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이라는 환상
도마뱀을 키우기 전에 유튜브로 본 적이 있다.
손바닥 크기만 한 도마뱀이 얌전이 손에 안겨있는 모습을.
뿐만 아니라 정수리부터 등을 쓰다듬고,
통통하게 나온 뱃살을 만지며, 왕관처럼 쓴 돌기를 훑고,
손가락으로 작고 귀여운 발바닥과 하이 파이브를 하는 장면을...!
물론 핸들링을 하려고 도마뱀을 키우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귀여운 뱃살을 만지는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건 불가항력이다.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되던 작은 도마뱀 레미.
녀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상상했던 순간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육장에 손그림자만 어른거려도 녀석은 가장 구석진 곳으로 도망쳤다.
아직 너무 애기라 무서워서 그렇겠지 이해하면서도 서운하다.
억지로 손바닥에 올려두면, 안절부절 못한다.
머리를 이곳저곳 흔들며 쉴 새 없이 걷고 튀어 오르려 한다.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움직이던 녀석과 동일 개체가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때문에 나도 손바닥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머리가 향하는 방향으로 갑자기 뛸 수 있으니까, 얼른 다른 한 손으로 길을 만들어 줘야 한다.
위치를 옮겨가면 빈손은 또 재빨리 길을 만든다.
가까이서 보면 레미 전용 러닝머신,
멀리서 보면 도마뱀으로 태평하게 저글링하는 이상한 사람.
하도 답답해서 먹이를 묻힌 손가락을 가까이 들이댄 적이 있다.
식욕이 왕성한 레미는 냄새를 맡고 '왕-'하고 깨문다.
덧) 아성체인 레미의 이빨은 포유류에 비하면 솜방망이나 다름없다. 통째로 삼켜서 위에서 천천히 소화하는 녀석들에게 이빨은 사냥감이 도망가지 못하는 정도의 역할만 할 뿐. 씹고 뜯고 잘게 다진 음식물을 위에서 빠르게 소화하려는 단단한 포유류의 이빨과는 다르다.
그나마도 먹는 게 아니면 먼저 다가오는 일은 절대 없다.
어째... 자연스레 핸들링하는 영상이 환상처럼 느껴진다.
그래, 아직 쪼꼬미니까.
인간도 자라면서 사회성이 어쩔 수 없이 늘기도 하잖아.
덩치가 좀 더 커지고 무서운 게 없어지면,
언젠가는 귀찮다는 듯이 그냥 몸을 맡기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아?
많이는 말고.. 쪼금만. 아주 쪼끔만 기대해 볼게.
D+158
이름 : 레미
분류 : 파충류, 도마뱀
종 : 크레스티드 게코
모프 : 레드릴리
탄생일 : 25년 08월 13일
첫만남 : 25년 09월 07일
성별 : 모름
무게 : 아직 측정 불가
한 줄 메모 : 어제 아주 오랜만에 눈이 흩날리는 걸 봤다. 아마 레미는 평생 볼 수는 없는 광경이겠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