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JEONG Nov 09. 2023

동네.

좋아서 살기보다는 살다 보니 좋아지는 곳

가수 김현철이 오래전 불렀던 노래 중에 [동네]라는 노래가 있다.


가끔씩 난 아무 일도 아닌데 음

괜스레 짜증이 날 땐 생각해

나의 동네에 올해 들어 처음 내린 비....


입에서 저절로 흥얼거렸던 기억이지만 새삼스레 이 노래가 떠오른다.


작년부터 인가, 아파트 단지 재건축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낮에는 조용하고 밤에는 북적한 느낌은 여전하다.


결혼하면서부터 처음 살게 된 강서 쪽의 동네.


결혼 전까지 회사 업무 이외에는 가본 적이 없었던 곳이라 막상 신혼살림을 차리고 보니 초반엔 너무 어색한 기운만 감돌았건만 이제는 제법 동네 주민 비슷한 느낌도 갖는다.


88 올림픽 즈음에서 입주하기 시작한 동네이니 아파트도 오래됐다. 그래서 주차장은 아침저녁으로 주차자리가 부족해 일렬 (어떤 곳은 2열) 주차해 있는 차를 이리저리 밀기도 하고, 단지 사잇길에까지 주차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불편하지만 어쩌랴...


그래도 좋은 점이 있다면 나무들이 제법 크다.


4층의 우리 집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계절마다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제대로 목격한다. 여름에는 온통 초록빛 나무들이 보이고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스치는 소리를 듣는다. 여기저기 매미 껍데기를 수도 없이 볼 수 있고 매미가 창문에 붙어 울어재끼는 모습도 다반사다. 마로니에 나무에서는 열매들이 떨어져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가을에는 하루가 다르게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 잎을 보게 되고 바닥에 깔린 은행 잎을 쓸어 담기에 바쁜 경비 아저씨들의 숨소리도 느낀다. 겨울을 지나 봄이 되면 은행나무가 손톱보다 작은 은행잎을 피워내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벚꽃을 만끽한다.

유독 나무 사잇길로, 물길을 따라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는 꼭 필수적인 환경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데, 이 동네에는 공원이 바로 옆이다. 내가 동네에서 가장 사랑하는..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옆에 있는 '파리공원'


한국과 프랑스의 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에는 파리공원을 만들고 파리에는 서울공원을 만들었단다. 작년에는 오래된 공원을 보수해서 새롭게 단장하고 문을 열었다. 공원을 둘러싼 나무를 경계로 동네 주민들은 아침저녁 운동을 하고 광장에서는 에어로빅 강좌도 열린다. 웬만한 헬스장의 그것들과 견줄만한 운동기구가 갖춰져 있고 군데군데 벤치와 아담한 티테이블, 장미꽃 정원도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곳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분수다. 놀이공원 가면 볼 수 있는 바닥분수가 아이들을 유혹하고, 여름에는 하루에 4~5차례 음악분수도 가동된다.



그리고 적당히 운동할 곳을 찾는 다면 [안양천]이 있다.


일주일에 3~4차례 두 아들을 데리고 걸어서 달밤에 운동을 하러 간다. 이대목동병원 앞 육교를 건너 둑 산책길을 넘어 아래로 내려간다. 자전거/보행 길을 따라가다 보면 파크골프장을 만나고 축구장, 테니스장, 야구장을 지나 한강까지 이어진다. 어두운 밤 시간에 한강 야경을 볼 수 있다는 건 하나의 소확행이다. 이렇게 집을 출발해 한강을 찍고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50분 ~ 90분 사이다. 한강까지 가면서 서로 달리기 경주도 하고 안양천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와 그 물고기를 사냥하는 오리며 가마우지, 때로는 거북이를 보며 한참을 감상한다. (물론 낮에 가야 잘 보인다) 운동도 하고 자연 관찰도 하니 일석이조다.


사실 처음부터 정감 있는 동네란 없다. 다만 살아가며 정을 느끼는 것이 맞다고 믿는다. 사교육 시장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어지러운 동네, 오래되다 보니 여기저기 보이는 노후화의 모습 등은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한다. 그저 서로서로 이해하고 고치고 또 고쳐가며 살 수밖에.


그럼에도 이 동네가 좋은 이유는 아이들의 웃음이다. 은퇴한 인생을 살아가는 두 노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붙잡고 팔짱을 끼고 산책을 하는 모습이 좋다. 온 가족이 배드민턴 라켓을 들고 함께 기뻐하며 운동하는 모습이 좋다. 차를 밀어야 하는데 어느덧 옆에는 처음 보는 주민이 함께 밀어주기도 한다.


두 아들이 더 크고, 재건축이 진행되고 시간이 흐르면 난 어느 동네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그곳이 어디든... 그 동네에 정을 붙이며 아내와 함께 다정하게 손 붙잡고 산책할 수 있는 곳이면 하는 바람만 가득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고하셨어요. 불을 켜드릴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