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포항에 간다며 질문한다. 포항을 어떻게 여행해야 하는지. 곰곰 생각해 보니 포항은 쉬운 도시가 아니다. 포항은 크게 북구와 남구로 나뉘는데 이 둘은 다른 생활권이다. 북구는 원도심 포항, 남구는 포스코, 북구는 대구 생활권, 남구는 부산 생활권이다. 나에게 포항은 적어도 5개의 도시다. 철강, 미국, 근대, 수산업, 갯마을 차차차 도시다.
첫째가 철강도시다. 포항을 걸으며 항상 질문한다. 송도해변에서 바라본 제철소 스카이라인 말고 포항에서 철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철강 도시라면 스틸이 일상에 스며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스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포스코 지곡단지에 스틸하우스 단지가 있고, 영일대 해수욕장에는 스틸아트 작품을 전시되어 있다. 포항시립미술관도 스틸아트 전문 미술관이다.
그래도 스틸이 포항 문화의 일부라고 말하기엔 스틸 요소의 존재감이 일상이나 지역 산업에서 미미하다. 거리 디자인, 건축 디자인에서 딱히 다른 도시보다 스틸을 더 사용한 것 같지 않고, 스틸을 소재로 한 로컬 브랜드가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포항의 지도자라면,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스틸을 부각할 것 같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2016년에 "철강 도시의 상상력" 제목의 칼럼을 썼다.
두 번째가 미국 도시다. 포스코가 사택 도시로 만든 지곡단지는 작은 미국 도시다. 한적한 산책길, 단독주택 단지, 스트립 몰, 공원 등이 미국 주립대학 도시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전원도시 지곡단지 중앙에는 골프장 클럽하우스 같은 호텔 영일대가 있다. 지곡초등학교, 효자초등학교가 효자주택단지 부동산을 견인한다. 2017년 지진으로 포항 주택시장이 '붕괴'했을때도 효자동은 건재했다.
대학촌이다 보니 외곽에 작은 골목상권 효리단길이 들어가 있다. 효자시장 부근에 형성된 상권인데 학생 원룸촌을 배후 인구로 두고 있다. 바로 옆 유강에도 아담한 상권이 자리 잡았다. 효리단길 앵커스토어는 순이, 라멘베라보, 슈코, 가정초밥 등 간편 일식당이다. 아무래도 젊은 층이 주요 고객층이라 그런 것 같다. 달팽이책방이라는 독립서점도 있다. 문 닫아 들어가진 못했는데 SF 소설 포스터가 포스텍 컬리지타운다웠다.
아시다시피 공상과학소설가 김초엽 작가가 포스텍 출신이다. 카이스트는 누굴 배출했는지 궁금해진다. 우리나라 과학 정책가들은 따지 못하는 노벨상에 집착하지만, 나라면 SF 소설과 소설가를 지원하겠다. 일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로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늘어야 노벨상 과학자, 실리콘밸리 하이테크 창업자 배출할 수 있다.
전혀 다른 맥락에서 형성되는 문화가 재래돼지 식자재다. 바로 옆 유강에 재래돼지를 프리미엄 축산업으로 육성하는 송학농장의 이한보름 대표가 운영하는 에이징랩이 있다. 상업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셰프들과 재래돼지 요리 연구하는 일종의 랩이다. 재래 돼지는 1킬로에 9만 원 하는 고가 식자재다. 그럼에도 한국 파인 다이닝, 프리미엄 축산업, 포항 로컬을 위해 응원하고 싶다.
셋째, 포항은 근대도시다. 구한말 조선이 개방한 개항도시는 아니지만 1920년대 일본인 이주로 일본 문화가 뿌리내렸다. 일본인들이 수산업을 개척한 구룡포는 개항도시에 견줄 만큼 적산가옥이 많다.
포항 로컬 크리에이터 기업 나나리즘의 서미나 대표가 추천하는 구룡포 공간이다. 까멜리아&동백서점(카페 및 동백꽃 테마), 여든여덞밤(동양 찻집), 디플레이스(편집숍), 남다(편집숍), hotel223(숙소), oso(예술인 작품 등), 아라예술촌(예술가 작업실, 판매), 대게김밥집(대게장 활용 김밥, 볶음밥 판매), 구룡포예술공장(전시 등), 진강수산(과메기 식당), 리틀리아(이탈리아식 푸딩) 등. 구룡포는 포항을 대표하는 골목상권답게 적산가옥을 배경으로 다양한 로컬 브랜드를 선보인다.
일본 문화 전통은 현대에도 이어진다. 포스코 건설 당시 일본 기술자가 많이 상주했고, 이들 중심으로 일식 문화가 활발했다고 한다. 그 전통을 이어받은 대표적인 일식집이 남일초밥이라고 한다.
넷째, 포항은 수산업 도시다. 동해안 지도를 보면 금방 알겠지만, 포항은 오랫동안 동해안의 어업 전진기지로 기능했다. 남부 동해안의 모든 해산물이 죽도시장으로 집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메기 연 4,000억 원 규모의 시장이다. 생산지는 구룡포지만 판매지는 죽도시장이다. 대게도 구룡포로 들어와 영덕으로 간다. 영덕과 죽도시장이 마케팅을 잘해 구룡포 수산물 시장을 선점했다. 구룡포 주민들은 포항시의 하나의 읍인 구룡포가 영덕과 독립 지자체인 영덕과 경쟁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포항이 (구)포항역-육거리-죽도시장으로 이어지는 원도심 중심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아직도 원도심에 많은 문화자원이 모여있다. 서미나 대표가 추천한 원도심 공간이다. 시민제과(70년 정도 된 포항 대표 베이커리), 스쿱당(뚱카롱의 원조, 백화점에도 진출한 포항 로컬 마카롱 집), 아라비카(경북 3대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카페, 시내 1곳, 최근 영일대점 오픈), okonomy roll(최근 오픈한 오꼬노미야끼 집), 꿈틀로(예술인 창작공간), 덮죽(백종원 골목식당, 포항 특산물로 만든 죽 판매), 청포도다방(카페 및 공연, 포럼 등 문화예술행사), 피터의공작소(가구, 빈티지, 업사이클링 등), 올모스트(매거진) 등.
다섯째, 갯마을 차차차 촬영지다. 제작진은 크게 두 곳에서 촬영했다. 상업지역은 북부 청하면, 주거지역은 구룡포읍 석병리다. 갯마을 차차차는 폭력성이 난무한 K-드라마에서 '엽기적인 그녀'의 '당찬 여자, 개방적인 남자' 테마를 이어받은 따뜻한 마을 이야기다. 언론이 뭐라 하든 많은 시청자가 공감하고 촬영지를 찾는다. 갯마을 차차차의 의미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2021년 10월 칼럼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이처럼 포항은 하나의 도시가 아니다. 산업화를 지원하기 위해 급조된 도시여서 일까? 한편으론 혼란스럽지만, 또 한편으론 한국에선 보기 힘든 '다문화' 도시다. 포항을 찾는 친구가 포항의 이런 매력을 좋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