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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Jan 10. 2018

뉴욕 골목상권의 미래

서울의 골목상권이 성장하면, 종국에는 어떤 모습일까? 모든 상권은 현재 가장 진화한 골목상권과 유사해질 것이다. 최고의 골목상권은 세계의 수도라는 뉴욕에 있다. 뉴욕에서 최고이면 세계에서 최고일 테니까.


뉴욕에서 제일 비싼 골목상권은 웨스트 빌리지다. 중심 거리의 작은 가게 임대료는 월 4~5만 달러에 달한다. 문화적으로도 최고의 골목상권으로 불리는 데 손색이 없다. 뉴욕 미술산업의 중심지인 미트패킹과 첼시, 예술가와 작가의 거주지인 그리니치 빌리지와 실질적으로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는 이곳은 뉴요커 문화의 중심지다.


웨스트 빌리지의 현재 모습은 결코 이상적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중심 거리인 블리커 스트리트, 허드슨스 트리트 등 중심 상가 거리는 임대 문의 사인이 붙은 빈 가게가 즐비하다. 상인들이 급격한 임대료 인상을 감당하지 못해 떠나버린 가게들이다.


임대 사인이 붙은 블리커 스트리트의 상점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블리커 스트리트의 공실률이 심각하며 크리스토퍼 스트리트에서 뱅크 스트리트에 이르는 5개 블록에 15개 가까운 가게가 비어 있다고 한다. 웨스트 빌리지가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의 마지막 단계인 ‘고임대료 화석화(High-Rent Blight)’ 현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이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후반이었다. 인기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배경으로 등장한 후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하고, 기존 동네 상점들이 밀려난 자리에는 고급 디자이너 가게들이 들어왔다. 임대료도 덩달아 올랐다. 1990년대 1 제곱 피트(feet)에 월 75달러였던 상가 임대료가 2000년 후반 월 300달러로 상승했다. 월 7,000달러의 임대료를 지불하던 상점들이 이제는 월 5만 달러 수준의 임대료를 내야 한다.



골목 친화적 문화 중심지, 웨스트 빌리지


과연 웨스트 빌리지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할 수 있는 이유는 많다. 우선 웨스트 빌리지는 골목길 경관이 뛰어나고 문화 중심지로서 위치가 견고하다. 골목상권의 성공 조건 중 하나인 골목 친화적 공간 디자인은 유지될 것이 확실하다. 전체 건물의 80퍼센트가 문화재로 지정돼, 저층 건축과 짧은 블록 구조를 바꾸기는 어렵다. 


문화시설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뉴욕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른 하이라인파크가 웨스트 빌리지에서 시작되고, 입구 중심으로 형성된 첼시와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의 갤러리 산업이 계속 확장되고 있다. 휘트니 미술관이 2015년 하이라인파크 입구로 이전한 후 웨스트 빌리지의 미술 중심지 위치는 더욱 견고해졌다. 


그러나 위협 요인도 만만치 않다. 골목상권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관건이다. 독립 가게 중심의 웨스트 빌리지 라이프스타일이 좋아 높은 주택 가격을 지불한 주민들에 의해 유지되겠지만, 임대료가 지나치게 오르면 가게들이 그곳을 떠나지 않고 영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온라인 쇼핑도 독립 가게를 위협한다. 온라인 쇼핑의 부상으로 백화점과 쇼핑몰은 급속히 사양화되고 있다. 최고급 브랜드 기업들도 핵심 상가인 5번가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철수하고 있다. 


뉴욕 휘트니 미술관(좌)와  쇼핑거리 5번가(우)


오프라인 상권이 온라인 쇼핑과 경쟁하는 상황에서 웨스트 빌리지도 변신해야 한다. 1960년대 도시 운동가 제인 제이콥스가 복제화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과 같이, 미래 위협을 극복하고 생존할 수 있는 저력을 보여줘야 한다. 웨스트 빌리지의 독립 가게가 선택해야 할 전략은 하이 터치다.


개성이 뚜렷하고 문화적 가치가 높은 상품과 서비스로 하이테크(High Tech) 온라인 쇼핑몰과 대형 유통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기계가 인력을 대체하는 상황에서 독립 가게는 기계가 제공할 수 없는 소비자의 감성적 니즈를 충족하는 하이 터치 서비스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최정규 전 맥킨지 파트너는 오프라인 유통 기업에 “물리적 공간에서만 가능한 경험과 하나의 상품이 아닌 해결책을 제공해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하이 터치 전략에도 이커머스가 포함돼야 한다. 최 파트너는 “한정판 또는 고가 제품은 자체 이커머스를 통해서만 판매하고 범용 제품은 쇼핑몰이나 오픈 커머스(Open Commerce)를 통해 판매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안한다. 독립 가게도 경쟁하기 위해서는 온오프라인 옴니 채널(Omni-Channel)을 구현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뉴욕에서도 아날로그 문화에 기반한 상품과 비즈니스가 회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독립서점이다. 골목상권은 독립서점과 마찬가지로 맞춤형 서비스, 지역 기반 비즈니스로 온라인 쇼핑과 경쟁해야 한다. 


패션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가 운영하는 블리커 스트리트의 서점, 북마크


장기적으로 골목상권의 미래에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문화 정체성의 유지다. 웨스트 빌리지도 다른 지역이 모방할 수 없는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면, 상당 기간 문화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지킬 것이다.



다양한 가치와 문화가 공존하는 뉴욕


현재 뉴욕 도시문화는 세 가지 조류로 나뉜다. 어퍼 이스트사이드가 대표하는 부르주아지, 윌리엄스버그가 상징하는 보헤미안, 웨스트 빌리지의 보보스 문화다.


부르주아지가 물질주의 문화라면, 보헤미안과 보보스는 탈물질주의 문화다. 물질주의는 근면, 성실, 규율, 조직력을 강조하는 산업사회 가치를 추구하는 반면, 탈물질주의는 삶의 질, 개성, 다양성을 강조한다. 어퍼 이스트사이드의 부르주아지는 한마디로 산업사회의 귀족이다. 산업활동으로 부를 축적한 자본가들을 부르주아지로 통칭했다. 노력을 통해 성공한 부르주아 계층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타 계층에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며, 부의 세습을 통해 귀족사회를 구축하기를 열망한다. 


물질주의 문화를 대표하는 어퍼 이스트사이드(좌)와 힙스터의 중심지 윌리엄스버그(우)


보헤미안 문화는 산업사회에서 기성 부르주아지 문화에 대항한 문화다. “속세의 관습이나 규율 따위를 무시하고 방랑하면서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시인이나 예술가”를 보헤미안이라고 칭한다. 보헤미안 전통에 기반한 현대 도시문화로 힙스터 문화를 들 수 있겠다.


윌리엄스버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힙스터 도시다. 힙스터는 199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새로운 대항문화를 추구한다. 힙스터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주로 패션을 통해 드러나는 히피는 복장, 머리 모양 등 외모로 확실히 구별된다. 그런데 힙스터는 외적인 특징이 확실하지 않다. 힙스터 관련 문헌에서 찾은 정보에 의하면, 힙스터는 20~30대 나이에 빈티지나 재활용 옷을 즐겨 입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많은 힙스터가 픽시(Fixie)라고 불리는 싱글 기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평범한 자전거와 달리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자전거다. 소비 성향도 남다르다. 인디 음악, 카페, 허름한 바, 채식, 아날로그 레코드 등이 그들이 좋아하는 문화 상품이다. 2000년대 후반에는 힙스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늘어나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대안도, 지식도, 문제의식도 없으면서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부류라고 비난한다. 


문화사적으로 보면 힙스터는 1960년대에 활발했던 히피문화의 후손이다. 1960~1970년대 미국 이단아들은 대항문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마약, 반전운동, 섹스 등은 이단 정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미국의 히피 세대는 달랐다.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등 정치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반전뿐만 아니라 자유, 인간, 평등을 강조한 대안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했다.


제3의 도시문화 보보스의 중심지는 웨스트 빌리지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가 지적한 대로 미국 진보 진영의 신주류는 1990년대에 미국의 강남좌파 격인 보보스로 교체됐다. 보보스는 보헤미안과 부르주아의 합성어로, 진보 가치를 추구하는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를 뜻한다. 빌 클린턴(Bill Clinton) 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전 국무장관, 앨 고어(Al Gore) 전 부통령 등이 보보스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정체성 있는 골목이 도시 문화를 주도한다


탈물질주의, 취향과 개성의 다양화 추세를 고려할 때, 어퍼 이스트사이드, 윌리엄스버그, 웨스트 빌리지는 상호 보완적이면서도 독립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보헤미안, 대항문화 전통이 강한 뉴욕에서 웨스트 빌리지와 윌리엄스버그가 없는 미래는 상상할 수 없다. 중장기적으로 윌리엄스버그가 웨스트 빌리지화 될 수는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터전을 떠나는 힙스터들은 새로운 성지를 찾아 나갈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긍정적으로 작용해 뚜렷한 개성과 매력적인 상점들로 채워져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하이 터치 전략이 작용한다면, ‘인터넷 만능 쇼핑’ 태세를 극복한 상권이 될 것이다. 


뉴욕의 미래는 머지않은 한국의 미래이기도 하다. 서울에서도 문화 정체성이 뚜렷한 골목상권이 도시문화를 주도할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 골목상권의 숙제는 자명하다. 정체성을 강화하는 공공재 투자가 시급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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