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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Nov 25. 2017

라이프스타일에서 찾는 도시의 미래

골목길 경제학자의『골목길 자본론 』강연 자료

*2017년 12월 12일(수) 저녁 7시 을지로입구역 페럼타워 페럼홀에서 개최될 강연(신청 정보)의 개요입니다.




'라이프스타일에서 미래를 찾습니다'는 필자가 골목길 경제학자의 브런치를 소개하는 문장이다.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하고 추구하는 과정에서 개인과 사회의 삶이 윤택해지고 경쟁력도 높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최근 글로벌 기업 이케아 한국 대표도 "우리의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라이프스타일이 필요하다"라고 발언한 것을 보면 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왜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성공한다고 조언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들에게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러가 행복하고 성공하는 이유는 어쩌면 자명하다. 라이프스타일러는 여유와 배려가 있고, 하나의 일에 집중하며, 좋아하는 일 잘 하는 일을 선택하고, work and play (일하는 게 노는 거다)를 실천한다.


이제 우리 자신에게 동일한 질문을 해보자. 우리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무엇인지를. 새로운 시대를 맞는 기성세대도 젊은 세대 못지않게 라이프스타일이 유발하는 열정, 소명의식, 자립심이 절실다. 창의, 디자인, 문화 창출, 개성과 스타일, 소통과 커뮤니케이션, 사회적 책임 등 탈물질주의 경제가 요구하는 수많은 능력도 이차적인 문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능력을 습득하려는 의지고, 이 의지는 상당 부분 탈물질주의 가치를 실천하려는 라이프스타일에서 비롯된다.


개인의 집합체인 기업, 도시, 국가도 마찬가지다. 탈물질주의 경쟁력을 가지려면 탈물질주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개성과 다양성 기반의 물질주의 경제에서 한 기업이, 한지역이, 한 국가가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낙오자가 누구인지는 확실하게 보인다. 국제 사회와 미래 세대가 요구하는 차별적 라이프스타일을 거부하는 기업, 도시, 국가가 낙오할 것이다.


일본의 사회혁신가 소네하라 히사시가 현장에서 체험한 것처럼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추구는 자연스럽게 사회 발전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즐길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택해 그 스타일로 살아가고자 하면 주변에 있는 것이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실현하기 위한 자원으로 보이게 됩니다. 거기에서 사람이나 자원을 연결하는 활동이 시작되고 조직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개인의 워크 스타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지역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소네하라 히사시, 농촌의 역습, 2011)



라이프스타일 연구의 시작


나의 라이프스타일 여정은 1990년대 초반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시작됐다. 한국의 획일적인 성공 기준에 따라 성장한 나는 그곳에서 차별적 라이프스타일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꼈다. '서울'같은 중심지에서만 살다가 처음으로 '시골'을 접한 곳이 오스틴이었다.  


오스틴은 신기했다. 주민들이 마치 세계의 중심에서 사는 것처럼 출신 도시를 사랑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한국 사람들이 시골이라 부르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환경과 인프라가 열악했다.


과연 그들의 자신감과 자부심이 허세였을까? 오스틴에서 살면서 개인의 성공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성공도 자긍심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소를 사랑해야 그 장소의 숨은 기회와 자원이 보인다. 작은 도시 오스틴이 글로벌 기업 델 컴퓨터, 홀푸드마켓을 키운 것도, 세계적인 음악도시로 발전한 것도 출신 도시에 대한 주민의 애정이 원동력이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오스틴 주민의 맹목적인 사랑을 뭐라 부를까 고민했다. 애향심이라 하기엔 그들의 사랑이 구체적이었다.  아름다운 자연, 자유로운 문화, 대학과 다문화 사회가 일구어낸 독특한 삶의 방식, 바로 오스틴 라이프스타일을 사랑한 것이다.



작은 도시 큰 기업 (2014)


한국에 돌아와 오스틴 경쟁력의 비밀을 공유하고 싶었다. 지역 불균형 문제로 고민하는 한국에서 오스틴 스토리는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한국 독자에게 소개하기 전에 그 스토리가 보편적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오스틴 가설을 품고 글로벌 기업을 키운 작은 도시 10곳을 찾았다.


예상대로 나는 큰 기업을 가진 작은 도시에서 그 도시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했다. 시애틀의 여가와 카페 문화, 브베의 단순한 삶, 포틀랜드의 새로움과 자유로움, 교토의 교(京) 문화는 다른 도시에서 경험할 수도, 찾을 수도 없는 작은 도시만의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이었다.


작은 도시의 차별화된 라이프스타일은 삶의 질뿐만 아니라 지역 산업의 기반을 제공한다. 내가 방문한 작은 도시 속 큰 기업은 모두 지역 라이프스타일을 활용한 기업 문화와 제품으로 성공했다. 시애틀의 커피 문화가 스타벅스 커피를, 포틀랜드의 아웃도어 문화가 나이키 운동화를, 오스틴의 히피 문화가 홀푸드마켓의 자연식품을, 스몰랜드의 실용주의가 이케아 가구를 만들었다.


성공한 작은 도시에는 다른 비밀도 있었다. 나의 여정에 있던 도시는 예외 없이 외부 인재와 문화에 개방적이었다. 뉴욕 출신의 스타벅스 경영인 하워드 슐츠가 성공한 시애틀, 가고시마가 고향인 이나모리 가즈오가 교세라를 세운 교토, 전 세계에서 온 인재가 억만장자를 꿈꾸는 팰로앨토, 실리콘밸리 기업과 인재가 몰리는 오스틴 등.


개방성은 특히 작은 도시에게 더욱 중요하다. 중심 도시에는 저절로 자본과 인재가 모이지만 작은 도시는 다르다. 지리적으로 큰 도시와 떨어져 있고 전통과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므로, 자칫 외부 인재에 폐쇄적인 도시가 되기 쉽다. 그러므로 작은 도시는 모든 시민이 함께 나서서 개방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


세계화 또한 작은 도시의 필수 전략이다. 내가 방문한 작은 도시의 기업은 국내 시장에서 중심도시의 기업과 경쟁하기 어려운 탓에 외국으로 진출하는데 적극적이었다. 세계 시장에서는 중심도시와 작은 도시의 기업들이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한다.


작은 도시를 찾아다니며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중에서 네슬레 H 부사장의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우리에게 스위스 시장이 중요하면 취리히로 본사를 옮길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회사입니다. 국제공항에서 가까운 도시면 본사가 있을 도시로서 충분합니다.”


차별적인 라이프스타일, 개방성, 세계화, 이 3가지는 성공한 작은 도시의 공통점이다. 우리나라 도시의 입장에선 이런 조건이 도시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거나, 도시가 선택할 수 있는 성격의 조건이라는 사실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성공 조건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리더가 필요하다. 팰로앨토, 오스틴, 시애틀, 교토가 배출한 프레드 터만, 조지 코즈멧스키, 하워드 슐츠, 이나모리 가즈오가 작은 도시의 성공을 이끌어낸 지도자다. 민간 지도자답게 이들은 기업가 정신으로 자신의 기업을 '작은 도시 큰 기업'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 도시가 큰 기업을 배출하는 성공한 도시가 되려면, ‘기업가 정신 Entrepreneurship으로 매력적인 도시 라이프스타일 Lifestyle을 구축하고, 개방적 Openness이며 세계화 Globalization에 적극적인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작은 도시 큰 기업>은 이 4가지 조건을 ‘E-LOG’로 표현한다.




라이프스타일 도시 (2016)


<라이프스타일 도시>는 당초 <작은 도시 큰 기업>의 한국편으로 기획했다. 하지만 집필 과정에서 영역이 확대됐다. 고유의 특색과 장점을 활용해 새로운 지역 산업을 개척해야 하는 지방 도시의 고민에 동참하면서, 정체성에 기반한 차별적인 사업 모델의 발굴이 지방 도시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는 한국의 모든 도시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였다. 나에게 라이프스타일 도시는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로 인재와 기업을 유치하고 새로운 지역 산업을 창출하는 도시다.


한국 경제에서 개성과 차별성이 중요해진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한국 대기업들이 기술력과 조직력만으로는 중국과 경쟁국의 추격을 따돌리는데 한계를 느낀다는 점이다. 경쟁국 기업이 쉽게 모방하기 어려운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축적된 문화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둘째, 전 세계, 특히 선진국 소비자의 취향이 물질적 가치에서 탈물질적 가치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감성, 문화, 개성,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던 소비자에게 품질과 가격 경쟁력은 선호하는 브랜드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탈물질주의 경쟁력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분야는 애플과 한국 기업이 경쟁하는 스마트폰 산업이다. 애플은 아이팟, 아이폰 등 전자제품으로 새로운 문화를 개척하고, 단순한 전자기기를 넘어 그 문화를 판매하는 탈물질주의의 대표 주자다. 애플은 이단 정신, 즉 혁신적인 기술로 개인을 권력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문화적 정체성을 그들의 제품에 매력적인 가치로 담아냈다. 소비자는 애플 상품을 통해 혁신과 변화의 가치를 소비하게 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기업은 애플과 달리 뚜렷한 문화 정체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가 아이폰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면, 한국 스마트폰으로 추구할 수 있는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과거에도 한국 산업은 탈물질주의 문턱에서 무너졌다.  신발 산업 SKT 싸이월드가 적시에 문화산업과 문화브랜드로 전환했다면, 나이키와 페이스북이 세계 시장을 쉽게 장악하 못했을 것이다.   


한국 도시의 포스트모던 경쟁력은 <작은 도시 큰 기업>에서 소개된 글로벌 대기업을 키운 작은 도시의 경쟁력과 다르지 않다. E-LOG기반의 '작은 도시 패러다임'은 작은 도시에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성장세가 둔화된 중심도시 서울도 '작은 도시 패러다임'으로 기존 산업을 혁신하고 새로운 산업을 창조해야 한다. 


'작은 도시 패러다임'에서 가장 중요한 성공 조건은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이다. 이제 한국의 도시도 라이프스타일로 경쟁할 때가 됐다. 다른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을 추종하는 기존 방식을 고수해서는 결코 성공한 도시를 만들 수 없다.


한국 역시 이미 사람들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살고 싶은 도시를 결정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하지 못하는 도시는 지역 발전에 필요한 자본과 인재를 유치할 수 없는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제주, 부산, 강릉 등 최근 '살고 싶은 도시'로 부상한 국내 도시는 글로벌 강소 도시와 마찬가지로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로 관광객과 이주민을 유치하고 있다.   


한국 도시의 문화 정체성이 산업화 과정에서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5천 년 역사를 거쳐 형성된 지역 문화, 자연환경이 만들어낸 특색과 장점, 산업화 과정에서 생성된 산업 기반과 문화 등 정체성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자원은 아직도 풍부하다. 대부분의 도시에서 정체성 확립을 위해 시급한 과제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발굴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구체화하고 생활화하는 일이다.


우리가 라이프스타일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저성장 시대의 성장 전략으로 지역 산업의 소재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시애틀은 커피 문화를 기반으로 커피산업을, 포틀랜드는 아웃도어 문화를 활용하여 스포츠 의류 산업을 육성했다. 제주 화장품과 녹차산업, 강릉 커피산업, 부산 해양스포츠 산업 등 한국에서도 라이프스타일에 기반한 지역 산업이 늘어나고 있다.


도시 라이프스타일에서 차별성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모든 도시는 특수성과 더불어 환경, 생활, 문화 인프라 등 세계화 추세에 걸맞은 보편적 인프라, 즉 도시 어메니티(amenity)를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골목길 상권은 탈물질주의 경제가 중시하는 개성, 스타일, 다양성의 상징이자 동시에 세계의 젊은 층이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도시 어메니티의 하나다.


창조인재와 창조산업의 유치를 위해 도시가 해야 할 일은 신도시 건설, 대기업 생산시설 유치 등 지금까지 해온 도시 발전 방식을 벗어나 원도심 재생, 골목길 문화 활성화, 예술과 문화 교육 기관 유치 등 개성을 보이면서 동시에 보편적 편리를 증진하는 도시 어메너티를 확대하는 것이다. 산업과 마찬가지로 도시도 하드웨어 경쟁력보다는 소프트파워 경쟁력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일본 츠타야 서점 창업자 마스다 무네아키가 강조했듯이 새로운 브랜드 창조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디자인 능력이다. 지역 기업과 정부는 개인/기업/도시의 정체성, 일/공간/생활의 연계, 기업/도시의 상호작용 등 지역과 문화의 관계에서 고객의 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디자인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런 능력을 가진 창업자와 정책가에 의해 지역성이 지역 라이프스타일로, 지역 라이프스타일이 지역 산업으로 창조되고 재창조되는 것이다. 




골목길 자본론 (2017)


<라이프스타일 도시>로 가는 길을 고민하면서 지름길이 있음을 발견했다. 골목길이었다. 라이프스타일 도시에서 골목상권은 라이프스타일 전시장 기능을 한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콘셉트 스토어 같이.

서울에서도 골목상권 획일적인 도시 문화에서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홍대, 가로수길, 삼청동, 성수동, 이태원을 필두로 골목상권이 고유의 지역 문화를 제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중심지가 됐다.  이제 우리나라도 거리와 동네를 중심으로 도시가 재생되고, 그 속에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고 발전한다.


우리가 골목문화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화가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미국의 도시 비평가 제인 제이콥스는 주거와 상업 활동 등 다양한 용도가 복합된 거리, 짧고 촘촘한 거리 블록, 낡고 오래된 건물과 신축 건물들의 조화, 다양한 계층과 부류의 사람의 집적을 골목문화의 동력으로 꼽았다.


그 후 건축학은 공간 디자인을, 문화사회학은 예술가와 문화예술시설을, 부동산학은 접근성, 배후 인구, 임대료를 활력 있는 골목상권의 조건으로 강조해왔다. 하지만 공간 디자인, 접근성, 문화 인프라, 임대료 등 물리적 조건을 갖춘 거리가 모두 골목문화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개성 있고 창의적인 소상공인이 모인 거리만이 매력적인 골목문화를 생산한다.


그런데 정작 도시 연구는 골목길 문화를 생산하는 소상공인, 골목문화 생태계를 구축하는 기업과 지역활동가에 대해 소홀하다. 내가 경제학의 힘을 빌어 교육과 훈련, 취업, 창업에 이르는 골목길 창업자의 골목길 진입 과정을 설명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골목가게를 운영하는 소상공인의 시장 경쟁력과 골목지역의 공동체 문화를 강화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反젠트리피게이션 정책이기도 하다. 임대료 상승 을 극복하고 골목상권의 강자로 떠오른 장인 가게는 장소와 관계없이 품질과 서비스로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가게다.


골목상권은 골목 산업에 종사하는 사업자들이 클러스터를 형성한 하나의 지역산업이다. 골목 상인 개개인은 독립적인 사업을 운영하지만, 동시에 지역 브랜드를 공유하고 다른 지역과 경쟁하는 지역산업 공동체의 일원이다. 골목상권의 평판과 정체성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골목 경쟁의 시대에는 골목상권 전체의 경쟁력이 개인 가게 경쟁력만큼 골목 가게의 성공에 중요하다.


풍요로운 골목이 가득한 도시는 옛 정취를 느끼며 향수에 젖는 치유와 힐링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다양한 도시 문화를 제공해 창조인재와 그들이 도전하는 창조산업을 유치할 수 있는 미래 도시 모델이다. 개성 있는 문화예술인과 소상공인이 창조하는 골목문화는 대규모 관광객을 유치하는 문화관광 산업이기도 하다.  


세계화도 골목상권 산업화에 일조한다.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인재와 여행자가 늘어남에 따라 골목상권이 세계와 경쟁하는 문화산업이 된 것이다. 한국 도시가 미래 인재와 여행자를 놓고 도쿄, 싱가포르, 홍콩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골목 산업을 보다 개성과 품격 있는 문화산업으로 고도화해야 한다. 


경쟁력 있는 골목상권의 역사를 보면 모두 공통적인 천이 과정을 거친 것을 알 수 있다. 뛰어난 창업자가 접근성이 좋고 문화자원이 풍부하지만 임대료가 싼 지역을 선점하면서 상권이 형성된다. 경영 능력과 역량, 의지를 갖춘 창업자가 개성 있는 가게를 열면서, 주변에 '첫 가게'의 성공을 모방하려는 다른 가게들이 점차 늘어난다.


골목문화가 드러나는 공통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창업자들이 공동체 경쟁력을 유지하면 젠트리피케이션 없는 성공적인 상권을 구축할 수 있다. 공동체 문화가 강한 상권에서는 구성원들이 자체 노력으로 급격한 임대료 상승을 방지하고 문화와 청년 시설 등 상권 공공재에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골목상권 성장 과정에 기초한 골목상권 경쟁력은 C-READI로 요약할 수 있다. 성공한 골목상권은 공통적으로 문화 인프라(Culture), 임대료(Rent),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접근성(Access), 공간 디자인(Design), 정체성(Identity) 등 6가지 조건을 만족한 상권이다.


6 단어의 영어 이니셜을 조합해 만든 문구가 '문화가 준비돼야 성공한다'로 해석할 수 있는 C-READI(Y)다.


골목길의 C-READI모델은 도시의 E-LOG모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골목상권의 특수 상황인 임대료 요인을 제외하곤 모두 C-READI 조건은 E-LOG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골목길과 도시 모두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성공한다. 골목길의 문화 인프라, 정체성, 공간 디자인은 도시의 라이프스타일 조건에 상응하고, 골목길의 접근성은 도시의 개방성과 세계화와 일맥상통한다. 골목길을 하나의 작은 도시로 이해한다면, 골목길과 도시의 성공 조건이 유사한 것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C-READI 모델은 골목길 기획자뿐만 아니라 골목길 소상공인이 자신이 속한 상권의 경쟁력을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수단이다. 소상공인의 자체 상권 분석 능력은 개인 사업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상권 전체 이익에 대한 이해를 높여 상생과 공동체 문화의 제고에 기여할 것이다.


C-READI 모델은 단순하지만 새로운 접근방식이다. 기존 연구가 문화자원, 임대료, 거리 디자인, 접근성을 강조한다면, C-READI 모델은 혁신적인 도시 문화를 창조하는 장인정신과 기업가 정신, 고유의 골목문화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정체성과 공동체 정신 등 지역 사회 내부의 혁신 의지와 역량을 성공 요인으로 제시한다.


정부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정책으로 C-READI 모델의 전 영역에서 기여할 수 있다. 골목길의 문화 자산을 확충하고, 임대료를 유지하며, 골목 산업 창업을 지원하고 필요 인력을 훈련·육성하고, 골목길 연결성과 대중교통 접근성을 개선하며, 문화와 창업지원 시설 등 골목길 정체성과 공동체 문화를 강화하기 위한 공공재에 투자하는 것이다.  


정부 개입의 성공 가능성은 영역별로 다르다. 저층 건물과 걷기에 편한 거리 조성, 주거지와 상업 시설의 공존 등 복합적 공간 디자인과 편리한 대중교통 구축을 통한 접근성 개선은 상대적으로 쉽게 개선할 수 있는 조건이다.


그러나 골목상권이 표출하는 지역 정체성, 창의적인 기업가의 진입에 필요한 적정 임대료의 유지, 개성 있는 가게를 창업해 골목문화를 선도하고자 하는 기업가정신은 정부 힘만으로 달성하기 어렵다. 주민, 상인, 예술가, 청년 창업가, 활동가와 시민단체 등 골목길 주체들이 자율적으로 축적해야 하는 사회적 자산이다.


공정한 조정자와 공공재 투자자로서 역할을 다하는 정부, 원천 경쟁력을 갖춘 장인 가게와 건물주, 정체성과 공동체 정신으로 골목상권의 장기 이익을 추구하는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장인 공동체'가 지속 가능한 골목상권 모델이다.  




이제 라이프스타일 강국으로


다양한 포스트모던 트렌드와 이에 대응하는 도시, 골목길, 기업을 논의하면서 반복되는 키워드는 라이프스타일이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화가 개인, 기업, 그리고 도시가 개성, 다양성, 삶의 질을 중시하는 탈물질주의 경제를 공략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라이프스타일이 중요한 이유는 탈물질주의 경제의 주인공이 개인이고, 본질이 개인주의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기표현과 자아실현, 즉 라이프스타일 욕구가 탈물질주의 경제를 확산시키는 동력이다. 본인 스스로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자아실현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탈물질주의 경제에 진입하는 한국 경제의 숙제는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 개인, 기업, 도시, 국가 모두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실현하고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자문하는 과정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확립하는 일이다.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답이 하나일 필요는 없다. 라이프스타일 기업과 도시가 만들어가는 탈물질주의 경제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공존하는 사회를 지향한다. 내가 발간한 일련의 작업에 담긴 기업, 골목길, 도시 이야기가 우리나라가 라이프스타일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과 방향을 제시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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