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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지는 서울의 밤

by 골목길 경제학자

어두워지는 서울의 밤


어제 서울문화재단 회의에서 11월 4일 서울국제예술포럼(SAFT 2025) 준비를 논의했다. 포럼 세션 3에서는 "Locality × Attraction"을 주제로 지역성과 도시 매력을 글로벌 도시의 새로운 전략으로 다룬다. 나이트라이프를 서울의 매력 요소로 전환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핵심 의제다.


나이트라이프 활성화가 흥미로운 점은 현재 서울의 나이트라이프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대, 이태원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밤 9시 이후 거리의 활기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나이트라이프 정책을 제대로 수립하기 위해서는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먼저 분석해야 한다. 야간 문화의 쇠퇴는 20년에 걸친 사회 구조 변화의 결과이며, 동시에 도시 경쟁력과 문화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현상이다. 이 글에서는 서울 야간 문화 변화의 원인을 장기적 요인과 단기적 요인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다른 도시들의 대응 사례를 통해 서울이 고민해야 할 지점을 제시한다.


장기적 요인: 2000년대부터 시작된 변화

첫 번째 변화는 이미 20년 전에 시작됐다. X세대가 직장 문화의 중심으로 올라서면서 회식-2차-노래방으로 이어지는 전통적 야간 사교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퇴근 후 시간을 개인적으로 활용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는 단순히 회식 문화만 바꾼 것이 아니었다. 나이트라이프 수요 구조 자체가 재편됐다. 의무적 사교 활동은 감소하고, 선택적 여가 활동이 증가했다. 문제는 서울의 야간 문화 인프라가 여전히 이전 패턴—집단 중심의 음주 문화—을 전제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단기적 요인: 코로나가 가속화한 변화

코로나19는 이미 진행 중이던 변화를 가속화했다.


첫째, Z세대는 팬데믹 기간 새로운 사교 방식을 경험했다. 대면 접촉 없이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음주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다.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의식적으로 술을 덜 마시거나 마시지 않는—문화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클럽과 바의 전통적 수익 구조는 저렴한 입장료와 주류 판매에 의존하는데, 이 모델은 변화한 소비 패턴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둘째, 음악 공연장의 비즈니스 모델이 흔들렸다. 스트리밍 서비스 확산으로 음반 판매 수익이 줄면서 뮤지션들은 공연 수익에 더 의존하게 됐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많은 소규모 공연장이 문을 닫았다. 살아남은 곳들은 높은 임대료와 운영비 부담을 겪고 있다. 아티스트는 생계를 위해 높은 출연료를 요구하고, 공연장은 수익성을 맞추기 어렵고, 관객은 티켓 가격 상승에 민감하다. 이 구조적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다.


무엇이 달라지는가

야간 문화 변화는 단순히 유흥업소 폐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고용 측면. 바텐더, 음향 기술자, 공연 기획자, 조명 디자이너, DJ 등 야간 경제는 상당한 규모의 일자리를 포함한다. 베를린 클럽커미션 연구에 따르면 나이트라이프는 관광 수익의 주요 동력이며 수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서울도 유사한 규모일 것으로 추정된다.


사회적 인프라 측면. 클럽과 공연장은 단순한 유흥 공간을 넘어선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고, 세대가 섞이고,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는 물리적 공간이다. 디지털 소통이 주류가 된 시대에 이러한 대면 접촉 공간의 역할을 다르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도시 경쟁력 측면. 창의 인력이 도시를 선택할 때 임금이나 주거비 같은 경제적 조건뿐 아니라 문화적 환경도 고려한다. 야간 문화 생태계의 다양성은 점차 도시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문화 생태계 측면. 힙합, 펑크, 테크노, 인디 록—많은 음악 장르가 작은 클럽과 라이브 하우스에서 시작됐다. 대형 공연장은 이미 검증된 콘텐츠를 다루지만, 실험적 시도는 주로 소규모 공간에서 이뤄진다. 이러한 공간이 줄어들면 새로운 문화 형성에 제약이 생긴다.


다른 도시들의 대응

11월 포럼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VibeLab의 루츠 라이히젠링(Lutz Leichsenring)은 전 세계 도시들의 야간 문화 전략을 연구하고 자문해온 전문가다. 그가 제시하는 사례들을 보면, 주요 도시들은 나이트라이프를 단순한 유흥이 아니라 도시 정책의 일부로 접근하고 있다.


현재 100개 이상의 도시가 '나이트 메이어(Night Mayor)'를 두고 있다. 나이트 메이어는 야간 경제와 관련된 이해관계자들—클럽 운영자, 아티스트, 주민, 경찰, 교통 당국—사이를 중재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구체적 사례를 보면, 암스테르담은 야간 문화에 220만 유로를 투자했다. 베를린은 클럽과 주거지의 공존을 위한 방음 지원 기금을 만들었다. 토론토는 지역사회 주도로 라이선스와 구역 제도를 개편하고, 공연장 운영자들과 협력해 안전 기준을 마련했다. 상파울루는 거리 음식 노점을 합법화하고, 술을 판매하지 않는 심야 카페와 레스토랑을 육성했다.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나이트라이프를 도시 인프라의 일부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야간 문화 생태계가 인재 유치, 관광 수익, 창업 생태계와 연결된다는 데이터를 축적하고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라이히젠링은 이러한 변화를 체계화한 '6to6 프레임워크'를 제시한다. 영감(Inspiration), 비전(Vision), 평가(Assessment), 거버넌스(Governance), 실행 계획(Action Planning), 교육(Education)의 6단계로 구성되며, 각 도시가 고유한 맥락에 맞춰 야간 문화 전략을 수립하도록 돕는다.


주목할 점은 이들 도시가 과거 모델의 단순 복원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화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새로운 야간 경제 모델을 설계하고 있다.


서울의 선택

서울은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고, 도시 밀도가 높으며, 골목 문화가 살아있다. 문제는 정책 간 연계 부족이다.


문화정책, 교통정책, 안전정책이 각각 별도로 운영된다. 소음 문제는 주로 규제로 대응하고, 임대료 상승에 대한 실효적 대안은 제한적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야간 문화를 '육성해야 할 자산'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남아있다. 야간 문화가 활발했던 시기의 규제 중심 접근 방식이 관성으로 작동하고 있다.

서울이 직면한 질문은 명확하다. 야간 문화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전통적 야간 문화의 복원은 대안이 아니다. 회식 중심의 야간 사교 문화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Z세대의 라이프스타일도 계속 진화할 것이다. 서울시가 최근 투자하는 행사 중심의 야간 관광도 재구성이 필요하다. 일상의 야간 문화와 분리된 일회성 행사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속가능한 대응은 지역 맥락을 고려한 접근이다. 주거지 중심 생활권에서는 메인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야간 영업 시설을 집중 배치해 소음과 편의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중심부나 크리에이티브 지구에서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공연장과 라이브 뮤직 바를 핵심으로 하는 야간 문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크리에이터, 소상공인, 스타트업, 주거 시설이 공존하며 상호작용하는 크리에이터 타운 프레임워크 안에서 작동하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결국 야간 문화는 고립된 영역이 아니라 도시의 일부로 작동할 때 지속가능하다. 교통, 안전, 주거, 경제 정책과 통합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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