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둘러보면 나를 바라보며 묵묵히 서 있는 존재
1년에 두세 번 정도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친구 녀석들이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은 학교에서 보냈다. 이후 서로 떨어져 지내며 사회 초년병 시절 다시 뭉쳐 지금까지 35년간의 인연으로 이런저런 만남을 지속해 왔다.
오늘은 그 녀석들을 만나는 날이다. 지난여름 야구장에서 한바탕 열띤 응원을 펼친 후에 갖게 되는 모임이니 설렘이 앞선다.
이제는 각자의 일에서 자리를 잡고, 결혼하기까지 누구와 연애했었는지,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도 제법 속속들이 안다.
그러던 중 어제 한 녀석으로부터 메시지가 당도한다.
"내일 우리 만나는 날인데, 나는 못 갈 것 같다. 우리 와이프가 암 판정을 받았어. 조만간 수술하긴 할 건데 많이 퍼져 있데..." 놀랄 수밖에...
다른 사람이라면 보통 "어쩌다!!", "괜찮을 거야" 라며 애써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친구에게만큼은 이 말을 하기는 어려웠다. 아무리 주변 사람들이 애써 위로한답시고 좋아질 거다, 괜찮을 거다, 기운 내라라고 말을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저 마음을 전달하는 데에 급급한 자기 위로의 말로 그치기 마련이다. 당사자에게는 사실 큰 위로가 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한 말은 그저 이거였다.
곁에 있어줘. 우울해할 것도 없이 평소처럼 웃어주고 손도 꼭 붙잡아 주고..
내가 결혼 2주를 앞두고 있을 무렵 장모님은 암으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암'이라는 질병은 말 그대로의 질병이지만 여느 질병에 비해 죽음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여기저기 누구누구가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게 되면 당연하게 생각이 들 만큼 일종의 편견도 가지고 있다.
장모님의 임종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결혼 날짜를 잡고 행복할 날만 기다리며, 장모님은 당연히 참석을 하실 거란 생각에 의심조차 해본 적이 없었는데 아침 7시 와이프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실감을 했다.
이후 결혼을 하고 한 달 이상은 밤마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아내를 안아주며 눈물을 닦아줬다. 이번에 아내가 암 판정을 받았다는 그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장모님이 가시면서 네 와이프에게 너를 보내 주신 거야. 곁에서 손 꼭 붙잡고 같이 웃어줘"
그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의 뒷부분을 고스란히 그 녀석에게 돌려줬다. 아직 유명을 달리한 것도 아니고 기회는 남아 있기에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웃으며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했다. 설사 최악의 결과가 오더라도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주변을 둘러보면 나라는 친구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오늘 모임은 비록 여느 날과는 다르게 두 사람이서 시간을 보내겠지만, 우리 둘의 대화는 단순히 옛 추억을 떠올리며 껄껄대는 날과는 다를 것이다. 기꺼이 손을 내밀고 도와줄 것은 없을지, 더 웃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지를 논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friend'의 뜻은 우리말로 친구다. 이 단어의 어원은 고대 영어의 "freond"에서 비롯됐다. 그 의미는 '동등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라고 한다. 동등한 지위...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며 서로를 돕는 사람으로서의 관계이며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서로를 도와주는 상대를 의미한다.
그래서 친구라는 것은 꼭 웃고 떠드는 시간을 함께 해야 친구는 아니라고 믿는다. 가족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변을 둘러보면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존재, 필요할 때 조용히 기꺼이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존재여야만 할 것 같다.
모쪼록 그 친구와 가족이 모두가 행복한 나날들로 가득해 지기를...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늘 기억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