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진 속, 오점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캠퍼스, 잔디 위에 있는 학생들이 유난히도 많았다. 대다수의 학과에서 중간고사가 끝났고, 모두 여유롭게 계절을 만끽하고 있었다. 한가롭게 교정을 거니는 사람들 사이로, 한 남자의 빠른 걸음걸이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입을 굳게 다물고, 앞만 보고 걸어가는 남자의 표정에는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베이지색 슬랙스와 재킷을 말끔히 차려입은 그는 며칠째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했다. 시험 기간에 맞춰 수면 시간을 세 시간 이하로 줄였고, 오전에 있는 마지막 시험을 위해 밤을 꼬박 새운 상태였다. 온몸이 무거웠지만, 준비했던 만큼 시험을 만족스럽게 치렀다.
강한 햇살이 얼굴에 닿자, 눈가가 시큰거렸다. 눈을 몇 번이고 깜빡여 봤지만 시린 기운이 가시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시험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아직 남았기 때문이다. 스치던 유리문 앞에서 자신의 겉모습을 한 번 더 점검한 그는 더욱 빠르게 걸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태오선배? 선배, 오랜만이에요.”
“엇, 진짜 태오 선배네? 안녕하세요.”
“선배, 오전까지 시험 아니었어요? 머리에 옷까지 오늘 스타일 좋은데요.”
“와- 진짜. 나는 화장도 못 하고 왔는데!”
앞만 보고 걷던 안태오는 동아리 후배들에게 둘러싸여 멈춰 섰다. 입학 때부터 동아리 활동을 활발히 했던 터라 대부분의 후배가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대여섯은 돼 보이는 무리가 태오 곁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그는 딱딱한 표정을 감추고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선배는 시험도 끝났는데 어디로 가고 있어요?”
“동아리방에 가는 중이었어.”
“동방에요? 저녁 모임 전까진 아무도 없을 텐데요?”
“그러지 말고, 우리 사진 같이 찍어요.”
“그래요! 우리 시험 끝난 기념으로 사진 찍고 있었어요. 선배도 같이 찍어요.”
“음… 그래.”
“여기 봐요. 하나, 둘, 셋-”
후배들이 태오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셀카 모드 화면에 얼굴이 모두 담기지 않자 바짝 붙어 섰다. 자연스레 키가 큰 후배들이 뒤에 섰고, 태오는 앞쪽으로 밀려났다. 일곱 명이 좁은 공간에 엉켰고, 누군가의 손이 그의 어깨 위에 올려졌다. 미소 짓고 있던 그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한두 살 어린 후배가 예의 없다고 느껴진 게 아니었다. 불쾌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커다란 키, 지우지 못할 흔적과 같은 감각이 자꾸만 잊고 있던 기억을 불러냈다.
태오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열한 살 터울인 큰누나의 졸업식이 있었다. 명문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누나를 축하하기 위해 가족 모두가 함께 했다. 그녀의 앞길만큼 맑은 하늘 아래, 가족이 나란히 서서 찍었던 사진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거실 한가운데 걸려있다. 모두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 아름다운 사진에는 오점이 하나 있었다. 사진의 오른쪽 맨 끝에 서 있는 작고 왜소한 소년은 나란히 서 있는 훤칠한 키의 네 사람과 전혀 다른 유전자를 지닌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소년의 얼굴은 밝기만 하다. 언젠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올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기에. 오지 않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딱한 소년의 모습은 지울 수 없는 낙인이 되었다.
연세에 비해 큰 키를 가진 부모님을 따라 두 누나의 키도 컸다. 평균을 훌쩍 웃도는 키 때문에 이성을 만나기 힘들다고 넋두리할 정도였다. 훤칠한 키에 늘씬한 외모를 타고난 가족들은 언제나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그에 반해 태오는 키가 작고, 체격도 작은 편에 속했다. 성장기가 뒤늦게 찾아오는 거라 믿었지만 그 사진은 말하고 있었다. 자신은 그들과 다르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기다리던 순간은 않을 것이라고.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특히 날 때부터 영재라는 소리를 들었던 큰누나에 비하면, 그는 평범하다 못해 덜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막둥이로 태어나 귀여움을 받느라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을 뿐이었다.
태오는 교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툭 튀어나와 부자연스러운 어깨선, 흘러내리는 소매를 감추려 움켜쥔 손, 심하게 펄럭이는 바지통까지.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옷은 외려 그의 체형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옷장을 열어 옷을 모두 다 꺼냈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헌 옷 수거함에 버렸다. 부모님께 통보하듯이 말했고, 새 교복을 맞춰달라고 했다. 멀쩡한 옷을 버린 탓에 난생처음으로 회초리를 맞았고, 그는 종아리가 엉망이 된 대가로 몸에 맞는 교복을 얻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키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소매와 바지가 조금 짧아지긴 했지만,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그 후 태오는 인정하기로 했다. 자신은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 나지 않았으며, 혹시 그럴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도 하지 않기로.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다. 어떤 것에 집중해야 할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할 수 있는 한 공부에 매진 했고, 학교에서 하는 모든 평가에 집중했다. 나날이 성적이 좋아졌고,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등 하는 것이 당연해졌을 무렵에는 애쓰지 않아도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들었다. 있는 줄도 몰랐던 자신감은 결과물에 생겨났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타고난 큰 누나의 발자국을 따라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휴대폰 화면 하단에 있는 자신의 얼굴을 다시 바라봤다. 태오는 원했던 대학에 들어왔고, 그가 바라던 성적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굳어 있던 그의 표정이 천천히 풀렸다.
“됐다. 사진은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아.”
“선배 나중에 톡으로 보내드릴게요.”
“우아- 시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다행히 그의 복잡한 마음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인사를 전하려던 찰나였다.
“아, 그거 들었어? 지웅 선배 휴학하는 거 아니래.”
“뭐? 진짜?”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휴학 이야기도 엄청 급하게 나온 거잖아.”
“그렇긴 했지. 대뜸 휴학한다고 했을 땐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어.”
“와! 동아리 활동도 계속하시겠지? 진짜 이번에는 같은 팀 해보고 싶어. 아니 어떻게 그 선배는 인성도 좋고 실력도 좋냐. 헉, 그러면 다음 동아리 회장은 지웅 선배가 되는 거 아냐?!”
“야, 너!”
후배가 신나게 떠들던 동기를 팔꿈치로 쳤다. 말하진 않았지만, 그 행동은 분명 태오를 의식한 것이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나는 먼저 가볼게. 나중에 봐.”
“네… 선배. 나중에 봬요.”
등을 돌려 동아리 방으로 걷는 태오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졌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