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역을 살리는 건축 전략: 개인투자형 건축마을

by 골목길 경제학자

지역을 살리는 건축 전략: 개인투자형 건축마을


한국의 지역소멸 위기는 심각하다. 해법은 도시적이어야 한다. 성공 가능성이 낮은 중앙 정부 주도 산업 육성이나 산단 유치 대신, 지역이 자신이 필요한 산업을 자생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도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과거 방식에 매달린다. 문화와 산업 창출력이 거의 없는 혁신도시와 스마트시티, AI 도시 건설에 열중한다. 신도시 공실률 위기를 보고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결과는 뻔하다. 젊은이들은 서울로 떠나고, 지방 신도시는 텅 빈다. 지역소멸은 일자리 부족 문제가 아니다. 매력적인 생활공간과 로컬 브랜드 생태계가 없기 때문이다.


시작은 건축마을이다. 동네 단위로 매력적인 생활권을 건설하고 이를 모아 도시 전체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전국의 성공적인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한옥, 적산가옥, 단독주택이 모인 건축마을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이들 공간은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한다.


첫째, 공간을 자유롭게 기획할 수 있는 작은 건물들이다. 둘째, 걷기 좋은 보행환경을 갖췄다. 셋째, 거리와 바로 연결되는 개방형 구조다. 이런 건축적 조건이 갖춰져야 로컬 브랜드가 뿌리내릴 수 있다.


건축마을의 중요성은 지역의 문제만이 아니다. 낙후지역 활성화를 고민하는 서울시도 건축마을로 대응한다. 은평한옥마을의 성공을 바탕으로 10개의 추가 한옥마을 조성을 계획 중이다.


기존 모델의 한계와 개인투자형 접근

기존 건축마을은 크게 세 유형이다. 파주출판단지와 헤이리예술인마을 같은 도시형, 아산지중해마을과 앨리웨이광교 같은 상가형, 그리고 은평한옥마을 같은 한옥마을이다. 모두 특정 테마로 한 번에 조성된 단지형 개발의 결과다.


단지형 접근법은 세 가지 한계가 있다. 첫째는 일회성 투자의 한계다. 정부나 지자체가 수십억에서 수백억을 투입해 한 번에 조성하지만, 지속적인 투자와 관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활력을 잃는다. 관리 주체가 바뀌거나 예산이 끊기면 급속히 쇠퇴한다.


둘째는 동질성의 함정이다. 특정 테마나 업종 중심으로 조성되어 다양성이 부족하다. 출판, 예술, 상업 등 단일 기능에 특화된 마을은 해당 산업이나 트렌드가 변할 때 전체가 흔들린다. 획일적인 건축 양식으로 인해 시간이 쌓인 자연스러운 마을의 매력을 구현하기 어렵다.


셋째는 진정성 부족이다. 위에서 아래로의 계획에 의해 조성되어 자연스러운 지역 정체성 형성이 제한된다.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 제공에 치중해 진정한 생활 공동체 기능이 약화된다. 지역에 대한 애착과 책임감이 부족해 장기적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


새로운 대안: 지구단위계획과 건축투자 유도

전국 지자체의 한옥 보조금 정책은 개별 건축주 지원 방식의 효과를 입증한다. 서울시는 한옥 신축 시 공사비용의 3분의 2 범위에서 최대 8천만 원을 지원하고, 경기도는 각 시·군 조례에 따라 도비 30%를 보조하며 신축 시 최대 1억 5천만 원까지 지원한다.


이러한 개별 지원 방식을 마을 단위로 확장하면 자연스러운 건축마을 조성이 가능하다. 핵심은 지구단위계획이다. 지구단위계획은 일정 지역 내 건축물의 용도, 종류, 규모, 디자인 등을 조정하고, 건폐율이나 용적률도 완화할 수 있는 제도다. 공공시설 부지를 제공할 경우, 상한 용적률 범위 내에서 추가 가산용적률을 적용해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다.


지구단위계획을 건축마을에 적용할 경우, 지역 주민들이 합의한 건축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1층 상업, 2~3층 주거 또는 창작 공간이라는 복합용도 구조를 제도화할 수 있다. 일정한 건축 디자인 기준을 충족하면 용적률 완화, 설계비 보조, 자재 무상 공급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차등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대규모 단지 개발 없이도 점진적인 마을 재생과 창업 생태계 조성이 가능하다.


예산 역시 지구단위계획 기반으로 확보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사업, 행정안전부의 지방소멸대응기금,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문화 거점 조성 사업 등은 모두 공간계획 수립과 건축환경 개선을 예산 대상으로 삼는다.


지자체는 조례를 통해 건축설계비 보조, 자재 지원, 공공기여 연계 인센티브를 설계할 수 있으며, 실제로 서울 성수동, 전주 한옥마을 등은 이러한 지구단위계획 기반의 마을 조성을 통해 정책적 실현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실험과 성공의 사례들

연희동: 주민 주도 건축 전략의 제안

연희동의 변화는 주민 주도 건축 전략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험적 제안이다. 김종석 쿠움파트너스 대표는 2003년부터 연희동에서 70여 개 건물을 리모델링하며 자연스러운 카페거리를 조성했다.


그의 핵심 아이디어는 "계단이 거리를 집으로 끌어들인다"는 개념이다. 도로에서 2, 3층으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오픈 계단을 설계해 상점 하나하나가 모두 도로와 소통하도록 했다. 이는 인테리어 중심의 리모델링을 뛰어넘는 건축적 접근이다.


연희동 경험을 바탕으로 김종석 대표는 동네 건축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방법으로 동네 건축 마스터플랜에 기반한 건축디자인 지원을 제안한다. 건축주가 주민들이 합의한 동네 건축 마스터플랜에 따라 신축이나 개축을 할 경우 건축설계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아직 실험 중이지만 정책적 가능성이 크다. 계획보다 실천을 통해 축적된 마을의 다양성과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수동: 개인투자형 건축마을의 성공 모델

성수동 붉은 벽돌 건축물 지원사업은 개인투자형 건축마을의 실제 성공 사례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서울시가 10억 원을 지원해 서울숲 북측 아틀리에길 주변 건축물 30개소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지원 방식은 명확했다. 붉은 벽돌 건축물로 건축이나 대수선 시 서울시가 붉은 벽돌 자재를 무상 공급했다. 여기에 건당 전체 공사 금액의 50% 이내에서 최대 2천만 원을 추가 지원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붉은 벽돌 건축물 군집지가 생기며 '아틀리에길', '서울숲 카페거리'로 불리는 이 지역의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이는 개별 건축주 지원을 통해 일관된 건축 경관을 조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로컬 브랜드 생태계: 건축마을의 목표

건축마을의 궁극적 목표는 로컬 브랜드 생태계 구축이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역의 골목 상권, 지리, 문화, 커뮤니티를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필요하다.


건축마을을 통한 로컬 브랜드 생태계 조성은 로컬 브랜드 유치와 건축 개발의 연계가 핵심이다. 기존 창업지원센터의 한계는 명확하다. 업무공간 제공과 관리, 공단 입주 연계 등 제한적 기능에 머물렀다. 건축마을은 다르다. 창업 공간을 생활권 내부에 내재화해 자생적이고 일상적인 창업 생태계를 만든다.


구체적인 실행 방식은 지역 주민과의 합의를 통한 건축 마스터플랜 수립에서 시작한다. 1층 상업시설과 2~3층 주거·업무 복합 구조를 기본으로 하는 건축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가로 활성화를 위한 개방적 파사드 디자인과 창작·생산이 가능한 메이커스페이스 연계 방안을 포함한다.


건축주가 마스터플랜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로컬 브랜드 유치나 개발 계획을 제시할 경우 차등적 지원을 제공한다. 성수동 붉은 벽돌 사업처럼 자재 무상 공급이나 공사비 일정 비율 지원을 기본으로 하되, 지역 고유자원과 특색을 활용한 로컬 브랜드 계획서를 제출한 경우 추가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사과양조장 같은 지역 특산품 관련 브랜드 계획 시 추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제주 우무 같은 지역 정체성을 담은 앵커 브랜드가 정착하고, 콘텐츠, 로컬푸드, 지역기반제조, 디지털 문화체험 등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들이 상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네트워킹과 협업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된다.


새로운 지역 발전 패러다임

개인투자형 건축마을 모델은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하는 현실적 대안이다. 단지형 개발의 한계를 넘어 개인의 건축 투자를 유도하는 이 방식은 진정한 의미의 마을을 만들어낸다. 살고 싶고, 일하고 싶고, 즐길 수 있는 공간 말이다.


제도적·정책적 기반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성수동 붉은 벽돌 사업의 성공, 전국 한옥 보조금 정책의 확산, 연희동에서 제안된 주민 합의형 마스터플랜과 설계비 지원 방식이 그 증거다.


이제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로컬 브랜드라는 명확한 목표 설정과 새로운 접근 방식에 대한 인식 전환이다. 지역소멸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서울의 로컬 상권, 데이터로 읽는 새로운 도시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