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들링이 뭔가요, 먹는 건가요?

교감이라는 환상

by 리을

도마뱀을 키우기 전에 유튜브로 본 적이 있다.

손바닥 크기만 한 도마뱀이 얌전이 손에 안겨있는 모습을.

뿐만 아니라 정수리부터 등을 쓰다듬고,

통통하게 나온 뱃살을 만지며, 왕관처럼 쓴 돌기를 훑고,

손가락으로 작고 귀여운 발바닥과 하이 파이브를 하는 장면을...!


물론 핸들링을 하려고 도마뱀을 키우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귀여운 뱃살을 만지는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건 불가항력이다.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되던 작은 도마뱀 레미.

녀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상상했던 순간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육장에 손그림자만 어른거려도 녀석은 가장 구석진 곳으로 도망쳤다.

아직 너무 애기라 무서워서 그렇겠지 이해하면서도 서운하다.


KakaoTalk_20260211_155636668.gif 요리조리 잘도 피하는 레미


억지로 손바닥에 올려두면, 안절부절 못한다.

머리를 이곳저곳 흔들며 쉴 새 없이 걷고 튀어 오르려 한다.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움직이던 녀석과 동일 개체가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때문에 나도 손바닥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머리가 향하는 방향으로 갑자기 뛸 수 있으니까, 얼른 다른 한 손으로 길을 만들어 줘야 한다.

위치를 옮겨가면 빈손은 또 재빨리 길을 만든다.


가까이서 보면 레미 전용 러닝머신,

멀리서 보면 도마뱀으로 태평하게 저글링하는 이상한 사람.


KakaoTalk_20260211_155636668_01.gif 도마뱀 저글링하는 이상한 사람


하도 답답해서 먹이를 묻힌 손가락을 가까이 들이댄 적이 있다.

식욕이 왕성한 레미는 냄새를 맡고 '왕-'하고 깨문다.


덧) 아성체인 레미의 이빨은 포유류에 비하면 솜방망이나 다름없다. 통째로 삼켜서 위에서 천천히 소화하는 녀석들에게 이빨은 사냥감이 도망가지 못하는 정도의 역할만 할 뿐. 씹고 뜯고 잘게 다진 음식물을 위에서 빠르게 소화하려는 단단한 포유류의 이빨과는 다르다.


KakaoTalk_20260211_155530663.jpg 핸들링이 뭔가요, 먹는 건가요?


그나마도 먹는 게 아니면 먼저 다가오는 일은 절대 없다.


어째... 자연스레 핸들링하는 영상이 환상처럼 느껴진다.


그래, 아직 쪼꼬미니까.

인간도 자라면서 사회성이 어쩔 수 없이 늘기도 하잖아.

덩치가 좀 더 커지고 무서운 게 없어지면,

언젠가는 귀찮다는 듯이 그냥 몸을 맡기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아?


많이는 말고.. 쪼금만. 아주 쪼끔만 기대해 볼게.




D+158


이름 : 레미

분류 : 파충류, 도마뱀

종 : 크레스티드 게코

모프 : 레드릴리

탄생일 : 25년 08월 13일

첫만남 : 25년 09월 07일

성별 : 모름

무게 : 아직 측정 불가

한 줄 메모 : 어제 아주 오랜만에 눈이 흩날리는 걸 봤다. 아마 레미는 평생 볼 수는 없는 광경이겠지..ㅎㅎ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