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by 골목길 경제학자

기술사회의 미래를 조망하는 렌즈 중의 하나가 철학자의 통찰입니다.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기술에 대한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로봇’ 이야기가 등장할 정도입니다.


우리가 보통 기술사회가 산업혁명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도구를 생활 전반에 쓰기 시작한 6,000년 전 농경사회가 기술사회의 시작이 아닐까요?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차별성을 도구 사용에 찾을 만큼 기술은 항상 인간사회의 중요한 구성 요소였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자들은 기술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설명할까요? 유토피아 '방법론'을 많이 사용합니다. 유토피아는 미래 사회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고안된 문학적 기법입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상의 세계를 통해 기술이 어떤 미래를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희망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유토피아만이 아닙니다. 그 반대, 즉 불행한 암흑세계를 의미하는 디스토피아도 활용합니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전환기의 신기술이 기존 사회 질서를 위협할 때 많이 등장합니다. 유토피아에도 다양한 유형이 존재하는데, 대부분의 작품은 사회주의 유토피아, 과학기술 유토피아, 과학기술 디스토피아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회주의 유토피아]

처음으로 등장한 유토피아 작품은 16세기 토마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입니다. 모어는 이 소설에서 16세기 작물보다는 양을 키우길 원한 지주들에 의해 경작지에서 쫓겨난 소작농의 대량 실업을 해결하는 대안을 고민합니다. 그가 제시한 유토피아는 강력한 중앙 권력의 통제 하에 모든 사람이 동일한 조건에서 노동하고 동일한 보상을 받는 사회입니다.


사회주의 유토피아 소설은 산업사회 전환기인 19세기에 다시 등장합니다. 에드워드 벨러미와 윌리엄 모리스가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에드워드 벨라미의 ‘뒤를 돌아보면서'는 19세기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대안입니다. 그가 상정한 유토피아는 국가 자본주의입니다. 국가가 과학기술과 산업의 힘으로 이루어 낸 물질적 성과를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배분하는 사회입니다.


국가 없는 사회주의 유토피아도 논의됩니다. 윌리엄 모리스는 ‘존재하지 않은 곳에서 온 소식(News from Nowhere)’에서 사람들이 국가와 대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과 이웃이 필요한 만큼만 수작업으로 생산하는 공동체를 유토피아로 그립니다.


[과학기술 유토피아]

사회주의보다는 기술 자체에서 희망을 찾는 과학기술 유토피아 소설도 출현합니다. 17세기 프란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와 1960년대 올더스 헉슬리의 ‘아일랜드’가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유토피아는 '벤살렘'이라는 작인 섬입니다. 그 섬나라 사람들은 과학의 힘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과학을 현실 세계에서 신의 뜻을 구현하는 소명으로 추구하는 영적인 삶에 충실합니다. 이 소설에서 신앙이 과학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작가의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아일랜드'는 종교와 독재자 없는 유토피아입니다. 작은 섬 팔라에서 사는 사람들은 개인 능력 차이에 따른 계급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입헌군주제, 협동조합, 영적 교육, 인구조절, 집단 양육 등의 현실적인 제도와 '모크사 메디신(환각제)' 복용, 명상, 요가 등의 의식 확장 활동을 통해 평화롭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를 건설합니다.


팔라 사회에서 기술의 역할은 제한적입니다. 팔라 정부는 정책적으로 기술 투자를 의료와 식품 생산기술에 제한합니다. 헉슬리의 유토피아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기술을 사회 정체성에 맞게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합니다.


소설 형태는 아니지만 1970년대 이후 스튜어트 브랜드, 케빈 켈리, 제러미 리프킨 등 많은 지식인들이 인터넷, PC, 블록체인 등 개인을 해방시키고 연결시키는 새로운 기술이 인간 사회를 더 수평적이고, 탈중앙적, 그리고 자율적인 조직으로 만든다는 전망을 내놓습니다.


[과학기술 디스토피아]

1930년대 이후 많은 작가들이 디스토피아를 통해 기술이 현재와 같이 진화하면 인류가 어떤 세상을 맞을지를 경고합니다. 1930년대 발표된 조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대표적인 과학기술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최근 나오는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도 대부분 디스토피아에 속합니다. 그만큼 기술에 대한 불신과 기술사회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큰 거죠.


오웰이 두려워한 기술이 독재자의 감시 기술이라면, 헉슬리는 대중소비사회(Mass Consumption Society) 기술을 두려워합니다. 전체주의적 지배자가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도 환각, 섹스, 소비 욕구를 만족시키고 인구와 수명을 조절하는 기술을 통해 사람들을 사회 질서에 순응하는 '노예'로 만든 사회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입니다.


'멋진 신세계'에서 헉슬리가 인간에게 준 선택은 이런 노예적 문명사회와 반문명적 원시사회 중 하나입니다. '멋진 신세계'를 탈출하는 방법은 보호구역으로 불리는 원시사회로 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든 디스토피아를 벗어날 수 없는 거죠. 30년 후 헉슬리가 '아일랜드'에서 제시한 '제3의 사회' 팔라는 '멋진 신세계'에서는 선택지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과학기술 디스토피아는 일종의 러다이트 운동입니다. 제1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던 19세기 초반 러다이트(Luddite)로 불리던 영국 수공업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뺐는다고 생각한 직물 기계를 조직적으로 파괴한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20세기 이후에는 러다이트 운동이 다른 형태로 지속됩니다. 기계를 파괴하지는 않지만, 생태환경, 反자유무역, 反서구문명 활동가와 지식인 중심으로 인간 사회를 위협하는 기술을 거부하는 네오-러다이트 운동이 활발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기술 전환기를 맞은 우리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문헌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사회주의 유토피아는 우리가 어떤 미래를 디자인해도 공동체, 평등, 자아실현, 개인 주체성의 가치를 유지해야 성공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이 어려운 거죠. 과학기술 유토피아는 종교, 문화, 기술의 힘이 인간의 욕구와 과학기술의 위험성을 제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요. 과학기술 디스토피아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기술사회의 구조적 취약성입니다. 기술을 또 다른 기술이나 윤리 체계로 제어하기 않으면 기술의 파괴적인 힘이 어떻게 인간사회를 쉽게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경고합니다.




* 유토피아 문헌을 보면 리버테리언, 철인, 종교 등 사회주의와 과학기술 외에도 다양한 유형의 유토피아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다만, 기술사회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유토피아는 사회주의와 과학기술 유토피아가 많습니다.


<참고 문헌>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유토피아 상/중/하, 조선일보, 2022 년 1-2월 연재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 1988

Aldous Huxley, Brave New Work, HarperPerennial, 2005

Aldous Huxley, Island, HarperCollins, 1962

George Owell, 1984, WilliamCollinsBooks.com, 2021

Kirpatrick Sale, Rebels Against the Future, Addison-Wesley, 1995

Lyman Tower Sargent, Utopianism: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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