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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벨트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

by 골목길 경제학자

루스벨트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


1. 중국 모델 논쟁

미국에서 한 책이 격렬한 논쟁을 촉발했다고 한다. 댄 왕(Dan Wang)의 『브레이크넥: 중국의 미래 공학 추구』이다. 이 책은 중국을 물리적, 사회적 문제에 망치를 휘두르는 공학 국가로, 미국을 좋든 나쁘든 모든 것을 막는 망치를 내리치는 법률가 사회로 대비시키며, 미국도 중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대규모 주택 건설, 대중교통 인프라 확장, 청정 기술 배치의 세계적 선도, 그리고 강력한 제조업 기반 유지 성공을 지적한다.


이런 논쟁은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중국 견제 성향이었던 한국의 조선일보조차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한 사설 시리즈를 게재했다.


중국 모델 논쟁은 단순한 학술적 논의가 아니다.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의 공통된 불안을 반영한다. 자유 사회가 여전히 건설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가 성과를 낼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경제의 효율성이 아니라 정치의 상상력에 관한 질문이다.


2. 1930년대의 유사성: 전체주의와 테크노크라시

민주주의 국가의 자신감이 흔들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30년대 미국은 이미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당시 해외에서는 전체주의의 위협, 국내에서는 유사한 철학을 주장한 테크노크라시 운동의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해외의 전체주의 위협: 무솔리니의 파시즘 독트린(1932)은 파시스트 국가를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절대적 존재로 선언했으며, 노동조합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가 개입의 영역을 확대하며 연대의 원칙으로 생산 부문의 협력을 달성하려는 경제의 조합주의적 조직을 특징으로 했다. 이것은 산업 권력과 권위주의 정부의 명시적 결합이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전체주의 정권들이 부상하면서,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이고 무능한 체제로 비난받았다.


국내의 테크노크라시 운동: 미국 내부에서도 유사한 도전이 나타났다. 당파적 정치인과 사업가를 경제를 관리할 기술적 전문성을 가진 과학자와 엔지니어로 대체할 것을 제안한 테크노크라시(기술관료사회) 운동이다. 1932년 6월부터 1933년 1월까지 정점에 달한 이 운동은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니었다.


이 운동은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등장한 국가사회주의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에드워드 벨라미의 『뒤돌아보며』(1888)는 19세기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로, 산업 군대를 통한 경제의 군사적 조직화를 제안했다. 이 책은 100만부 이상 팔렸고, 165개의 내셔널리스트 클럽이 생겨나며 대중 운동으로 발전했다. 1930년대 테크노크라시는 이런 권위주의적 충동이 대공황이라는 위기 속에서 다시 분출한 것이었다.


테크노크라시의 출현은 의회 민주주의의 근본적 위기와 권위주의 운동의 등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민주주의가 대공황이라는 위기 앞에서 무력하다는 믿음과 기술혁명시대에 출현하는 기술 낙관주의를 바탕으로 파시스트, 사회주의, 테크노크라시 모두 경제 효율성을 개선하고 사회 갈등을 통제하기 위해 테크노크라시적 개념을 채택했다.


물론 테크노크라시를 경계한 민주주의자들도 많았다. 비판자들은 미국 테크노크라시 운동을 전체주의적 환상으로 공격했으며, 지도자 하워드 스콧이 독재자처럼 행동했고 그의 선전이 전형적인 파시스트와 너무 가까워서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3. 루스벨트의 리더십: 민주주의가 반격한 방법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오늘날 미국이 직면한 것과 같은 위기에 마주했다: 행동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민주주의와 일을 해내는 것처럼 보이는 권위주의 정권들. 그가 민주주의를 살린 전략은 뉴딜과 같은 포용적 개혁이었다.


뉴딜의 성공은 광범위한 민주적 동맹에 기반했다. 뉴딜연합은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소수민족을 아우르며 미국 사회의 다수를 결집시켰다. 이 연합은 대규모 공공사업, 사회보장제도, 노동권 보장을 통해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냈다. 뉴딜의 가장 위대한 성취는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와 파시즘 사이의 선택만 남았다고 믿던 시기에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킨 것이었다.


동시에 뉴딜은 기술과 전문성에 적대적이지 않았다. 루스벨트 정부는 댐, 도로, 교량, 전력망 같은 대규모 인프라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엔지니어와 기술 전문가들을 적극 동원했지만, 그들은 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섬겼다.


위협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중요했다. 1938년 독점 규제 메시지에서 루스벨트는 파시즘을 사적 권력이 민주국가 자체보다 강해지는 지점까지 성장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진짜 위험은 정부의 행동이 아니라, 기업이든 정부든 민주적 통제를 벗어나 작동하는 권력이었다.


민주적 절차 준수는 독재와의 결정적 차이였다. 1933년 취임사에서 루스벨트는 의회에 외적의 침공을 받았을 때 주어질 권한만큼 큰 비상사태와 싸울 광범위한 행정 권한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의회에 요청했다—권력을 탈취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독재가 되지 않고도 단호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미국의 테크노크라시 운동은 결국 붕괴했다. 미국은 그 후에 벌어진 전체주의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했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이상이 기술적 엘리트주의보다 더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루스벨트의 리더십이었다.


4. 미국에 루스벨트 리더십이 필요하다

오늘날 미국의 도전은 1930년대와 같다. 중국은 구체적이고 작동하는 권위주의 모델을 제시한다.


그러나 루스벨트의 사례는 해법을 보여준다. 이 도전은 미국만의 것이 아니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이 같은 질문에 직면해 있다.


대안—기술주의적 자본과 권위주의적 권력의 결합—은 1930년대에 재앙으로 이어졌다. 루스벨트는 기술의 시대에 민주주의가 무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오늘의 과제도 같다. 자유 사회가 다시 한 번 ‘건설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참고 문헌

Wang, Dan. Breakneck: China's Quest to Engineer the Future. W. W. Norton & Company, 2025.

"Breakneck: China's Quest to Engineer the Future."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Breakneck:_China's_Quest_to_Engineer_the_Future

"Definitions of fascism."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Definitions_of_fascism

"Technocracy movement."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Technocracy_movement

Cebalo, Anton. "Welcome to the Technocracy." Novum, August 31, 2025, https://novum.substack.com/p/welcome-to-the-technocracy

"HY4A6 Technocracy, Social Engineering and Politics in the Era of the World Wars, 1914-1945." LSE, https://www.lse.ac.uk/resources/calendar2021-2022/courseGuides/HY/2021_HY4A6.htm

"American technocracy and Chinese response: Theories and practices of Chinese expert politics in the period of the Nanjing Government, 1927–1949." ScienceDirect, March 29, 2015.

Roosevelt, Franklin D. "Message to Congress on Curbing Monopolies," April 29, 1938. The American Presidency Project, https://www.presidency.ucsb.edu/documents/message-congress-curbing-monopolies

"FDR's First Inaugural Address Declaring 'War' on the Great Depression." National Archives, https://www.archives.gov/education/lessons/fdr-inaugural

"New Deal." Britannica, https://www.britannica.com/event/New-D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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