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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을 Apr 27. 2023

불안한 마음을 인정해 보는 것

[리뷰] 참을 수 없이 불안할 때, 에리히 프롬

제목에 끌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백수로 살게 된 요즘 '불안'이라는 말은 나와 아주 가깝게 있다. 주변의 사람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게, 하루를 온전히 바라보고 챙기는 것이 나밖에 없다는 게 고독하고 외롭다. 불안은 그 틈을 놓지 않고 파고들고, 종종 어찌할 수 없는 생각으로 나를 몰아 하루를 망치게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책으로 손이 갔다.

매력적인 제목에 홀렸다고 말할 수밖에.


'현재의 내가 이런 것은 내 어머니가 나를 잘못 길렀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부모나 외부 영향에 압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은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참을 수 없이 불안할 때, 에리히 프롬 57p


심리학책을 읽다 보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나 역시 그런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 받은 상처가 많이도 떠올랐다. 사랑받고 싶어 발버둥 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웅크린 마음은 여전히 가슴 속에 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부모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부모님이 아니었더라도 나를 압도하는 사건은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친구, 선생님, 교육, 사회 등 수도 없이 많다. 그 모두를 탓하는 것으로는 무엇도 변화시킬 수 없다.

박찬국 교수는 '왜 나는 현재의 나인가?'보다 중요한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다른 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자기 자신 구원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말한다.


인간의 삶은, 약화된 본능 대신에 이성과 상상력을 갖기 때문에 사로잡힐 수 있는 '고독감'과 '무력감' 그리고 '허무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참을 수 없이 불안할 때, 에리히 프롬 109p


저자인 박찬국 교수의 책은 니체를 공부할 당시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쉬운 문체로 풀어놔서 어렵고 힘든 니체를 읽으면서도 방향성을 찾고 이해할 수 있었다. 위의 문장을 읽으며 니체의 사상이 자꾸만 떠올랐다.


초인이란 필요한 일을 견디어 나아갈 뿐 아니라
그 고난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의 삶 자체엔 어쩔 수 없이 고독감, 무력감, 허무감 같은 부정적인 것이 있다. 우선은 그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니체도 언제나 그것을 강조했다. 불안과 같은 감정이 없는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불안과 고난을 겪는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자기 자신을 소유로서가 아니라 존재로서 체험하는 사람은 상처 받고 부서지기 쉽다. 그는 능동적인 감각을 잃어버리고 마는 순간마다, 또는 마음이 집중되지 않을때마다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자아의 성장은 언제나 이렇게 깨지기 쉬운 기초 위에서만 비로서 이뤄진다.

참을 수 없이 불안할 때, 에리히 프롬 238p


무언가를 소유하면서 정체성을 찾는 사람이 현대에 많다. 대다수가 그런 물질적인 것에 자신의 가치를 투영하고 있다. 저자는 존재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더 부서지기 쉽다고 말한다. 삶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들은 능동적인 감각이나 마음이 집중되지 않을 때마다 어려움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한 번의 멋진 경험으로 정체성을 찾고 멋진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삶이 지속되는 한, 이야기가 멈추지 않듯이 고난과 불안은 끊임없이 우리 곁을 맴돈다.


하지만 그 말은 성장할 기회가 계속 주어진다는 것과 같다.


인용하지 않았지만, 에리히 프롬은 나치즘과 같이 사람들이 광적으로 믿게 되는 사상에 대해 많은 고민이 담겨 있다. 현대에도 그러한 광적인 종교가 존재한다. 상식적으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자꾸만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불안을 부정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강력한 힘에 복종함으로써 혼자서는 견딜 수 없는 불안을 극복하려는 시도- 라고 생각해본다면, 그런 종교를 믿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이 간다.


우리는 불안한 상태를 극도로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불안해지면 어떻게든 그 생각에서 벗어나려 하고, 심하게는 불안한 사람을 정상의 범주에 두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부터 불안에 관해 설명을 들은 적이 없었다.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을 인정해 주는 어른을 만나본 적도 없었다. 드러냈을 때 돌아오는 부정적인 반응에 극도로 안으로 숨기고 혼자서만 다뤄야 하는 문제로 남겨뒀었다.


만약 누구나 불안하다는 것. 삶을 살아감은 고독감과 무력감, 허무감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라는 말을 들었더라면- 조금 다른 시각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불안함을 인정하는 것, 불안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받아들여 보는 것에 대해 자꾸만 다시금 생각해보 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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