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end is a new beginning
기나긴 아티스트 웨이 12주간의 여정이 끝났다.
모든 끝에는 허무가 있다. 과정을 떠나서 끝에 닿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감정. 모든 시작에 설렘이 존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2년 만에 쓰는 에필로그, 여정으로 인한 충만함이 아닌 허무함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쓰는 시기가 하필이면 한 해의 끝을 앞둔 시점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셀 수 없이 하루를 시작하고 끝맺어 왔지만, 1년의 끝은 그 무게가 다르다. 곱씹을수록 가슴 한구석이 헛헛해지는 건 막을 수 없다.
나는 허무함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허무는 삶의 본질에 가깝다.
새까만 하늘의 작은 별빛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작은 인간. 그리고 한 인간이 존재하는 찰나와 같은 시간인 삶. 중요한 것들로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하늘만 올려다봐도 알 수 있다. 의미를 가지기엔 삶은 너무나도 짧고 하찮다는 것을. 그렇게 자연의 방대함을 깨달을 때마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느낌이 든다. 수도 없는 우연이 겹쳐 태어난 나는 그냥 어떤 이유도 없이 존재한다. 그저 존재하기 때문에 살아가고 있다. 거기에는 어떤 목적도 의미도 의지도 없다. 나는 우연한 시점에 일어난 사건에 불과하다.
그를 부정할수록 함정에 빠질 뿐이다.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려다 이상한 것들에 집착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주로 경험에 집착했다. 새로운 경험을 뛰어넘으면, 삶의 의미를 찾고 다른 차원의 내가 되기를 바랐다. 고집스럽게 건축학과를 선택했을 때도, 홀로 한 달간의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도, 첫 장편 소설을 억지로 완성했을 때도 그랬다. 사심 없이 그저 완성에만 목표를 둔다고 했지만, 다른 속내가 있었다. 완성하고 나면 좀 더 수준 높은 글을 쓸 수 있고, 글이 내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 줄 의미가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 건축학과를 졸업했을 때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도, 완성된 글이 담긴 책을 손에 쥐어도,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고루한 문체로 글을 썼고, 지겨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한 편의 글을 만들 수 없었다. 오히려 상상에 빠져 소설을 썼던 그 순간이, 절정기였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집착했던 경험의 끝에 서면, 언제나 허무가 거대한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작은 나는 파도를 뛰어넘을 수도, 코로 들이닥치는 짠 바닷물을 막을 수도 없다. 아무리 발버둥 쳐 봐도 벗어날 수 없다. 허우적거릴수록 점점 더 깊이 빠져들 뿐.
의미는 없다.
어쩔 수 없이 거대한 허무와 다시 마주하고 받아들인다. 그 순간 어두운 바닷속으로 영영 가라앉을 것 같던 몸이 두둥실 떠오른다. 온몸에 힘을 빼면 물 위로 떠 오르는 것처럼, 어느새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흐르고 있다. 그리고 마주한다. 눈부시게 빛나는 하늘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을, 망망대해를 내 멋대로 헤엄쳐 볼 수 있다는 것을. 그게 바로 허무의 이면이라는 걸 깨닫는다.
찰나와 같은 삶에는 쓸모없는 것들만 가득하다. 꼭 해야 하는 것은 없고, 꼭 무언가가 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 말은 꼭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없고, 꼭 되지 말아야 할 무언가도 없다는 말과 같다. 허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자유가 펼쳐졌다. 그리고 그 자유 속에서 나는 언제나 새로운 일을 저질렀다.
책 <아티스트 웨이>가 끊임없이 '쓸모없는 짓'을 권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행위에 대한 의미를 자꾸 떠올리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아이들의 장난감인 슬라임을 만져볼 여유는 없으며, 아침마다 의미 없는 글을 휘갈겨 쓰는 일은 고역이 된다. 거창한 작가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짧은 글을 완성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저 의미도 없는 '놀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꺼이 장난감에 손을 대고, 호기심에 한 번도 걷지 않았던 산책길을 걸을 수 있었다. 홀로 여행을 떠나고, 함께 사는 반려동물의 관찰기를 적었다. 한 글자도 쓰지 않았던 시간이 새로운 글의 소재가 되었고, 꽁꽁 싸매듯이 감춰뒀던 내 소설을 세상 밖으로 꺼낼 수 있었다.
그리고 삶 곳곳에서 이야기가 될 씨앗을 즐겁게 주울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의 허무맹랑한 상상에서 거대한 이야기를, 상사의 호통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한 사람의 일생에서 감추고 싶었던 내 이야기를 발견했던 나.
12주간의 여정이 끝나 헛헛함을 느끼는 지금, 이제는 알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순간이라는 것을. 잠들어있던 아티스트는 깨어났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기꺼이 또 한 번 뛰놀아 보려한다.
더불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마다의 시작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작은 기록이 따스한 응원이 되길 바라며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