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이나 북클럽에서 나만의 콘텐츠는 세 개의 조합에서 만들어진다고 조언합니다. 나다움, 지역 다움, 직업 다움. 곰곰이 생각하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의 콘텐츠도 세 요소의 조합입니다. 그런데 누가 나의 지역 다움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면 당황합니다.
주거 동네 기준으로는 연희동입니다. 아시겠지만 저의 연희동 정체성은 명확하고, 이를 기초로 연희동 모델에 대한 글도 썼습니다. 그런데 서대문구가 문제입니다. 제가 사는 기초단체 서대문구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바로 잡겠습니다.
SNS 포스팅을 보니 서대문구에 대해서도 글을 많이 썼네요. 따지고 보면 저의 로컬 연구도 연세대 주변에 대한 관찰, 연세대 삼국지로 시작했습니다. 근데 서대문구 정체성 부족이 전부 제 탓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현재 회복 중이지만 서대문구 존재감이 1970년대 이후 많이 약해졌습니다.
무인양품, 진정으로 신촌과 함께 하는 걸까. 한 인터뷰에서 나루카와 타쿠야 무지코리아 대표는 “온라인 쇼핑에 맞설 힘은 지역 상생”임을 강조했고, 신촌 플래그십 매장에서 이를 실현하겠고 했습니다. 왜 무인양품, 스타벅스, 애플, 위워크, 에이스호텔 등이 오프라인에서 지역상생을 외칠까요? 나루카와 대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물건만 파는 매장은 더는 살아남기 어렵다. 스마트폰으로 하는 쇼핑이 훨씬 편한데 왜 가게를 가겠나. 매장에 오는 즐거움을 줄 수 있도록 변해야 한다. 무지를 지역과 연결하는 창구로 활용해 공생 가치를 제안하고 싶었다. 일본 매장도 이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오늘 막상 신촌 매장에 가보니 무지의 지역상생은 초기 단계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신촌 인근에 있는 점포를 소개하는 Shinchon to Go 게시판 이외에는 구체적인 지역상생 사업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지역 가게 소개에서는 무인양품 다움을 느꼈습니다. 무인양품이 소개한 17개 신촌 가게 중 제가 아는 가게는 딱 한 곳이었습니다. 신촌도 변하나 봅니다.
홍대 상권이 명지대까지 올라올까? 홍대 상권 활용이 서대문구의 고민이다. 홍대 상권이 상대적으로 침체된 남가좌동 명지대 앞으로 확장한다면 서대문구는 힘 안 들이고 지역발전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물리적인 장벽이 너무 크다. 사천교삼거리와 모래내 지하차도를 뛰어넘는다 해도 중간에 가재울 아파트 단지가 가로막는다. 오른쪽 궁동공원 지역을 타고 넘을 수 있는데 배후 주거지가 작아 상가가 들어서기 쉽지 않아 보인다. 오늘 강선규 센터장님 안내로 돌아보니 자체 변화가 예사롭지 않다. 백련시장 주위는 협동조합 중심의 골목상권이 형성되고 있다. 앵커스토어는 하나의 주택조합이 운영하는 이탈리안 식당 따라멜리19다. 건너편 명지대 앞도 변화가 시작됐다. 미장원 분식집이 많은 이곳에 개성 있는 커피전문점이 들어오고 있다. 지금 페이스라면 조만간 홍대로 빠져나가는 명지대생들을 붙들 수 있을 것 같다. 남가좌2동은 70년대에는 단독주택단지였다. 도로가 넓고 큰집이 제법 있다. 골목상권이 들어서기 좋은 환경이다. 아쉽게도 이곳 단독주택도 평당 2500만 원 수준이란다. 더 늦기 전에 소도시에서 단독주택을 찾아야겠다. #따라멜리19 #한뼘책방 #쌀꽃피는날 #이정희떡볶이 #경기사회 #백련시장 #달팽이집 #증가로커피공방 #여름커피로스터
신촌 철도길? 신촌에 골목상권이 없다고요? 철도길이 서서히 움직입니다. 라구식당에 이어 유원섬커피까지.
역시 글로벌이 로컬 되는 것은 쉽지 않나 봅니다. 작년 초 무인양품 코리아는 지역상생을 표방하며 신촌 매장에 커피스탠드, 파운드무지(Found Muji), 신촌toGo 게시판을 설치했습니다. 그때 반가워 올린 포스팅을 공유합니다. 그 후 1년 반. 처음부터 좀 약하다 생각했었는데... 3개 로컬 시설 중 제일 먼저 (신촌에 있는 다른 가게를 소개하는) 신촌toGo를 철수하더니 그다음은 파운드무지 그리고 최근 마지막 남은 커피스탠드를 없앴습니다. 2천 원으로 수준급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는 곳이었는데요. 커피로 사람을 모으려는 시도는 포기했나 보네요. 모르겠습니다. 지역 로컬에게 굿뉴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역시 글로벌은 지역화하는데 한계가 있구나,하고 안심할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로컬에 나쁜 뉴스입니다. 대기업-로컬 브랜드 상생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었는데요.
2020년 12월 10일
이대 앞의 비극 - 나라 걱정하는 한국의 엘리트들이 꼭 방문해야 할 곳이 이대 앞입니다.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순식간에 추락할 수 있는 사례를 굳이 외국이나 소멸 지역에서 찾을 필요가 없습시다. 한국을 대표하는 상권이었던 이대 앞을 가보시면 됩니다. 명동이나 삼청동같이 중국인 관광객의 철수로만 설명할 수 없는 곳입니다. 탈산업화,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도시에 대한 몰이해가 초래한 비극입니다. 이 기사가 대략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설명합니다. 불길합니다. 택배 도시가 이미 시작된 건가요?
2021년 2월 21일
신촌권 5개 대학 생활권, 가칭 유니버시티 파크 투어 시작합니다. 오늘 야심 차게 시작했는데 날씨 오판해 1구간(명지대-연희동)에서 포기합니다. 그래도 모든 지속가능 발전 키워드를 찾을 수 있는 탑티어 PC 보틀라운지에서 월드클래스 두유밀크티 마시는 것으로 위안합니다. 다음번에 더 많이 진격하겠습니다. How 두유 Do? 1구간 명지대-연희동 홍연로, 2구간 연희동-서교동 상상마당, 3구간 서교동 주차장길-대흥역 입구, 4구간 대흥역-이대입구, 5구간 이대캠퍼스-연대동문-연대캠퍼스-신촌역. #어라우즈 #성호각 #보틀라운지 #채우장
홍은동 연립주택 재생 - 굿뉴스입니다, 저층 주거지역 리모델링 논의가 시작됩니다. 본선 국면인가 봅니다. 나경원 후보가 도시재생 비전을 제시합니다. 본선이 진행되면 더 깊은 논의가 나올 것 같습니다. 서울 주거 공간의 균형을 위해서는 저층 주거지역의 리모델링이 불가피합니다. 다른 후보도 검색했습니다. 아직까지는 나경원 후보 대안이 유일합니다. 우리가 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분야가 저층 주거지역 리모델링입니다. 모든 사람이 아파트에 살 수는 없으니까요. 나후보가 지적한 대로 아직도 서울 시민의 반이 단독주택, 연립주택 등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 거주합니다. 특히, 많은 미래 세대가 저층 지역 1인 가구에 거주합니다. 그동안 저도 구산동도서관마을, 홍은동 써드플레이스 프로젝트, 면목동 공동체주택마을 등 제가 보기에 흥미로운 연립주택 리모델링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단편적인 사례여서 종합적인 리뷰가 아쉬웠는데 나경원 후보가 전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제가 이번 선거 팔로우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후보들이 대신 공부해줍니다^^. 어쩌다 도시 연구자가 된 저의 기억으로는 주택 분야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온 시기와 장소는 2014년 경기도입니다. 따복마을을 제안한 "공유 시장경제의 신주거문화", 지금 봐도 고민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검색하니 이재명 지사가 계속 이어가고 있네요.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더 다양한 주택 공급 대안이 나왔으면 합니다. 앞으로 누군가가 제안하겠지만 저는 동네 단위 디벨로퍼 양성이 바람직한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동 단위로 매년 100개 주택만 공급해도 1년이면 425 행정동 x 100호=42,500호, 5년이면 212,500호입니다. 도시개발에서도 '작은 것이 아름답다' 개념을 도입해야 합니다.
대학촌의 원조 대신동 - 이상하죠. 한국어에는 College Town이나 University Park 같은 지역, 즉 대학 근처에 형성된 주거지에 딱 맞는 단어가 없습니다. 대학촌이 맞는데 이 단어도 대학가와 마찬가지로 상업지구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서울에서도 대학 교수들이 학교 근처에 살았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저는 연대 교수들이 1960년대 개발된 연희동에 모여 살았다 생각했는데 실은 더 오래된 대학촌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대신동입니다(이대 후문, 연대 동문). 제가 '골목길 자본론'에서 이대 후문 지역을 '다시 동네 상권으로 돌아간 골목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이대 후문은 압구정동과 쌍벽을 이룬 서울의 대표적인 카페거리였습니다. 그 후 쇠락한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오늘 아침 검색하니 대신동의 역사는 1940년대 시작합니다. 당시 경성시는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촌, 금호, 전농, 상도 지역에 택지 개발 사업을 했는데 신촌 지역의 일부가 지금의 대신동입니다. 분양 지도를 보시죠. 1990년대 카페거리는 1940년대 필지를 중심으로 형성됐습니다. 왜 동네가 깊지 않은가 했더니 연세대가 대신동의 서쪽 주택을 거의 다 매입했네요. 제가 일하는 새천년관도 새로 매입한 땅에 건설했고요. 연대 처음 왔을 때 그 자리에 외국인 교수 숙소로 사용되는 주택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1940년대 개발된 택지였습니다. 지도를 보면 이대도 만만치 않습니다. 1940년대에는 이대의 지금의 금란중학교 부지만 소유한 것 같습니다. 그 후 이대부초, 금란여고 등 대신동 동쪽 택지는 거의 다 이대 소유로 바뀝니다. 이렇게 연대와 이대가 땅을 구입하다 보니 골목길과 거리가 남아 있지 않은 거죠. 선배 교수 한분이 어릴 때 이 동네에 살았다고 합니다. 연대, 이대 교수가 많이 살았고요. 당시 거리 분위기가 어땠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미국과 유럽의 대학촌처럼 대학다운 거리가 있었을까요? 두 번째 사진을 보시죠. 1960년대 홍대 지역(와우산)에서 신촌로터리와 대현동, 이대 캠퍼스를 바라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제가 붉은 선으로 표시한 거리가 어딘지 아시나요? 그 끝이 굴다리입니다. 지금도 있는 신촌역 굴다리입니다. 굴다리를 지나면 대신동에 진입합니다. 신촌에서 이 굴다리로 가는 길이 지금의 명물길입니다. 형제갈비, 벽제갈비, 옛날 고박사냉면집, 민들레영토가 있던 길입니다. 그 길이 대신동을 마포와 연결했고 지도를 보면 당시 이 길이 지금의 연세로보다 컸던 것 같습니다. 신촌로터리에서 와우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무슨 이유에서 골목길로 좁혀진 것 같습니다. 왜 한국에는 살고 싶은 대학촌이 없나. 이 질문이 도시의 역사와 미래에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전 세계 어디 가나 대학촌이 살고 싶은 동네고, 머물고 싶은 동네입니다. 대신동의 경우, 금화터널이 뚫리면서 동네가 단절되고 주택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 같습니다. 대신동과 연희동을 떠난 선배 교수들을 '원망'했는데 전부 그분들 책임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지막 궁금증입니다. 지금은 대신동이라고 부르는데 과거의 동네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봉원정이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봉원동이라는 법정동이 남아있는데 봉원사 주변 산속입니다. 그렇다면 대신동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2021년 9월 28일
신촌 도와주세요. 명색이 연대 교수인데 그동안 정문 앞 상권을 너무 구박했나 봅니다. 금요일 저녁에도 텅 빈 거리를 보니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안 되겠어요. 자주 가야겠어요. 소로 소록 저의 과거 신촌 아지트를 소환합니다. 맞춰주세요. 어딘지. 다 맞히면 초대할게요~ #라구식당 #벽제갈비 #바틸드 #미네르바
2022년 2월 6일
홍제의 축복? 홍제동 골목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파스타집입니다. 손님들이 그러나 봐요. 홍제동의 축복이라고. 아마 홍제동에서 기대하지 않은 가게라 생각하나 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의 지역 연구 동기 중 하나가 일본 동네의 풍부함이었습니다. 어딜 가나 수준급 프렌치 이탈리안 있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한국에도 골목상권 중심으로 그런 도시문화가 확산된다고 믿었고, 그래서 골목상권 중심으로 연구 시작했습니다. 일부 언론은 이번 대선이 동네 선거냐고 불평합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산업사회의 실수를 바로잡는 것이고, 그 반성은 동네 복원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동네를 살고 일하며 놀기 좋은 동네로 만든 일보다 더 중요한 정책 없습니다. 그나저나 홍제역 통일로37번길 후보지로 등재합니다. #서대문구 #홍제동 #홍제파스타 #서울문화예술대학교 #날로 #서울맨션아파트 #고은맨션아파트 #아이덴티티커피랩 #골목상권후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