제 정치와 경제에서 패권을 휘두를 수 있는 원천이 됐다. 최근 미국이 자유무역이라는 기존 질서를 뒤집고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미국 우선주의’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이란, 베네수엘라, 러시아 등 산유국들에 마음껏 경제 제재라는 철퇴를 내려칠 수 있는 것도 셰일 오일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의 발목을 잡아온 에너지 수급 문제가 해결되면서 더 이상 국제 사회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어졌다. 


  통장 잔고가 두둑해지면 어디 가서도 남의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셰일 오일을 통해 남의 도움 없이 석유 비축고를 가득 채울 수 있게 된 미국. 이 같은 미국의 변화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팍스 아메리카나)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셰일 오일이란 과연 무엇이고 셰일 오일이 앞으로 세계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자. 

 

  미국 경제는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오일 쇼크로 큰 고통을 겪었던 경험을 갖고 있다. 1973년 10월 아랍 산유국들은 제 4차 중동전쟁을 빌미로 석유 생산량을 대폭 줄였다. 미국에 수출하는 석유의 양도 크게 줄였다. 생산량이 감소하자 가격은 미친 듯이 뛰었다. 감산 결정 직전에 3달러에 머물던 원유 공시 가격이 그 해말에는 11.65달러로 네 배가량 뛰어올랐다. 두 달 만에 석유 가격이 네 배로 뛴 것이다. 돈이 있어도 석유를 못 구할 지경이 되자 전 세계 경제에 심각한 불황과 인플레이션이 찾아왔다. 한국은 물론 세계 최강대국이던 미국도 그 여파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이 글은 팟캐스트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경영'의 원고입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top 10 채널로 선정된 경제, 경영에 대한 쉽고 깊이 있는 팟캐스트를 듣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1979년에도 이란 혁명이 계기가 돼 제 2차 오일쇼크가 전 세계를 덮쳤다. 1차 오일 쇼크 초기 미국의 대통령이던 리처드 닉슨은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걸 막겠다며 국민들에게 ‘에너지 독립’을 선언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석유 소비량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선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석유 수입 의존도는 그 이후로도 오히려 계속 올라가기만 했다. 1차 오일쇼크가 터진 1973년 당시 미국은 석유 소비량의 35%를 수입했지만 2005년에는 이 수치가 60%로 높아졌다. 막강한 군사력과 달러화를 앞세워 세계를 좌지우지하던 미국이지만 에너지 수급 문제는 미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상황이 달라졌다. 2017년 미국의 석유 수입량은 전체 소비량의 19%에 불과하다. 10여 년만에 외국산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뚝 떨어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바로 셰일 혁명 덕분이다. 먼저 셰일 오일이 기존 석유와는 어떤 점이 다른 지부터 간단하게 살펴보자. 


  셰일 오일은 기존 원유처럼 한 군데 유전에 모여 있는 기름이 아니라 지하 깊은 곳 바위 사이사이에 갇혀 있는 기름을 말한다. 진흙이 굳어져 생긴 암석인 셰일(Shale) 암반층에 들어 있어 셰일 오일이라고 불린다. 셰일 오일을 채굴하기 위해선 기존 원유와는 다른 채굴 방식을 써야 한다. 일반적인 원유는 기름이 모여 있는 유전까지 수직으로 땅을 파내려 간 뒤 기름을 퍼 올리기만 하면 됐다. 

  셰일 오일은 다르다. 셰일층까지 수직으로 파내려 가는 것 까지는 같지만 셰일층에 도착한 뒤엔 옆으로, 수평으로 파야 한다. 셰일 오일은 기존 원유처럼 액체 형태로 고여있는 것도 아니다. 쉽게 말하면 돌 사이사이에 기름이 섞여 있다. 기름을 얻기 위해선 돌을 깨서 새어 나오는 셰일 오일·가스를 채굴해야 한다. 그만큼 채굴 비용도 비싸다. 전통적인 원유는 배럴당 20달러 이하로 퍼 올릴 수 있지만 셰일 오일을 땅 위로 뽑아내기 위해선 배럴당 30~50달러가 든다. 셰일 오일을 뽑아내는 기술은 20여 년 전에 개발됐지만 그동안은 채산성이 맞지 않아 셰일 오일을 채굴하려는 수요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채굴 기술이 보다 발전하고 국제 유가가 꾸준히 오르면서 세일 오일을 채굴해 내다 팔아도 이익을 남길 수 있게 됐다. 가격이 높아지면 공급이 많아지는 건 경제학의 기본이다.  


  셰일 오일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건 2013년부터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에너지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자신감을 가장 강하게 갖고 있는 인물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대선 후보일 때부터 미국의 에너지 독립을 이뤄내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미국의 적국이 더 이상 에너지를 무기로 사용할 수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멋지지 않은가”, “내가 대통령 임기를 마칠 때면 미국은 완전한 에너지 독립을 이뤄낼 것이다” 선거 캠페인이 한창이던 2016년 5월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에너지 콘퍼런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외쳤던 말이다. 그리고 이 같은 장담은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현실이 됐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2016년 9월 846만 배럴에서 2018년 1월 975만 배럴로 그리고 2018년 7월에는 1100만 배럴로 늘어났다. 가까운 미래에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될 거라는 예측을 뒷받침한다. 


(지금 이 글처럼 경제 상식과 이슈에 대해 쉽고 또 쉽게 설명하는 저의 책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이 출간됐습니다. 경제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31가지 주제만 다룹니다.)


(예스24)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미국은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주요 산유국들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경제 제재를 가한다. 아무리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더라도 과거였다면 쉽지 않은 결정이다. 러시아에 대해선 크림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병합, 시리아 정부에 대한 지원 ,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 영국에서 발생한 전직 러시아 스파이 암살 기도 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혐의 등의 이유로 강도 높은 제재를 연달아 내놨다.


  2018년 8월엔 이란을 옥죄는 경제 제재를 발표했다. 미국은 물론 제 3국의 기업과 개인에도 적용되는 제재였다. 경제 제재의 핵심은 이란이 원유·석유제품을 수출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제재안에는 이와 함께 해외 기업·개인이 이란 해운사의 선박을 이용하거나 이란 중앙은행과의 금융 거래를 하는 것을 막는 내용도 담겼다. 이란과 금, 귀금속, 석탄, 자동차 등도 거래할 수 없게 했다. 이란이 미국 달러를 구매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도 포함됐다. 미국 기업과 개인뿐 아니라 제3 국 기업과 개인이더라도 이 같은 방침을 어길 시에는 역시 제재 대상이 된다. 이란의 돈줄을 말리고 더 나아가 이란 경제의 생명줄인 원유 수출까지 막아버리는 내용이다. 이란이 2015년 핵협정에 가입한 뒤로도 핵미사일을 개발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는 게 제재의 이유였다.


  베네수엘라에선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독재와 부정선거를 저지르고 있다는 이유로 마두로 대통령 본인을 포함한 고위 관료 70명이 2017년 여름부터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게 됐다.  

  셰일 혁명으로 급증한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미국이 주요 산유국들을 동시에 때릴 수 있는 배경이다. 과거였다면 이란산 석유 수출을 원천 봉쇄하는 내용의 제재안이 발표되자마자 국제 원유값은 폭등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곧 미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경제 성과로 유권자들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미국 대통령이라면 경제 제재를 두고 고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국에서 생산한 석유로 소비량의 80%가량을 충족할 수 있게 되면서 산유국에 대한 경제 제재를 망성일 이유도 줄어들었다. 


  미국산 셰일 오일의 힘은 2018년 중국과 벌인 무역전쟁 중에도 잘 드러났다. 미중 무역전쟁이 절정에 달했던 2018년 8월 중국 정부는 그달 말부터 25%의 보복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160억 달러어치 미국산 상품의 목록에서 미국에서 들여오는 원유를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미극 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2018년 6월 한 달 동안 중국이 수입한 미국산 원유의 양은 1600만 배럴에 달했다. 1996년 이후 가장 많은 양이었다. 에너지 수요의 70%를 해외에서 들여오는 중국은 미국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다. 액화 천연가스(LNG)와 디젤, 휘발유 등 다른 미국산 에너지에 대해서는 보복관세를 매길 수 있었지만 원유만큼은 그럴 수 없는 처지다. 


  급증한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앞으로 미국 경제가 에너지 대외 의존도를 크게 낮출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줌과 동시에 앞으로도 미국이 오랜 기간 패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수단이 됐다. 이전까지 미국의 슈퍼파워의 원천으로 꼽혔던 군사력과 달러화에 원유라는 새로운 무기가 더해졌다. 


  석유까지 스스로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미국은 더 이상 다른 국가들에 아쉬울 게 없어졌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더 이상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야 할 상품이 없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미국이 최근 과거 자신이 주도해 만든 자유무역 질서를 뒤흔드는 모습을 보이는 배경이다. 에너지 수급과 가격 안정의 상당 부분이 해외 국가들과의 관계에 달려있을 때는 미국 역시 국제 사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미국에서 생산하는 석유만으로도 수요의 대부분의 충족할 수 있게 됐다. 


더 이상 다른 나라들에 대해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된 미국 대통령에게 중요한 건 오직 자신을 뽑아준, 그리고 앞으로도 뽑아줄 유권자들을 만족시키는 것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표밭인 백인 제조업 노동자 계층의 요구대로 중국을 비롯한 해외 국가들에서 수입되는 제조업 상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고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를 탈퇴하고 NAFTA(북미 자유무역협정), 한미 FTA 등 주요 협정을 미국에 유리하게 개정하기 위해 뛰어든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홍선표 한국경제신문 기자

rickey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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