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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키 Sep 13. 2024

친구가 필요해!

매주 수요일 사당의 연습실로 향한다. 20분의 스트레칭 후 40분 간 코어 운동 및 아이솔레이션*. 그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60분 간의 춤 수업. 말 그대로 120분의 하드 트레이닝으로 땀에 절여지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것이 있다. 바로 시원한 맥주 한 잔. 하지만 같은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은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여자 아가들. 맥주 한 잔은커녕 말을 붙이는 게 범죄는 아닐지 걱정이 되는 나이 차이. 아, 춤추는 또래 친구가 필요하다!

  * 아이솔레이션(isolation) : 다른 신체 부위는 가만히 고정해 둔 채 목, 어깨, 가슴, 골반 등 특정 부위만 앞, 뒤, 양옆 등으로 움직여주는 춤의 기초 동작


이런 나의 바람을 읽은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은 몇몇 직장인 댄스 동호회의 릴스를 보여주었다. 내가 원하는 동호회의 조건은 딱 두 가지. 첫째, 춤에 진심일 것. 동호회에서 연애 대상을 찾거나 그런 행위를 너그러이 바라볼 수 있는 DNA가 나에게는 없다. 춤추러 왔으면 춤만 춰야지.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풀이 시간은 필수. 몇몇 동호회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살펴보는데 유달리 한 곳에 자꾸 마음이 간다. 힙합을 메인으로 하는 올카인드 크루. 힙합, 내가 해보지 않은, 낯설지만 멋있어 보이는 장르. 매주 힙합 선생님들의 수업을 들을 수 있다니, 친구도 찾고 새로운 도전도 하고, 일석이조가 아닌가. 정규 멤버가 되기 위해선 원데이 수업 세 번을 참여해야 한다니 기준이 빡센 것도 맘에 들어. 그렇게 (술김에) 원데이 수업을 신청하게 되었다.


원데이 수업 당일. 내향인은 신촌 연습실로 향하는 길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이미 정규 멤버들끼리는 다 친할 텐데 처음인 사람이 또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원데이 참여자는 나 혼자였다. 어색한 인사를 나눈 후 시작된 수업. 수업이 시작되면 춤에만 집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더 어색해져 버리고 말았다. 거울에 비친 내 춤이 남들과 좀 달랐기 때문이다. 분명히 같은 동작을 하고 있는데 묘하게 느낌이 달랐다. 골반을 오른쪽으로 뺄 때 나도 똑같이 하는데, 나의 동작은 뭐랄까 조금 섹시했다. 3년 간 한 선생님에게 배운 짬바가 여기서 이렇게 나타나다니. 아니야, 지금은 섹시하게 나올 때가 아니야. 난 힙합을 하고 있다고, 좀 더 멋들어지게 나와야 해.

“오늘은 촬영할 때 동선을 한 번 넣어볼까요?”

몸에서 섹시를 빼내려 정신이 없는 와중에 들린 청천벽력 같은 선생님의 목소리. 저는 지금 동작을 제대로 추는데도 정신이 없는데, 동선이라뇨. 춤을 혼자 추는 사람에게 가장 취약한 것이 바로 동선이다. 혼자 추면 내 위치, 남의 위치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혼자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그러나 여럿이 함께 동선을 만들어서 춤을 추면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위치와 남의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멋진 말로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춤추는 친구와 함께 하는 또 다른 맛이구나!


“리키님, 저희 오늘 치맥 하러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네, 갈게요.(수줍)”

당연히 가야죠. 제가 원했던 게 이건 걸요. 그렇게 맥주 한두 잔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어색했던 마음도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로 풀어졌냐면, 처음 본 사람의 연애 고민에 함께 조언해주고 있었다. 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고 할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런 사람들이라면 앞으로도 함께 춤추고 싶다고 생각했다. 딱 하루 같이 춤을 추고, 치맥을 먹은 게 다였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두 번의 원데이 수업을 더 참여한 뒤 올카인드 크루의 정규 멤버가 되었고, 춤추는 친구 아니, 춤추는 가족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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