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겁도록 가벼운 마음
새벽 3시 30분에 눈을 떴다.
어두워도 금세 안심할 수 있는 우리 집의 침대 위.
선명한 현실 위로 조금 전까지 현란하게 꾸던 꿈의 장면들이 눈꺼풀 위로 달아나려 했다.
더듬더듬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화장실로 향했다.
따가운 눈을 억지로 뜨면서 두 엄지손가락으로 꿈을 꾹꾹 눌러 담았다.
내 꿈에는 난생처럼 구렁이가 등장했다.
시커멓고 그 굵기가 아이 머리통만 한 채로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이어졌다.
무서움은 없었고, 구렁이의 존재는 자연스러운 듯했다.
어쩐지 꿈을 적어놓고도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AI에게 물었다.
AI는 자꾸만 꿈의 요소들을 현실과 연결 지어 설명한다.
보통은 해몽을 원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해몽이 아니었다.
그냥 융이 말했던 것처럼 갖고 놀고 싶었다.
결론을 계속 내리는 AI를 내버려두고, 꿈에 나오는 상징들을 확장해 보고 싶었다.
고민하다 꿈에 등장한 구렁이에 감정이입을 했다.
이 존재는 어떤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왜 그곳에서 언제부터 존재하고 있었는지 썼다.
구렁이가 된다는 망상 같은 상상에 정답은 없다.
누구도 볼 수 없는 내 꿈이고, 나조차 다시 꿀 수 없으니, 정오답이라 채점할 수 없다.
구렁이를 시작으로 꿈속에 나왔던 감기에 걸려서 계속 울고만 있던 아기,
그런 아기를 다독이며 보듬어주던 엄마, 그리고 잔뜩 화가 난 꿈속의 나까지.
네 인물의 상황, 관계, 그리고 원하는 바를, 진짜 멋대로 썼다.
넷의 구도가 미묘하다.
그곳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 그저 다른 방향의 마음만 있을 뿐.
문득 요즘따라 나태한 기분에 팽개쳐둔 글쓰기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뭔가를 상상하며 적어 내려가는 게 오랜만이라는 느낌까지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외면하려다 그냥 창을 열었다.
다른 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맨 마지막 문장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냥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답답해하고 걱정했던 게 우스워질 만큼 그냥 아무렇지 않게.
문체가 건조해야 한다느니, 자연스럽게 감정을 읽는 사람이 느끼게 해야한다는 것들은 놔두고,
그냥 썼다.
글은 진작에 클라이맥스에 와있었다.
고조된 장면을 지나 잠잠한 수평선을 잠시 그리다 툭하고 마지막 장면에 닿았다.
몇 번이고, 정말 몇 번이고 머리로 상상했던 장면을 그냥 글자로 옮겼다.
그렇게 엉망진창의 초고 하나가 또 탄생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싱겁고, 또 예상치 못한 불똥으로 인해.
나태하다, 열정이 없다며 잔뜩 스스로 주눅이 들었었지만,
75일 동안 2만 자가 넘는 글을 만들어냈다.
그 자체로 신비롭다.
접속 일자 : 26년 3월 20일 금요일
분량 : 2,100자
오늘의 문장 :묵직한 진동 뒤에 찾아오는 익숙한 정적 속에서 그녀는 손에 든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