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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Dec 13. 2017

골목길 경제학은 무엇을 질문해야 하나


골목상권은 2000년중반 홍대, 삼청동, 가로수길, 이태원 등 1세대 골목상권이 뜨면서 주목을 받았다. 골목경제와 골목문화 발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골몰상권 정책은 일반 시민들에게도 중요한 정책 이슈로 떠올랐고, 그 후 꾸준히 성장해 젠트리피케이션이 주요 사회적 논쟁거리가 될 만큼 일상의 일부가 됐다.


경주 포석로의 한 카페

그러나 골목상권 정책의 수립을 위해 필요한 골목길 경제학은 아직 학문적으로 정리된 분야가 아니다. 골목길 논쟁에서 경제학의 참여가 시급한 이유는 건축학, 도시계획학, 도시사회학 같은 연구 분야가 소비자 수요, 골목 상인 공급, 임대료, 상권간 경쟁 등 골목상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경제적 현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골목길 경제학으로 보완해야 하는 주제는 도시문화를 창출하는 골목상권의 주요 자산인 독립 상인과 건물 투자자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다. 기존 연구에서는 적절한 물리적 환경이 제공되면 골목문화를 창출하는 생산자가 자동적으로 공급되는 상수로 인식한다. 하지만 골목길 경제학은 골목상권을 이해당사자들의 경제적 선택으로 형성된 하나의 시장으로 설정한다. 그래야 규모, 수준, 다양성, 역학등 상권의 사회적 특성을 경제학 이론과 개념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분야로 발전할 수 있다.


빈티지 느낌의 광주 송정역시장 거리


골목길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골목상권의 활력과 경쟁력이다. 수요, 공급 등 경제 변수와 정부 정책에 따라 골목상권의 규모, 수준, 다양성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다른 경제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골목길 경제학도 정부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시장 수요와 사회적 요구에 비해 골목상권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다는 인식 하에, 골목상권의 공급 확대와 활성화를 위한 올바른 정책 마련이 골목길 경제학의 가장 큰 관심사다.


골목경제는 한마디로 “골목으로 상징되는 지역 단위의 공간에서이루어지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교환, 분배 및 소비와관련된 모든 인간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용어는 아직 학문적 용어가 아니며 지역경제를 지칭할때 언론 등에서 사용하는 조어다. 골목상권은 골목경제의 상업 영역을 지칭하며, 특정 지역 상권이나 모든 골목상권을 의미할 수 있다.


광주 양림동 펭귄마을과 부산 영도 흰여울마을


골목상권을 특정 지역의 상권으로 상정한다면, 그 골목상권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물리적, 경제적 환경이 골목길 정책 방향의 핵심이다. 전국에 분포된 모든 골목상권을 하나의 시장으로 정의한다면, 도소매, 요식업, 공예공방, 서점, 화랑등 주로 골목길에서 영업하는 업종과 산업을 골목산업으로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거시적인 의미의 골목상권정책은 지역적 범위와 관계없이 전체 골목산업에 투입될 소상공인, 자영업자,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정책이다.


하나의 상권 유형으로서의 골목상권은 다른 상권과 공간적 측면에서 구분된다. 보통 연남동, 삼청동, 가로수길 등과 같이 주거지 인근에 형성된 근린상권이나 기존 상권의 배후상권이 새롭게 활성화된 지역을 골목상권으로분류한다.


골목상권과 대비되는 상권은 대중심상권, 대로변상권, 몰링상권이다. 대형중심상권은 명동, 강남역, 부산 서면, 대구 동성로 등 도심 중심지에 있는 상권이다. 몰링상권은 삼성동, 영등포역, 동대문시장 등 대형 쇼핑몰 중심으로 형성된 상권이다. 대로변상권은 전형적인 다운타운 상권은 아니지만 주요 권역 내 거점으로 기능하는 상권이다.


골목길 경제학의 일차적인 관심사는 골목상권의 경쟁력이다. 서울의 골목상권도 다른 상권과 경쟁하면서 부침을 거듭한다.


맛집 가이드 블루리본은 서울의 지역별 상권을 골목 지역 상권과 비골목 지역 상권(중심상권, 대로변상권)으로 구분한다. 2012년과2017년 사이에 새롭게 골목상권으로 진입한 상권은 성수동과 부암동 두 곳이다. 같은 기간에 맛집 수가 크게 늘어난 상권은 도산공원, 서래마을, 서촌, 연남동, 이태원, 한남동, 홍대앞이며, 줄어든 곳은 압구정동과 삼청동이다.


수제 맥주집이 들어선 이태원 골목길


아래의 표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우선 부암동과 성수동의 부상이다. 언론은 익선동, 열정도, 봉천동 등 다수의 골목길을 성공 사례로 보도하지만, 블루리본의 분류에 따르면 독립상권으로 신규 진입한 곳은 부암동과 성수동뿐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두 상권만이 골목상권의 성공 기준에 부합했다.


또한 기존 골목상권의 부진도 눈여겨볼 만하다. 대부분 골목상권에서 맛집 수가 늘어났지만, 압구정동과 삼청동의 맛집수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 예상되는 원인은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최근 언론도 압구정동과 삼청동을 젠트리피케이션 피해 지역으로 주목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상권 성패를 설명할 수는 없다. 젠트리피케이션 피해 지역으로 알려진 홍대앞과 서촌의 맛집 수는 오히려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상권 분석 방법론은 상권의 경쟁력을 위치, 접근성, 소비인구, 주변 근린 시설 등 네 가지 조건으로 평가한다. 일반적으로는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은 평지에 위치하고, 주변에 대규모 소비 인구가 거주하며 유동인구를 유발하는 근린 시설이 많은 곳을 바람직한 상권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상권 경쟁력을 외부 환경으로만 평가해서는 골목상권의 성쇠를 설명하기 어렵다. 골목상권이 매력적인 도시문화를 창출하는 경쟁력을 가지려면, 외부환경과 더불어 상인 경쟁력, 문화 정체성, 임대료 수준 등 내부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골목상권의 수익성과 매력도를 상권의 구조적 특성으로 분석하기에적합한 이론이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의 ‘다섯 가지의 힘’이다. 그는 특정 산업의 경쟁력은 신규 진입자의 위협, 공급자의 협상력, 구매자의 협상력, 대체재의 위협,산업 내 경쟁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을 골목상권에 적용하면,


1.  경쟁 상권이 주변에 진입하기 어렵고 (신규 진입자의 위협이 낮음)


2. 높은품질의 골목 상품을 생산하며(공급자의 협상력이 높음)


3. 인력, 재료 등 투입 요소를 원활하게 조달하고(구매자의 협상력이 높음)


4. 골목소비를 대체하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출현할 가능성이 낮으며(대체재의 위협이 낮음)


5. 골목상권 내부 구조가 경쟁적인 (경쟁구조가 우호적임) 상권이 성장 가능성이 높다.


포터의 산업구조 분석은 골목상권의 경쟁 환경을 분석할수 있는 유용한 수단을 제공하지만, 창의적인 상인이 골목문화 창출 과정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골목길 경제학에서는 기존 분석틀이 제공하는 다양한 방법론을 종합해 골목상권의 실제 진화과정에 기초한 정출적 분석 방법을 채택한다.


골목길 경제학의 분석 대상은 단위 골목상권의 경쟁력에 한정되지 않는다. 지역적 공간을 초월한 골목상권을 골목산업으로 정의하면, 골목상권의 활력은 이 산업에 참여하는 수요자, 공급자, 중개자의 경제활동에 의해 결정된다. 정부는 특정 상권에 직접 개입하는대신 골목산업에 대한 수요, 공급, 중개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골목상권을 활성화할 수 있다. 우리가 특정 골목상권보다 전체 골목상권에 영향을 미치는 골목산업의 육성에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현재 공급되는 골목산업의 상품이 소비자 수요나 사회적 필요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골목산업 수요자, 공급자, 기획자가 공존하는 해외도시의 골목길 (좌-기치조지, 우-파리, 아래-뉴욕 웨스트빌리지)


골목 산업 수요자 ㅣ  골목을 찾는 수요자와 골목 가게를 찾는 소비자는 골목상권에 대한 수요를 결정하는 경제 행위자다.  2000년 중반 이후 쇼핑 문화의 가장 큰 변화는 골목 쇼핑과 온라인 쇼핑의 부상이다. 전자는 개성, 다양성, 체험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가치 변화, 후자는 IT 기술을 발판으로 성장하고 있다.


골목상권에 대한 수요는 젊은 층에 집중돼 있다. 기성세대는 아직도 전통시장, 백화점, 대형마트 등 교통이 편리하고 가성비가 좋은 상품을 판매하는 유통채널을 선호한다. 젊은 소비자들은 골목상권에서 상품이 주는 물질적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적, 윤리적가치를 소비한다.


골목산업의 미래와 관련된 중요한 쟁점은 골목길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규모와 성장 속도다. 더불어 골목상권을 찾는 소비자의 구성도 영향을 미친다. 거주민 대비 관광객의 비중이 높은 상권이 골목상권의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할 가능성이 높다.


골목 산업 공급자 ㅣ 골목문화의 생산자는 골목상권에서 영업하는 상점이다. 대기업이나 프랜차이즈보다는 독립 상점이 소비자가 원하는 개성 있는 상품을 제공하는 생산자일 것이다. 도시사회학에서도 독립 상인이 한 지역에서 창출하는 도시문화를 ‘씬(Scene)’으로지칭해 문화생산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골목길에서 활동하는 상인만이 골목문화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예술인은 물론 건물주도 개성 있는 건물과 문화적 가치가 높은 시설을 유치해 골목문화 발전에 기여한다. 문화예술 시설, 청년창업지원센터를 설립해 예술가와 청년창업자를 유치하는 정부도 중요한 골목문화 생산자다.


골목 산업 중개자와 기획자 ㅣ 도시문화를 생산하는 문화산업을 골목산업으로 규정한다면, 골목문화 생산자, 즉 예술가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중개 비즈니스가 활발해야 한다. 미술, 음악, 출판 등 문화산업에서는 공통적으로 예술가를 발탁해 상업적으로 성공시키는 중개자, 기획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술에서는 갤러리, 대중음악에서는 기획사, 출판에서는 출판사가 중개 비즈니스의 일종이다.


자유로운 예술가들이 꾸민 브루클린의 벽화


골목산업도 골목 스타를 키우는 기획사의 역할이 확대되어야 문화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 현재 주식회사 장진우 등 골목상권에서 성공한 기업가들이 골목 상인을 지원하는기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산업 차원에서 기획사의 기능이 활성화되진 않았다.


임대차 시장도 골목 상인과 건물주를 연결하는 골목상권의 중요한 중개 산업이다. 절대다수의 골목 상인이 상업 공간을 임차하기 때문에 임대차 시장의 건강성이 골목산업 활력의 주요 변수다. 또한 골목길 기획자는 단기 수익을 목적으로 골목길 가게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투자자이기도 하다. 그동안 대부분의 골목길 기획자는 비공식적으로 활동해 왔지만, 골목길 기획업이 머지않은 장래에 공식화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일례로 국내 최대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은 최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상가에 유망한 셰프를 영입해 자산 가치를 높이는 사업에 진출했다. 또 일부 골목길 기획자는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고 가게 창업을 통해 권리금을 높이는 수익 모델을 선택하기도 한다.


1960년대 골목길 풍경을 간직해 도보 여행자들의 발길을 끄는 대전 관사촌과 전주 한옥마을


결국 정부의 골목상권 정책은 누구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경제학 관점에서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지만, 시장실패가 심각한 경우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미 문화 인프라 조성과 임대료 지원, 골목 창업 지원, 대중교통 개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지원활동을 한다. 하지만 정부가 더욱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골목상권 시장실패의 요인이 공동체 문화의 부재에 있다는 사실이다.


골목길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골목길가게들은 다른 상권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골목 내부 협력을 강화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동업자로 인식하지 못한다. 정부가 청년과 예술가 지원 시설, 고유문화 시설 등 문화와 청년분야의 공공재 투자를 통해 공동체 문화 강화에 힘써야 하는 이유다.


특히 한국에서는 골목 장인의 공급 부족이 가장 큰 시장실패로 나타난다. 시장 수요에 비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골목 상인이 턱없이 부족하다. 기존 상인의 역량을 지원하는 동시에 체계적인 교육, 직업훈련, 창업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 실력 있는 신규 상인의 골목산업 진입을 유도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골목길경제학은 공급, 수요, 거래 비용, 시장실패 등 경제학 개념으로 골목상권의 성장과 성공을 분석하고 정부 정책을 개발하는 분야다. 앞으로 골목길 경제학은 국내외 사례와 자료를 토대로 골목상권 역학에 대한 이론과 가설을 설정하고 검증하며, 골목산업육성 방안을 구체화함으로써 새로운 학문 분야로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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