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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을 Jan 31. 2023

사진 한 장에 비는 소원

자꾸만 바라보게 되던 사진 한 장에 관한 이야기

하얀 구름이 눈이 부실 정도로 파란 하늘. 그 아래 연둣빛, 녹색 잎이 무성히 달린 커다란 나무들이 먼발치에 서 있다. 잎의 모양도 나무의 크기도 낯설다. 또 그 아래는 하늘 향해 한껏 기지개를 켜고 있는 푸릇푸릇한 잔디가 들판을 한가득 메웠다. 위아래로 고작 푸른 계열만이 널려 있을 뿐인데, 그 모습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햇빛이 무슨 재주를 부린 것인지 도무지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다. 분명 빛을 비춘다는 건 본연의 색을 드러낸다는 것인데, 마치 모두 계획이라도 한 듯이 조화롭다. 그 가운데 꼬마가 서 있다. 목에는 하얀 손수건을 두르고, 연분홍색 점퍼에 연분홍색 바지를 입고, 한 뼘 크기의 자그마한 운동화도 신고서. 당당히 서 있다는 증거로 발아래 앙증맞은 그림자를 잔디 위로 드리운다. 양손으로 미니마우스 인형을 꼭 붙들고, 진지하게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다. 꼬마는 푸른빛 속에서 반짝이며 하늘을 날고 있는 자그마한 방울, 비눗방울에 시선을 멈췄다. 쉼 없이 흘러오는 비눗방울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그제야 보이는 사람이 하나 있다. 전신을 검은 옷으로 두르고 한 손에 든 분홍색 장난감으로 열심히 비눗방울을 만드는 사람. 먼발치에서 꼬마에게 시선을 맞춘 채 배경처럼 서 있는 사람. 밝은 햇빛에 그의 미소도 숨김없이 드러났다. 그는 꼬마의 아빠이자, 내 남동생이다. 


지난해 5월 카톡으로 사진 몇 장을 받았다. 이국적인 풍경의 공원에서 동생과 조카가 즐겁게 뛰노는 사진을 한참이고 들여다 바라봤었다. 재작년 동생네 가족은 캐나다로 갔다. 아장아장 어색하게 걷던 조카는 두 손을 자연스레 쓸 정도로 잘 걷고 뛰는 모양이다. 옷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제법 키도 컸다. 동생은 그곳에서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있다. 덕분에 늘 앳돼 보이던 얼굴이 완전히 사라졌다. 잘 자라지도 않는 수염을 약까지 발라가며 기른다는 게 이해가 안 되지만, 이렇게 보니 또 퍽 어울려 보인다. 그리고 햇빛에 드러난 동생의 표정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다정하게 조카를 보는 눈빛이, 저도 모르게 지은 그 미소가 한 아이의 아빠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오던 것들이 문득 실감 나는 순간이 있다. 마치 머리로 이해한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차이가 나는 것처럼 그곳에도 시차가 있다.


동생은 진즉 군대를 다녀왔고, 첫 직장에 출근했었고, 결혼해 아이와 함께 캐나다에 있다. 분명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문득 의미 없이 연락처에 등록한 즐겨찾기를 보다가, 예전에 살던 동네를 지나다가, 엄마랑 통화를 하다가, 또 이렇게 사진을 볼 때면 깨닫고 만다. 완전히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동생을. 어색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내게는 같은 집에 살면서 싸우고 별것 아닌 일로 다시 화해했던 기억이 훨씬 많았다. 일상에 동생의 자리가 너무 없는 것 같아 서운하다가도, 저리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된다. 언젠가 좀 더 시간이 지나 만났을 때 할 즐거울 이야기를 쌓는 중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까지 너도나도 이 사진만큼 웃는 날들로 가득 채우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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