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안의 100개 도시(One Hundred Cities within Seoul). 2015년 7월 뉴욕타임스가 서울 여행을 소개한 기사의 제목이다. 서울의 매력을 동네의 다양성에서 찾은 것이다. 뉴욕, 런던, 도쿄, 파리 등 우리가 선망하는 글로벌 도시도 모두 동네가 강한 도시다. 동네마다 주민의 생활 문화에서 배어 나오는 고유성과 다양성을 느낄 수 있다.
다른 해외 언론도 서울의 동네 경쟁력을 인정한다. 매년 세계에서 가장 쿨(Cool)한 동네를 발표하는 세계적인 도시 여행 매거진 타임아웃(Timeout)은 2018년 을지로를 세계 2위, 2021년 익선동을 세계 3위로 선정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Telegraph)는 2017년 홍대를 세계 2위의 힙스터 지역으로 소개했다.
/일러스트=이철원
서울의 동네가 항상 강한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은 중심부와 변두리로 나뉜 평범한 도시였다. 외식이나 쇼핑을 하기 위해서는 거주지를 떠나 시내로 가던 시절이다. 이제는 슬세권(슬리퍼 차림으로 필요한 편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주거 권역)이란 단어가 유행하듯이 굳이 다른 지역에 가지 않아도 동네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도시에서 살고 있다.
서울의 동네 부흥을 견인한 것은 골목 상권이다. 골목 상권은 2000년대 중반 처음으로 언론에 등장한 MZ세대가 여행 가듯 찾는 곳이다. 2005년 홍대, 이태원, 가로수길, 삼청동 등 4곳에서 시작, 현재 서울 전역에 68개로 증가했다.
서울이 68개로 만족해야 할까? 최상위권 글로벌 도시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머물고 싶은 동네가 필요하다. 현재 서울의 425개 전체 행정동 중 골목 상권을 보유한 행정동은 16%에 불과하다. 앞으로 골목 상권이 성장할 여지가 큰 것이다.
서울시는 이미 행동에 들어갔다. 2022년 연남동, 망원동, 성수동과 같은 상권을 더 만들기 위한 ‘로컬 브랜드 상권 양성’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시 계획대로라면 로컬 브랜드 상권 양성이 완성되는 2030년에는 서울의 브랜드 동네가 현재의 68개에서 200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머물고 싶은 동네를 늘리는 일은 단순히 상권을 활성화하는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도시 평가에서 가장 열악한 분야로 꼽히는 거주의 질과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다. 현재 서울은 모리재단의 글로벌 파워도시 지수 등 경제성장 잠재력 평가에서는 선전하지만 (세계 10위 안), 머서(Mercer)의 삶의 질 지수, EIU의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지수 등 삶의 질 평가에서는 최악의 평가(세계 70위 밖)를 받는다. 모리재단 평가에서도 문화 활동, 거주의 질 분야에서는 하위권이다.
삶의 질(Livability) 평가는 분야별 차이가 크다. 실업률, 범죄율, 기대 수명, ICT 준비성, 재해 안전은 만점인 100점, 근로 시간, 근무 형태 유연성, 물가, 정신 건강, 의사 수에서는 0점에 가까우며, 리테일 숍, 식당 수 점수는 50점대로 평가받는다. 노동, 물가, 정신 건강은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는 단기간에 개선하기 어려운 문제다.
단기간에 서울의 삶의 질 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외국에서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리테일, 식당이 집적된 동네를 더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외국인과 해외 언론이 아직 모르는 동네와 새로운 동네를 발굴해야 한다.
새롭게 발굴하고 지원해야 하는 지역의 하나가 여의도 금융 중심지와 같은 영어가 자유롭게 사용되는 외국인 거주 지역이다. 최근 서울시가 아시아 금융 중심지 프로젝트를 재가동하는데, 현재의 영어 소통 환경으로는 서울이 금융 중심지가 되기가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일 것이다. 싱가포르, 홍콩 등 영어 공용화 도시는 물론 상하이, 도쿄 등 동아시아의 다른 글로벌 도시에 비해서도 서울의 영어 사용 환경이 열악하다.
일부 시민단체가 한국어 보호 차원에서 영어 상용화를 반대하지만 이제 한국 사회도 영어 환경을 도시 다양성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때가 됐다. 서울과 같은 글로벌 대도시에 외국인이 살고 싶은 동네가 많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고, 서울에 다양한 동네가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할 때 영어 상용 지구를 한두곳 지정한다고 해서 도시 정체성을 훼손할 가능성은 적다. 오히려 서울이 외국인이 좋아하는 동네가 많은 사실이 알려지면, 다양성과 삶의 질에 대한 서울의 평판은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동네 정책은 또한 소상공인 경쟁력 강화에 중요한 정책이다. 대기업과 온라인과 경쟁하는 소상공인의 비교우위는 동네다. 지역 차별화에 성공해 브랜드가 된 동네에서 활동하는 소상공인은 개인 브랜드와 더불어 동네 브랜드를 통해 수익을 올린다. 정부가 좋은 동네를 많이 만들어 주면 그 혜택은 주민과 소상공인에게 돌아간다.
서울의 동네 경쟁력을 제고하는 정책은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 한편으로는 로컬 브랜드 상권 양성 사업을 확대해 새로운 동네를 발굴하고, 또 한편으로는 동네 홍보 캠페인을 통해 서울의 동네 경쟁력을 국내외로 알려야 한다.
하나의 대안은 외국인뿐 아니라 주민, 상인이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동네 생활 포털 서비스의 운영이다. 포털과 연계해 지역 생활 문화 활성화, 외국어 상용화, 외국인 커뮤니티 지원, 상권 정보 서비스, 로컬 크리에이터와 로컬 콘텐츠 개발 지원, 로컬 브랜드 상권 양성 등 다양한 동네 활성화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동네 생활 포털을 이처럼 서울시 동네와 상권 사업의 플랫폼으로 활용하면 서울의 글로벌 위상과 소상공인 경쟁력이 동시에 높아질 것이다.
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