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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Feb 01. 2019

동네 슈퍼가 다시 동네 상권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사양 기업은 있어도 사양 산업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동네 식료품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사양산업으로 치부되던 동네 슈퍼와 편의점이 부활합니다. 아무리 온라인 쇼핑이 발전해도 주민에게 대인 서비스와 커뮤니티 공공재를 제공하는 동네 가게의 영역은 남아있는 거죠.    


애초에 동네 슈퍼가 위기를 맞은 이유도 본연의 커뮤니티 기능을 다하지 못한데 있습니다. 한마디로 동네 슈퍼가 프랜차이즈와 대형마트가 제공할 수 없는 커뮤니티 서비스와 공공재를 창출하는데 실패한 거죠. 만약에 동네 주민의 특별한 니즈를 만족하고 동네 공동체의 사랑방 역할을 수행하는 전통적인 동네 잡화점(General Store)으로 돌아가면 동네 시장의 판도는 달랐을 것입니다. 


이글에서는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온/오프라인 융합으로 새로운 활로를 찾은 대기업 편의점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지역 수요에 특화된 상품 구성으로 새로운 니치(Niche) 마켓을 찾은 동네 마켓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새로운 유형의 동네 마켓: 동네 잡화점, 스페셜티 마켓, 제로 웨이스트 숍 


쇠락한 동네 슈퍼 모델을 대체할 동네 마켓 모델에는 어떤 유형이 있을까요? 글로벌 어페어즈(Global Affairs) 매거진 모노클은 2015년 토론토 잡화점 럭키페니(Lucky Penny)를 소개하며 동네 잡화점의 부활을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했습니다. 다른 도시에서도 전통적인 잡화점이 커뮤니티 기반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합니다. 동네 슈퍼가 아날로그의 반격을 이어 갈 다음 타자가 될 가능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동네 슈퍼가 특화하는 하나의 방향은 스페셜티 식품점입니다. 스페셜티 마켓은 표준화된 일반 식품점과 달리 커피, 치즈, 오일, 꿀, 초콜릿, 향료, 소스, 유제품, 소시지, 훈제 육류 등 독특한 맛과 향을 원하는 소비자를 위해 생산되는 스페셜티 식품을 판매합니다. 대부분의 스페셜티 마켓은 판매되는 식자재를 활용해 음식을 파는 그로서란트Grocerant 형대로 운영됩니다. 


한남동 보마켓이 개척한  스페셜티 마켓 모델의 전국적으로 확장세를 보이네요. 보마켓 자체도 확장하지만, 대전과 광주 퍼블릭마켓, 망원동 크레타마켓, 성수동 먼치스앤구디스, 대구 모남희, 이태원 숍FFOT, 부산 칠링아웃샵비슷한 컨셉의 마켓이 전국적으로 늘어납니다. 제가 주목하는 모델은 대전의 퍼블릭마켓입니다. 지역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유럽 식자재와 와인, 그리고 간단한 살라드, 스프, 샌드위치를 파는 그로서런트 마켓인데 대전 본점과 광주점 모두 오픈 즉시 핫플레이스로 등극했습니다. 


동네 마켓으로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모델이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숍입니다. 망원동 알맹상점, 성수동 더피커와 연희동 채우장은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하는 제로 웨이스트 마켓입니다. 채우장을 운영하는 연희동 보틀팩토리는 일 년에 한 번 연희동 50개 점포가 참여하는 제로 웨이스트 축제를 조직합니다. 참여하는 가게는 축제 기간 1주일 동안 일회용품을 매장에서 사용하지 않습니다. 





연희동, 동네 마켓 중심의 상권


동네 마켓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동네를 지킨 동네 마켓도 있습니다. 바로 연희동의 ‘사러가쇼핑센터’입니다. 사러가 쇼핑센터는 1975년 재래시장이었던 ‘연희시장’을 인수하면서 현대화된, 한국에서 보기 드문 대형 독립 슈퍼마켓입니다. 단순히 생필품만 파는 슈퍼마켓이 아니라 떡집, 제과점, 외국 상품 전문점, 약국, 의류점, 양품점 등 지역에 필요한 다양한 가게가 입점해 있는, 지역의 종합시장이라 할 수 있죠.     


사러가는 연희동에 안전하고 신선한 먹거리를 공급하겠다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에서 출발했는데요, 창업 당시 지역 주민의 건강과 사회 환경을 우선시하는 기업으로 출발한 홀푸드 마켓과 매우 비슷합니다. 하지만 홀푸드 마켓은 가격 경쟁력에 밀려 저가 매장을 열고, 기존의 지역 단위 식품 유통방식 대신 본사 중심 일괄구매방식으로 전환하는 전국화 모델을 선택하면서 결국 아마존에 인수되고 말았죠. 반면 사러가 쇼핑센터는 지역 정체성을 대표하는 ‘간판 상점’으로서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연희동 골목상권을 이끌고 있습니다.       


사러가쇼핑센터가 지역사회의 구심점이 된 것은 이 기업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1965년 창업 후 연희시장을 인수한 뒤에도 사러가 쇼핑센터는 프랜차이즈화 하지 않고 신길동과 연희동 두 곳에서만 매장을 운영하는 동네 슈퍼마켓 모델을 고수했습니다. 이 같은 지역 기반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의 신뢰가 필요한데요, 사러가 쇼핑센터는 서대문구와 마포구, 은평구까지 상품을 직접 배송하고, 식자재 품질관리를 위해 정육점과 수산물 코너를 직영으로 운영합니다. 가공된 농수산 식품은 친환경 인증을 받은 상품들을 직거래해 소비자들에게 내놓죠. 이 같은 편리한 서비스와 철저한 품질 관리, 친환경 상품 중심의 매장 구성 등으로 소비자 신뢰를 확보한 것입니다.       


사러가쇼핑센터는 지역 소상공인들과 함께 성장하며 연희동 주민을 넘어 외부인들이 일부러 방문하는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있는데요, 사러가 안에는 시민상회, 반도상회, 이쁜이신발 등 재래시장의 추억을 간직한 35년 이상 된 매장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또 여러 독립 가게와 수입 잡화점이 옹기종기 모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지요. 사러가 안에서 창업한 가게도 늘고 있습니다. 건물 한편에 오픈한 수제 치즈 타르트 가게는 쇼핑을 마친 사람들이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기 위해 찾고 있고 수제 맥주집 케그스테이션은 크래프트 맥주를 즐기는 주민들의 입소문을 타고 외부에서도 찾아오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연희동 골목길로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사러가가 제공하는 공용 주차장 덕분입니다. 연희동은 개인 차고를 갖춘 단독주택이 밀집한 동네다 보니 별도의 주차공간이 거의 없습니다. 차를 가지고 나오면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여유롭게 쇼핑하기 어렵죠. 그런데 사러가 쇼핑센터가 공용 주차장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은 연희동 구석구석에 자리한 독립 가게들을 둘러보며 골목길을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지역 사회와 공동체를 이루는 지역 기반 비즈니스 모델은 적지 않은 위력을 발휘합니다. 간판 상점이 지역 상권을 위해 공공재를 창출하면, 지역 사회는 지역 소비자의 충성과 대형마트가 누리지 못하는 활력 있는 배후 상권으로 간판 상점을 지원하기 때문입니다. 지역 사회와의 상생 덕분에 사러가쇼핑센터가 대형마트, 백화점과 경쟁할 수 있었고 연희동 골목길로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던 겁니다.      


지금까지 한국과 외국에서 부상하는 새로운 동네 마켓이 어떻게 지역 창업을 촉진하고 지역 라이프 스타일을 발전시키며 동네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지 살펴봤는데요. 사러가 쇼핑센터의 건재와 스페셜티 마켓의 부상은 오늘날 기업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왜 지역 사회와 상생해야 하는지, 지역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할 때 어떤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 동네 슈퍼가 동네 상권을 다시 주도할지, 스페셜티 마켓, 제로 웨이스트 숍, 그리고 사러가 쇼핑센터에서 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1차 수정: 2021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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