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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Mar 08. 2022

문화 경제 시대의 상권 분류

부동산 정책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개념 중 하나가 상권이다. 상권 범위, 유형, 변화 등 상권 정책에 중요한 개념 어느 하나도 정확하게 정의되고 측정되지 않는다. 대충 감으로 특정 지역을 상권이라 부르고 자의적으로 이를 분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률적으로 정의되는 상권은 전통시장, 상점가, 골목형상점가, 상권활성화구역이다. 전통시장, 상점가, 골목형상점가가 홍보, 가로와 간판 정비, 상인회 지원 등 일상적인 상권 지원을 위해 만든 장치라면, 상권활성화구역은 지역발전 정책을 지원하거나 침체된 상권을 살리기 위해 상권 활성화가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제도다. 상인 주도로 상권을 조직할 수 있으나 상권 지정 조건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골목형 상점가의 경우, 2000m² 이내의 면적에 위치한 30개 이상의 점포가 조직한 상인회가 토지주의 동의를 얻어 상권 지정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업계나 일반인이 인식하는 상권의 개념은 다르다. 부동산 업계는 주로 상권을 역세권, 행정동, 대형시장 이름으로 표현한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리단길’, ‘~길’ 등 상인들이 상권 지정 제도와 관련 없이 자신이 활동하는 거리 또는 지역에 부친 이름 또한 상권 명칭으로 통용된다.


상권 분류도 체계적인 기준을 따른다고 보기 어렵다. 상권관리시스템을 도입한 서울시는 공식적으로 상권을 발달상권(도심, 부도심, 대로변), 전통시장, 관광특구상권, 골목상권(동네상권)으로 분류한다. 한 금융권 경영연구소 보고서에서 사용된 분류 방식은 중심상권, 몰링상권(대형시장), 골목상권(동네상권)이다.


문제는 기존의 상권 분류 방식이 2000년대 이후의 상권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데 있다. 상권 변화를 선도하는 상권은 젊은이들이 여행 가듯 찾는 ‘골목상권’이다. 2000년대 초반 홍대, 가로수길, 삼청동, 이태원 등 서울의 4개 지역에서 시작된 골목상권은 지속적으로 성장해, 2022년 2월 현재 전국 168개 지역으로 증가했다.


오프라인 상권을 주도하는 골목상권이 다른 상권과 다른 점은 기업 형태와 판매 품목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골목상권이란 독립 가게와 독립 브랜드가 (중심이 되어 주로) 콘텐츠를 파는 상권을 말한다. 신도시와 대로변 상권은 대기업과 프랜차이즈가 상품을, 백화점과 복합쇼핑몰은 이들이 상품과 더불어 콘텐츠를 함께 판매하는 상권이 된다. 전통시장은 독립 가게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상품을 제공하는 상권이다.

상권의 전반적인 트렌드는 상품에서 콘텐츠로의 이동한다. 콘텐츠가 중요해짐에 따라 상권 고유의 특색과 콘텐츠를 창출할  있는 상권이 온라인과 경쟁할  있다. 오프라인 상권   일을   있는 상권은 현실적으로 지역 문화를 살릴  있는 건축, 공간, 문화 자원을 보유하고 독립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할  있는 독립 기업을 유치할  있는 원도심 골목상권이 유일하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할  있는 백화점이나 복합쇼핑몰도 콘텐츠를 개발할  있으나, 다른 지역이 복사할  없는 수준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기는 어렵다.  


골목상권이 지역경제에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기업 생태계의 가능성이다. 골목상권 현상이 시작된 2000년대 중반의 중심 업종이 F&B, 독립서점, 게스트하우스이었다면,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복합문화공간, 라운지, 코워킹, 코리빙, 편집숍 등 상권에서 독립적인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 성격의 업종이 주축이다. 홍대, 성수동, 한남동 등 일부 1세대 골목상권은 리테일과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패션, 디자인, 화장품, 스타트업 등 지역 특색에 맞는 새로운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창조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상권의 중심축이 콘텐츠로 이동하고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상권이 창조 커뮤니티로 진화한다면, 상권 정책도 골목상권 중심으로 추진해야 한다. 즉, 새로운 지역에 골목상권을 개발하고 기존 상권에서는 업종 고도화를 유도해야 한다. 전통시장, 신도시 상권도 공간 리모델링, 독립기업 유치,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을 통해 골목상권 모델로 전환할 수 있다.


다행히 최근 상권 정책 트렌드는 긍정적이다. 서울시 로컬 브랜드 상권, 부산시 소상공인 산업화, 대구시 명품 골목상권 등 로컬 크리에이터와 로컬 브랜드가 중심이 되는 상권을 육성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중앙정부의 소상공인 정책도 ‘강한 소상공인’ 육성을 강조한다. 중앙과 지방 정부가 현재와 같이 상권 중심의 소상공인 지원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전국의 많은 상권이 자체적으로 로컬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로컬 브랜드 상권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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