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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Dec 06. 2017

르 코르뷔지에 공동체 도시 철학의 기원

"(사회주의) 혁명이냐, (아파트) 건축이냐"


20세기 도시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자본주의 사회에 요구한 선택이다.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신음하는 노동자 위한 아파트 도시를 건설해야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르 코르뷔지에 철학의 기원이 궁금했다. 그가 왜 이런 절박한 결론을 내렸을까?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 교육을 받은 20세기 초는 사회주의 혁명이 현실화된 시기였다. 사회주의 혁명의 도전에 대한 절박함은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 연구는 개인적 경험을 요인으로 지적한다. 그가 1907년 방문한 이탈리아 에마의 샤르트르 수도원에서 빌라형 아파트의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다 일까? 르 코르뷔지에가 태어나고 자란 스위스 소도시 라 쇼드퐁을 방문하면 그의 철학이 고향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직감하게 된다.* 고향 도시가 바로 건축으로 혁명을 막은 도시였기 때문이다.


스위스 소도시, 라 쇼드퐁(La Chaue-de-Fonds)


르 코르뷔지에의 고향은 세계 시계 산업의 수도로 알려진 도시다. 이곳에 롤렉스(Rolex), 파텍 필립(Patek Philippe), 티쏘(Tissot), 제라 페리고(Girard-Perregaux), 에벨(Ebel), 오메가(Omega) 등 수많은 고급 시계기업들이 본사 또는 작업장을 두고 있다.


스위스 시계 산업의 기원은 바쉐론(Vacheron)과 브레게(Breguet)의 18세기 제네바 공방에서 찾을 수 있지만,

 

스위스 시계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우뚝 세운 곳은 라 쇼드퐁이다.

라 쇼드퐁 시계 산업의 시작은 다른 시계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계 제조 장인 다니엘 장리차드(Daniel Jeanrichard)가 도제 양성과 가내수공업으로 이 도시의 시계 제조업을 개척했다. 19세기 말 라 쇼드퐁은 세계 시계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쟁쟁한 시계의 본고장들을 제치고, 전 세계 시계 생산량의 50%를 생산할 만큼 시계 산업을 지배하게 됐다.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역사가들은 저밀도 격자형(Grid) 도시 디자인과 작업장 설계에서 도시 경쟁력을 찾는다.

라 쇼드퐁이 18세기 대형 화재로 폐허가 된 구도시를 골목 도시로 재개발하면서 시계 산업에 최적화된 도시 디자인을 완성 것이다.


라 쇼드퐁 시계박물관


시계산업에 최적화된 도시 디자인과 건축


시계산업에 특별한 도시건축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 산업첨단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시계산업은 18세기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 이미 과학 기술을 상품 생산에 응용한 정밀 기계 산업으로 발전했다.


근대 시계 산업은 16세기 독일, 프랑스, 스위스에서 시작됐다. 최초로 휴대용 시계를 만든 사람은 독일인이었다. 역사학자들은 피터 헨라인(Peter Henlein)을 휴대용 시계의 발명가로 지목한다. 그는 16세기 초반 뉘른베르크(Nuremberg) 출신 자물쇠와 시계 장인이었다. 전문 분야는 펜던트나 옷에 부착하는 용도로 쓰이는 초소형 시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스위스 시계 산업은 17세기 프랑스의 박해를 피해 피난 온 위그노(Huguenot) 장인들에 의해 시작됐다. 이들은 지역 시계 산업에 예술적 전문지식을 접목시켜 제네바와 쥐라(Jura) 산맥이 시계 제조 중심지로 성장하는데 기여했다.


시계 산업이 대량생산, 분업, 부품 조립 등 현대적 의미의 산업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곳도 스위스다. 파리에서 훈련받은 스위스 시계 장인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Abraham-Louis Breguet)가 뚜르비옹(tourbillon, 중력에 의해 생기는 시간 오차를 보정하는 태엽 장치); 파라슈트(pare-chute, 충격흡수장치); 브레게 오버 코일(Breguet over coil, 플랫 밸런스 스프링, 그리고 한두 개의 터미널 코일) 등 일련의 기술을 발명했다.


대량 생산 체제를 도입한 대표적인 스위스 기업이 론진(Longines)이다. 1832년 상티미에(St.-Imier)에서 설립된 론진은 – 창립자인 오귀스트 아가시(AugusteAgasssiz)의 이름을 본떠 Agassiz & Co.로 알려져 있을 때 – 에타블리사주(établissage)유행을 가져온 1세대다. 론진은 1866년 시계 생산 전 과정을 한 공장 안에 집약했으며 그 후 45년이 지나지 않아 1,1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해 전 세계에 시계를 수출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왜 스위스가 시계 산업의 중심지가 됐을까?

 

브레게, 아가시와 같은 장인 혁신가의 역할이 컸지만, 스위스의 소도시 경쟁력도 일조했다.

스위스는 매우 분권화된 국가다. 골짜기마다 작지만 역동적인 도시가 있다. 이는 전통산업이었던 시계 제조업이 자연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큰 도시 위주로 집권화되어있는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대조적인 지역 조건이 시계산업을 발전시켰다.


라 쇼드퐁 시계 생산 지역의 거리와 건물


장인 정신, 기술 혁신, 소도시 경쟁력과 더불어 라 쇼드퐁이 세계 시계 산업의 중심지가 된 데에는 도시 디자인과 건축이 크게 기여했다.

라 쇼드퐁의 도시 계획과 건축물들은 합리적 구조에 대한 시계 장인들의 니즈(needs)를 반영했다. 1800년 대 화재 이후 시계 제조업이라는 단 하나의 산업을 위해 계획된 도시다. 주거용 주택과 공방이 어우러져 있는 건축 디자인도 17세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시계 산업의 필요에 의해 진화했다.


시계 문화 도시 전시장 바닥에 투영된 19세기 라 쇼드퐁 시가지 모습


라 쇼드퐁 도시계획자들은 교통 체증을 최소화하고 부품의 운반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해 당시 기준으로 넓은 도로를 사이에 둔 격자형 블록을 도시 디자인으로 채택했다. 그 결과 이 도시는 격자무늬 거리(Grid)에 기반한 현대 도시로 재탄생했다. 격자무늬 거리에 평행으로 시계 공방들과 시계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주택과 공방들이 들어섰다.


지붕에 창문이 많은 전형적인 라 쇼드퐁 시계 공방 건물


건축물의 주요 특징은 작업장 효율성 제고를 위한 디자인이다. 햇빛을 최대한 활용하고 공방 건물 지붕에 창문을 많이 배치했고, 1층도 창문으로 햇빛이 많이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시계 공방과 아파트 건물 모두 저층 건물로 이루어진, 오늘날의 저밀도 골목동네를 갖춘 도시에서 근대 시계산업이 탄생한 것이다.


19세기 후반 라 쇼드퐁의 도시 계획은 또 한 번 변한다.

가내 수공업에서 공장 생산화된 시계 제조 방식에 따라 칼 마르크스(Karl Marx)가 자본론(Das Kapital)에서 표현한 대로 이 도시는 '거대한 공장 마을'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이 마을의 공장들은 '악마의 맷돌(Satanic Mill)'로 불렸던 산업혁명기 영국의 공장과는 달랐다. 장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생활했던 쾌적한 도시 공간이었다.  


라 쇼드퐁에 남은 르 코르뷔지에 작품 중 하나인 슈보브의 저택 (일명 터키저택)


르 코르뷔지에 도시건축의 기원


장인정신과 정교한 기술, 효율적인 공간 디자인, 노동자를 위한 도심 작업과 생활공간 등 소도시 라 쇼드퐁만의 건축 문화는 시산업뿐만 아니라, 20세기의 위대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철학을 탄생시켰다.

도시 건축을 배우기 전에 라 쇼드퐁 미술학교에서 시계 장식과 공예를 배웠던 그는 스승의 권유에 따라 건축의 길로 들어섰다. 건축가 페레 형제의 건축사무소 수습생으로 2년간일을 하며 기초 지식을 습득하고, 유럽 도시들을 다니며 건축과 도시 디자인을 구상했다.


라 쇼드퐁의 도시 디자인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과 도시계획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초기 도시 계획 작품들은 고향과 같이 합리성을 강화한 ‘기획 도시’를 지향했다. 라 쇼드퐁은 1794년 화재 이후 격자무늬의 거리들과 쾌적한 광장들로 재설계되었고, 이 중 일부는 지금까지도 잘 유지돼 있다 (르 코르뷔지에 가이드, The Le Corbusier Guide).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 계획은 저층 및 고밀도의 건물의 조화로운 구성을 추구했다. 300만 인구를 위한 현대 도시 계획안(The City of Three Million of 1922)에서는 당시 엘리트를 위한 고층 및 고밀도 주거지역과 행정업무의 중심지인 파리와 같은 수도는 그린벨트뿐 아니라 방대한 저밀도 교외 지역들로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빛나는 도시(The Radiant City of 1932)를 포함한 후기 작품에서는 전체 인구를 고층 건물에 입주시키는 등 주로 고밀도 건축물 중심의 도시를 계획했다. 1,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재건’이 가장 큰 화두였던 시기에 그는 목적에 맞는 효율적이고 직선적인 도시 디자인을 선보이며 근대 건축을 주창했다.


내일의 도시(The City of To-morrow and ItsPlanning)에서 그는 유럽의 도시들이 비계획적으로 형성된 중세 도시 디자인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부적합한 주택, 비효율적인 교통수단 등 도시 전반이 형편없이 설계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완벽한 현대 도시는 엄격한 질서 정연에 의해 각각의 목적에 맞게 가장 최적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상권과는 멀리 떨어진 60층의 고층 빌딩과 주거용 건물들이 모여 있는 “부아쟁(Voisin)” 설계, 그리고 ‘300만 인구를 위한 현대 도시 계획안(City of Three Million Inhabitants)’을 통해 드러났다.


르 코르뷔지에가 고밀도 도시 자체를 선호했다기보다는 당시 도시가 안고 있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실용성과 효율성을 극대화시킨 도시 계획을 제안한 것으로 평가된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처럼 고향 역사를 기반으로 자신의 건축세계를 확장했다.



건축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저지하겠다는 그의 철학도 복지사회와 평등한 건축문화로 자본주의 낙원을 건설한 그의 모국 스위스, 고향 라 쇼드퐁과 무관하지 않다.



미래 도시 모델 라 쇼드퐁


라 쇼드퐁  모델은 미래 도시에도 중요하다. 다용도 연립주택과 저밀도 도시가 19세기 창조도시 모델이었다면 21세기에서도 유효한 모델이다. 20세기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도 저밀도 지역이 도시 창의성과 다양성의 원천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제이콥스는 주목한 저밀도 지역의 장점으로 주요 복합 용도(primary mixed uses), 스몰 블록(small blocks), 오래된 건물(aged buildings), 사람의 밀집(concentration)에 주목했다.

 

첫째, 각 구역들과 구역 내부의 골목길은 최소한 한 두 개 이상의 기능을 해야 한다.

보행자들이 각기 다른 일정과 목적에 따라 구역을 오가면서도 공동으로 여러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이어야 한다. 복합 용도 지역은 다양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한다. 거리 곳곳에 위치한 상점과 소규모 업체들은 골목 구성 그 자체가 만들어내는 상호 협력의 구조에서 수익을 창출한다. 골목 이용객에게 다양한 체험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둘째, 구역들은 짧으면서도 그 사이사이에 작은 골목길들이 많아야 한다.

짧은 블록은 거리에 많은 모퉁이를 제공한다. 짧은 구역과 작은 골목길, 모퉁이는 거리를 고립되지 않고 활기차게 만든다.

 

셋째, 각 구역의 건물들은 노후화된 정도와 그 상태가 다양하고, 경제적 수익률 또한 일관되지 않도록 오래된 건물과 신축 건물들의 적당한 비율이 필수적이다.

임대료가 높은 신축 건물을 감당할 수 있는 업체는 예술성이 낮은 대형 기업의 체인점이다. 반면, 실험적이고 개성 있는 독립 가게들이나 문화예술 창작소는 저렴한 임대료의 낡은 건물을 선호한다. 골목길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임대료가 각기 다른 다양한 건물들이 필요하다.


넷째, 충분한 인구가 밀집돼있어야 한다.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인구 밀집은 주요 복합 용도와 더불어 골목의 다양성을 창출하는데 기여한다.

 

혁신 친화적 공간 논리는 사무 공간 디자인에도 적용된다. 건축가 천의영은 <그리드를 파괴하라>에서 애플의 스페이스십, 페이스북의 오픈 공간, 구글의 투명 돔, 아마존의 '정글' 룸 등 글로벌 기업들의 새로운 사무 공간을 기존 그리드 구조의 공간을 파괴해 혁신을 유도하기 위한 시도로 설명한다.


전 세계 곳곳에서 전통적인 시장을 해체하면서 그들이 가진 일터들의 형식과 공간을 무너뜨리고 지도에 없던 전대미문의 공간 분화 실험을 통해 일터이자 놀이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공간은 놀이터이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 공간이기도 하다.

교육 전문가 이완 매킨토시는 혁신이 가능한 공간 유형을 개인이 조용한 업무를 보는 사적 공간, 소규모 팀들이 협력하는 집단 공간, 영상이나 작품 등의 결과물을 공유하는 전시 공간, 아이디어를 직접 실험해보는 수행 공간,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공재 차원의 참여 공간, 정보를 얻고 교환하는 데이터 공간, 주변 환경과 활동을 지켜볼 수 있는 관찰 공간 등 7가지로 분류하고 다양한 공간의 융합을 강조했다.


굳이 라 쇼드퐁 사례와 제인 제이콥스의 이론을 빌리지 않아도 건축과 창조성의 관계는 우리 주변에서 목격할 수 있다. 획일적인 도시계획에 의해 건설된 신도시 중 혁신과 창조가 끊이지 않는 문화 중심지로 꼽히는 곳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공동체 친화적인 도시가 창조 친화적인 도시다


그렇다면 우리의 도시 개발 과제는 명확하다.

 

창조인재를 유치해 창조산업을 육성하려면, 창조성에 친화적인 도시 디자인, 즉 공동체 친화적인 '골목 도시'를 건설해야 한다.

목적에 맞는 여러 공간들이 밀집되어 혼합된 골목 디자인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교류하고 자극받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주택 수요가 현저히 부족한 것이 아닌 이상 신도시 건설을 자제하고, 기존 신도시도 걷고 싶은 골목이 가득한 도시로 리모델링해야 한다. 신도시 개발로 원도심이 공동화된 도시는 골목 상권을 살리는 도시재생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라 쇼드퐁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다양한 종류의 건축물과 주민이 공존하는 골목 도시는 또한 공동체 친화적인 도시다. 압축적이고 상호 교류가 활발한 공간 환경이 서로의 창조성뿐 아니라 공동체 정신을 촉진한다.


19세기 창조도시 라 쇼드퐁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해진다. 20세기 사회주의 혁명을 막은 개방적이고 평등한 도시가 미래의 창조도시로 가는 길이다.




* 장 장제르(1997)는 고향의 영향으로 자연 중시 건축과 작업 윤리를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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