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유통 대기업이 줄이어 광주시에 복합 쇼핑몰 사업 계획서를 제출한다. 작년 11월에 현대백화점그룹이 ‘더현대 광주’, 뒤이어 신세계그룹이 ‘그랜드 스타필드 광주’ 제안서를 공개했다. 광주시는 내심 롯데백화점, 코스트코, 이케아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으니 선택의 폭은 더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이 소멸 위기의 지방 도시에 투자 의사를 보이는 것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광주 복합 쇼핑몰 사업은 일반 복합 개발 사업과 다르다. 탄생 배경부터 특별하다. 작년 대선에서 불거진 ‘노잼’ 도시 논쟁의 결과다. 광주의 일부 시민이 청년들이 복합 쇼핑몰 하나 없는 광주를 노잼 도시로 부른다며 유치에 나서지 않는 민주당 시정을 비판한 데서 시작됐다. 광주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던 국민의힘은 민주당 비판 분위기에 호응, 대규모 복합 시설을 공약했다. 여론에 밀린 광주시는 여당이 된 국민의힘이 지원한다고 약속한 복합 쇼핑몰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광주 복합 쇼핑몰은 광주만의 이슈가 아니다. 중앙정부가 지원한다면, 국민 혈세를 왜 대기업 지원에 쓰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광주 시민도 고민이다. 상당 규모의 광주 자원이 투입될 복합 쇼핑몰이 광주의 미래에 좋은지가 궁금하다. 특히 전시성 랜드마크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비판해 온 학계와 시민 단체는 전 세계적으로 불황인 대형 상업 시설이 왜 광주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를 추궁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반대하자는 말은 아니다. 지지자들이 주장한 대로 광주 규모의 대도시라면 복합 쇼핑몰 한두 개 정도는 보유하는 것이 정상이다. 문제는 추진 방식이다. 현재 방식으로 시민이 기대하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입지다. 광주로서는 지역 경제 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는 장소의 선정이 중요하다. 원도심 침체 상황에서 광주 전체는 아니더라도 낙후 지역 한두 곳에 활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 광주시는 부지 선정을 사업자에게 맡긴다. 그동안 경험을 보면 대기업은 부지와 건설 비용이 낮은 교외나 공장 부지를 선호한다. 도시 재생 효과는 기업의 우선순위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현대백화점은 북구 임동 방직공장터를, 스타필드는 교외인 광산구 운수동 어등산을 선택했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광주를 방문한 사람은 광주의 어디에 대규모 상업 시설이 필요한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무등산 입구와 광주역 주변이다.
무등산국립공원은 시내를 병풍처럼 감싸는 국립공원이다. 광주가 이 같은 천혜의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1970년대 관광지로 개발한 지산동 국립공원 입구 지역이 낙후된 지 오래지만 아직도 이를 방치한다. 국립공원 규제를 일부 완화하더라도 이 지역에 새로운 상업 시설을 유치해야 아시아문화전당-조선대-동명동 문화지구를 지산동-산수동-계림동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
또 하나의 난제가 KTX 역이 광주송정역으로 이전하면서 중심 역 기능을 상실한 광주역의 재생이다. 광주역 주변이 공동화되어 충장로-광주역-광주터미널-상무지구로 이어지는 도심 북부 전체가 낙후 위기에 직면해 있다. 복합 쇼핑몰을 전략적으로 배치해 광주역 지역을 새로운 부도심으로 육성해야 한다.
둘째로 우려되는 부분이 콘텐츠다. 현대백화점과 스타필드가 지역 상생을 표방하지만, 지역 상권과 소상공인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갈지는 명확하지 않다. 대기업 전력을 보면 불안하다. 다른 지역에 오픈한 유사한 복합 쇼핑몰은 지역 상권, 소상공인 상생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표면적으로는 지역 상생을 표방하지만, 정작 쇼핑몰에 입점한 상점은 ‘서울에서 검증된’ 유명 브랜드다.
로컬 브랜딩과 로컬 브랜드 지원도 로컬 크리에이터 모델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역 자원을 단순하게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가치의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로컬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로컬 크리에이션이다. 로컬 푸드, 수제 맥주, 양조 등 로컬 브랜드 의존도가 높은 분야에서는 대기업이 직접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마지막으로 주변 상권 연계가 우려된다. 상권과 동떨어진 단지형 상업 시설의 지역 효과가 미미하다는 사실은 주변을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골목길에 위치한 글로벌 커피 브랜드는 거리를 살리지만, 같은 브랜드라도 대로변에 조성된 드라이브스루(Drive Through) 매장은 유동 인구를 창출하지 못한다. 고립된 단지형보다는 개방된 로드형 쇼핑몰의 진입을 유도해야 하는 이유다.
불가피하게 단지를 선정해도 지역 상권 연계성을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제시해야 한다. 단지 사업자가 외부 상권을 연결하는 출입구, 도로, 보행로에 투자하도록 유인해야 한다. 공공은 수소 트램 같은 대중교통수단으로 연결을 지원할 수 있다.
광주 복합 쇼핑몰 사업은 아직 초기 단계다. 광주시가 더 많은 기업의 제안을 받아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다. 한 기업만 선택할 필요도 없다. 한 기업에 편리성 중심의 외곽 창고형, 다른 기업에는 콘텐츠 중심의 도심 상생형을 배정할 수 있다.
복합 쇼핑몰은 광주 상권 전체를 디자인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일부 상권은 복합 쇼핑몰과 연계해, 일부는 독립적으로 고유한 문화를 창출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 상권으로 육성해야 한다.
상권 디자인 과정에서 광주의 상권 혁신 경험이 큰 힘이 될 것이다. 광주는 2010년대 이후 1913송정역시장, 양림 근대역사문화마을, 동명동 대표문화마을, 광산구 골목 상권 활성화, 첨단지구 시너지타운, 서구 소상공인 원스톱활력지원센터 등 타 지역이 벤치마킹하는 상권 혁신 사업을 선도했다.
복합 쇼핑몰을 통해 실현할 수 있는 광주의 비전은 크리에이터 상권 중심의 창조 도시다. 문화 경제 시대의 상권은 온라인이 대체하지 못하는 경험과 콘텐츠를 제공하는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의 플랫폼이다.
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