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딱 붙어있어!

내가 운전하는 차는 꽤 오래됐다.

2008년식이니 벌써 15년 된 차다. 가끔씩 여기저기 아프다며 신음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출퇴근하기에는 특별히 부족함이 없다. 에어컨 잘 나오고 라디오도 잘 나오며, 잘 달리고 잘 선다. 나라고 왜 더 좋은 차에 관심이 없으랴. 그러나 이 차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남아있어서다.

각설하고, 이 차에 있는 딱 한 가지 부족한 것이라면 후방카메라가 없다는 거다. 차 운전하는 분들은 알겠지만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써본 적 없는 것이 후방카메라다. 주차할 때의 편리함은 오히려 센서보다는 카메라가 더 낫다는 게 내 지론이다. 2008년 당시에는 아마 기본 옵션으로 후방카메라를 장착하려면 꽤 많은 돈이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용도로 거치형 내비게이션을 구매하고, 이때 후방카메라를 장착해서 주차 시에는 내비게이션에 보이는 영상 모니터로 활용한다.

몇 년 동안 아무 의심 없이 이 녀석을 잘 활용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매립형이 아니라 거치형이다 보니 차 전면 유리와 내비게이션을 중간에 고정시킬 수 있는 거치대가 필요한데, 이 거치대가 어느 순간 유리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뽁뽁이가 문제다. 영구적으로 쓸 수 있고 깨끗하게 표면을 닦아주면 계속 쓸 수 있다고 하지만 요즘은 아침 출근할 때 보면 어김없이 떨어져 있다. 거치대가 유리에서 떨어지면 덩달아 네비도 함께 떨어지고, 연결된 전원 선이 빠져있기도 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어제는 운전 중에 갑자기 툭 하며 떨어지기도 했다.

온갖 짜증이 밀려온다. 그리고 이내 다시 유리에 거치대를 붙이며 이런 말을 한다.

"거기 딱 붙어 있어."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딱 붙어 있으라고?' 순간 지나온 내 인생들이 스쳐 지나간다. 

내가 벌어서 대학원에 갈 거라며 시작한 첫 직장 생활, 더 좋은 회사로 가겠다며 박차고 나온 이직의 경험, 두 번의 창업 실패, 나를 힘들게 하고 있는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의 실망과 인간에 대한 좌절 등등. 딱 붙어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던 지난날들이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던 선인의 말들이 떠오른다. 심지어 가족까지도 영원하지 않는다 말한다. 그렇다면 딱 붙어있어야 할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내가 행복해야 주변이 행복해질 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무작정 이기적인 사람도 아니거니와 무책임하게 살아온 인생도 아니라고 믿기에 내가 우선 행복해져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좀 피곤하긴 하지만... 좀 더 영악해져야겠고, 게을러지기 위해 지혜롭게 부지런해야 한다.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 다른 사람의 지혜와 기술도 빌려야 하고 과정이 중요하지만 결과가 좋아야 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내가 고집처럼 붙들고 있던 관점이나 우선순위 등등을 과감히 버려야 할 때일지도 모르겠다. 과감히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어야 더 단단하게 딱 붙어 있을 수 있겠구나 싶다. 결과가 안 좋아도 무엇을 배웠는지가 더 중요했고, 가치가 더 중요했다.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지만 지금보다 더 앞으로 전진해야 하는 시점에는 밟고 나아갈 수 있는 결과도 중요하다. 

김미경 강사는 "나이 50이 늦은 나이가 아니다. 이제까지의 인생은 역량을 쌓은 시기였다, 그래서 50부터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펼쳐갈 수 있는 나이다"라고 말한다. 

남들처럼 거창한 것을 만들어 내온 인생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딱 붙어서 이러쿵저러쿵 썰어라도 풀 수 있는 작은 역량이 있음을 안다.

이제야 인생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마치 내 인생은, 어쩌면 아버지들의 인생은 거치대와 같은 인생이 아닐는지. 직장이든 전문 지식이든 그 세계에 딱 붙어 있을 역량을 가지고 한쪽 끝에는 함께 달려있는 내비게이션과 전원 선처럼 가족, 가치관 등등... 내가 감내해야 책임 등등을 견뎌내며 존재하는 것은 아닐는지 말이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견뎌내려면 내가 기꺼이 할 수 있도록 내가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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