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과 151일째 공존 중
PM 5:20
현관문을 열자마자 곧장 안방으로 향한다. 형광등이 아닌 무드등을 켠다. 은은한 불빛에 기대 레미의 집을 바라본다. 아직은 잠들어 있을 시간. 잘 때는 한층 더 그늘진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녀석은 취향에 따라 잠자리를 옮긴다. 오늘은 낮은 높이의 구석에서 앞발을 모아 가지런히 두고, 얼굴을 기댄 채 잠들어 있다. 청소를 하고 가구 배치를 다시 할 때면, 일부러 구석진 곳을 몇 군데 만들어 둔다. 내가 생각해 둔 곳에 있는 걸 볼 때면 은근한 쾌감에 미소를 숨길 수 없다. 바싹 말라 있는 집안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준다. 잠시 바라보다 다시 불을 끄고 나간다.
PM 7:20
저녁을 먹다 볼일이 있어 안방에 들렀다. 다시 무드등을 켜고 재빠르게 레미집 앞에 앉는다. 아무리 볼일이 있어도 안방에 들어오면 이곳을 그냥 스쳐 지날 수는 없다. 한창 깨어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간, 녀석은 보통 잘 보이는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다.
빠르게 앉는 이유는 눈동자 때문이다. 불을 켜자마자 바라보면, 커다란 눈망울이 새까만 동공으로 가득하다. 초롱초롱하다는 비유가 절로 떠오른다. 그러다 빛에 익숙해진 눈동자는 점차 세로로 긴 타원 모양으로 변한다. 눈을 세모나게 뜬다는 게 이런 모양일까? 같은 얼굴에 눈동자 크기만 달라져도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어둠 속에서 호기심 넘치는 표정을 짓다가도, 밝은 곳에서는 새초롬하게 무표정한 표정을 짓는 녀석. 그 간극을 바라보는 게 즐겁다. 가끔 운이 좋을 때면, 왼쪽 눈과 오른쪽 눈에 다른 표정이 공존하는 순간을 포착할 수도 있다.
PM 9:30
대충의 집안일을 끝내고 한숨 돌리는 시간. 레미의 밥을 챙겨준다. 요즘따라 식탐이 늘어 공격적으로 밥을 먹는 녀석.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다. 사소한 고민이 있다면, 바닥에 놓인 밥은 잘 안먹는다는 것. 본능적으로 사냥을 좋아해서 그런지, 숟가락으로 눈앞에 흔들어 줘야 먹는 듯하다. 밥그릇에 놓고 먹을 때까지 길들여볼까 고민도 해봤지만, 그러기엔 떠먹여 주는 즐거움이 너무 크다. 마치 한 마리의 맹수를 코앞에서 보는 느낌이랄까...?ㅋㅋ 매번 소심하게 있다가 흉포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은 볼 때마다 신선하다.
PM 10:30
잠들기 전, 한 번 더 분무해 준다. 한창 활동 중인 레미가 어떤 자세로 있는지 찾아본다. 뉘 집 반려동물인지 참 잘생겼다. 똥그란 눈알에 솜털처럼 서 있는 눈썹. 발바닥에 탈피 자국이 좀 남아있지만, 그 정도야 인간미 아니- 도마뱀미로 장식해 두는 거지 뭐. 그렇게 잠시 바라보다 괜히 좁은 숨구멍 사이로 입바람을 불어넣어 본다. 움찔거리며 움직이는 녀석을 보면서 킬킬거리다 침대에 눕는다.
만난지 5개월 째, 어느덧 녀석은 자연스레 내 일상에 스며있다.
D+151
이름 : 레미
분류 : 파충류, 도마뱀
종 : 크레스티드 게코
모프 : 레드릴리
탄생일 : 25년 08월 13일
첫만남 : 25년 09월 07일
성별 : 모름
무게 : 아직 측정 불가
한 줄 메모 : 나는 암컷 같은데, 남편은 계속 수컷이라 확신한다. 내기라도 해볼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