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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주씨 Dec 03. 2019

모든 아이는 자란다. 한 아이만 빼고 말이다.

나는 자폐아 엄마입니다.


모든 아이는 자란다.

단 한 아이만 빼고 말이다.


[피터 팬], 제임스 매튜 베리





자라지 않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의 이름은 피터 팬.

시계가 없어 아무도 어른이 되지 않는 세계, 네버랜드에 살고 있는 아이다.






주변의 모든 아이가 자랐다. 신생아 때부터 봐왔던, 눕고, 기고, 걷던 모든 아이들이 쑥쑥 자랐다.


단 한 아이, 나의 아들 재준이만 빼고.



분유 정도는 한 손으로 먹던 시절



엄마들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애들 말이야. 너무 빨리 자라지 않아? 이렇게 예쁜데, 빨리 좀 안 컸으면 좋겠어.”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왜 나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재준이는 아직도 너무 아기 같기만 한데, 다들 아이가 예쁘니까, 시간이 가는 게 아까워서 하는 말일까?’라고,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혹시 재준이가 자폐증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으세요? “

의사가 나에게 물었다. 또래에 비해 말을 잘하지 못해 발달검사를 받으러 갔던 것뿐이었는데, 10분 남짓 재준이가 노는 모습을 관찰하던 소아정신과 의사가 그렇게 물었다.


재준이가 말을 잘 못해 발달검사를 받아보겠다는 말에 어린이집 원장님도, 담임 선생님도 재준이는 좀 늦은 것뿐이라고 했었다. 주변에서는 뭘 검사까지 받냐고, 엄마가 너무 극성이라고 했다. 그럴 법도 했다. 그동안 몇 번이나 받았던 영유아 검진에서도 발달에 문제가 있다든지, 자세한 검사를 받아보라는 말 같은 것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소아정신과에서 자폐증 검사 예약을 하고 집에 돌아온 날, 나는 인터넷 포털에서 ‘자폐증’, ‘자폐증 증상’, ‘자폐증 원인’, ‘자폐스펙트럼’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쳐봤다. 그날은 밤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



재준아, 나는 네가 상애기 때부터 정리벽이 있는 줄만 알았다.



총 발달 연령 10개월 이하에 해당함.

CARS : 38.5 ‘Severe Level’에 해당함.


36개월의 재준이는 채 10개월도 되지 않는 성장을 했다고 했고, 심각한 자폐로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주변 아기들의 성장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모든 아기들은 훌쩍훌쩍 커 어린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재준이 친구들의 동생들까지도 모두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아이의 말이 느리다느니, 소근육 혹은 대근육 발달이 어쩌니 하며 걱정하는 엄마는 아무도 없었다. 4살, 5살 아기 엄마들의 관심사는 친구와의 감정싸움으로 힘들어하는 아이의 감정 문제, 인성 문제, 유치원은 어디가 좋은지, 영어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운동은 발레가 좋을지 태권도가 좋을지 같은, 그런 것이었다.



재준이가 좋아하던 가베놀이



 그전까지 나는 재준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시크해서 좋았는데, 재준이가 몇 시간이고 좋아하는 숫자를 들여다보는 게 기특했는데,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집중해서 퍼즐을 맞추는 모습이 예뻐 보였는데, 이게 다 자폐여서 그런 거였구나. 다른 아이들은 그러지 않는구나.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정상’인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자괴감(?) 같은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재준이는 왜 말을 못 할까?’, ‘재준이는 왜 아파도 아프다고도 하지 않을까?’, ‘재준이는 왜 나를 엄마라고도 부르지 않을까?’, ‘재준이는 왜 웃지 않을까?’, ‘재준이는 왜 몇 시간 동안 숫자만 들여다볼까?’, ‘왜 퍼즐만 맞출까?’, ‘왜 자동차 줄만 세울까?’, ‘왜 새벽 3시까지도 잠을 자지 않을까?‘, ’ 재준이는 왜?‘, ’ 재준이는 왜?‘라는 생각만 하며 지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단연 나를 괴롭히는 ‘왜’는 ‘재준이는 왜 자폐일까?’였다.




그 유명한 자폐아들의 대표적 놀이인 줄 세우기 놀이. 이 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이 놀이에 의구심을 갖지 않았었다.



 그랬다. 내가 달라졌다. 진단을 받고 재준이는 달라진 게 없었는데, 내가 달라져버렸다. 전에 내 눈에는 기특하게만 보였던 재준이였는데, 이제는 무슨 행동을 해도 다 ‘얘가 자폐여서 그렇구나.’, ‘이게 자폐증 증상이구나.’ 같은 생각만 하게 됐다. 그때부터 나의 ‘왜’는 나도, 재준이도, 남편도, 우리 가족 모두를 힘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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