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위기가 심각합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쇼핑거리 5번가조차 불황을 피하지 못했죠. 구찌·루이비통·티파니 등 대표 브랜드가 5번가를 떠났습니다. 한국의 현실도 불안합니다. 중심 상권·대로변 상가·오피스 상권에 공실이 늘어납니다. 신도시의 상가 공실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상가 공급 축소를 제안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문화 재현 상권’을 개발하는 기업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네오밸류입니다. 이 기업의 대표 브랜드는 ‘지역밀착형 라이프스타일 센터’, 앨리웨이입니다. 2019년 개장한 앨리웨이 광교는 기술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미래가 어떤 건지 보여줍니다.
네오밸류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일상을 여유롭게 즐기고 이웃과 소통하는 삶’입니다. 신도시 상가에 골목문화를 재현하기 위해 투입된 브랜드는 80여개에 달합니다. 독립서점·마켓·빵집·카페·수제맥주집·편집숍·갤러리 등 익숙한 업종뿐 아니라 DIY 워크숍·커뮤니티 키친·공예공방 등 창조 커뮤니티 건설에 필요한 공간도 포함합니다. 반면 일반 상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찾기 어렵습니다. 또 네오밸류는 도시의 가로 상권에서 주목받는 독립 브랜드 중심으로 상가를 구성했어요. 시장 기능을 하는 ‘마슬마켓’은 전통시장을 재현하기 위해 쌀가게·방앗간·정육점 콘셉트의 가게를 유치했죠. 게다가 앨리웨이 광교에 투입된 자체 브랜드는 무려 11개에 이르죠.
콘텐츠로만 도시문화를 재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간 디자인도 가로 상권을 벤치마킹했어요. 상가는 여러 골목길로 연결했습니다. 보행로 곳곳엔 골목길을 연상시키는 그라피티·벤치·천막·노점을 배치했습니다. 상가 중앙에는 광장을 만들어 주민이 쉬면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죠. 무엇보다 상가를 호수와 가까운 아파트 단지의 정면에 배치했어요. 상가 중심 생활권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죠.
개장한지 1년도 안 된 시점부터 콘텐츠의 힘은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상가의 활력이었어요. 일주일 내내 사람이 몰리는 앨리웨이와는 달리 주변의 다른 아파트 상가는 부동산 업소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독립 브랜드로 신도시 상가를 개발하는 앨리웨이는 해외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혁신적인 사업입니다.
쇠락하는 상권과 사람이 모이는 상권의 차이는 ‘콘텐츠’입니다. 전자는 공간과 운영 모델의 제약으로 개성·다양성·감성·경험 등을 가진 후자의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합니다. 이렇듯 도시의 미래에 특히 중요한 요소가 ‘디벨로퍼’의 역할입니다. 무질서해 보이는 가로 상권에도 보이지 않은 손이 작동하는 겁니다.
동네를 보이지 않게 기획하는 기업을 ‘앵커스토어’라고 부릅니다. 앵커스토어란 혁신성·지역성·문화성을 기반으로 유동인구·시설·구심점 등 상권 공공재를 제공하는 상업시설이죠. 신규 앵커스토어의 공통점은 혁신적인 수익 모델입니다. 공간 기획·문화 기획·옴니채널 등의 방법으로 오프라인 수익 모델을 개발합니다. 동시에 지역 정체성을 기반으로 지역 상권의 대장주와 플랫폼이 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죠. 또 하나의 공통점은 문화 중심지가 되려는 노력입니다.
사실 앵커스토어는 아주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과거에도 백화점·할인마트·스타벅스·반스앤노블 등이 쇼핑센터와 주상복합단지의 앵커 역할을 했습니다. 과거와 다른 점이라면 활동 영역이죠. 과거의 앵커스토어가 쇼핑센터 운영자가 임의적으로 배치한 시설이라면, 현재의 앵커스토어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거리 상권에서 시장 경쟁을 통해 자리 잡은 거점 공간입니다.
한 지역을 대상으로 상권을 개발하는 부동산 개발회사도 앵커스토어 기능을 합니다. 다만 이들은 지역 상생 모델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한다는 비난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대안은 보다 지역 밀착적인 상권 개발입니다. 서울 연남동과 연희동에서 셰어빌리지를 건설하는 어반플레이, 부산 영도에서 청년들이 필요한 주거·상업·작업 시설을 공급하는 RTBP, 시흥 월곶에서 시민 자산화를 통해 지역에 필요한 상업시설을 운영하는 빌드, 부여 규암리에서 지역자원을 활용해 공방마을을 건설하는 세간이 대표적인 지역 자산 기반 개발회사입니다.
공공기관도 지역자산화 모델을 도입해 앵커스토어 육성에 참여합니다. 2019년 오픈한 군산 영화타운 사업의 차별성은 ‘추진방식’에서 나옵니다. 영화타운은 운영자를 먼저 선정한 후 그가 전체 사업을 총괄하고 장기 운영하는 운영자 모델입니다. ‘기획-설계-시공-운영’을 일원화한 것이죠. 건축 도시공간연구소가 운영자 모델을 군산시에 제안하고 지원했으며, 군산의 지역관리회사인 ㈜지방이 사업의 시행을 맡았어요.
상가 건축에서 시작해 콘텐츠 개발로 사업 분야를 확대하는 네오밸류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부동산 개발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합니다. 콘텐츠 개발에서 부동산 개발로 이동하는 일본의 츠타야·무인양품의 궤적과는 반대로 움직이죠. 누구의 전략이 맞는지를 따져야 할 건 아닐 겁니다. 중요한 건 라이프스타일·로컬·골목길 콘셉트로 오프라인 리테일을 혁신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네오밸류가 골목상권을 조성하는 지역은 신도시만이 아닙니다. 서울의 가로수길·서교동·익선동·성수동에서도 지역문화에 기반한 골목형 상권을 개발합니다. 가로수길에서 운영하는 도시형 골목상가 ‘가로골목’이 제공하는 팝업 스토어는 강남 시장 진출을 위한 독립 브랜드의 플랫폼이 될 수 있습니다. 네오밸류가 던지는 메시지는 콘텐츠의 지속적인 관리입니다. 도시를 풍요롭게 만드는 콘텐츠는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도시에도 운영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출처: 폴인 페이퍼, 라이프스타일 디벨로퍼, 2021년 5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