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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Dec 20. 2017

골목상권이 떴으면 누군가는 졌을 텐데

골목상권은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됐다. 굳이 도심에 나가지 않아도 집 근처 골목에서 친구를 만나 먹고 즐길 수 있다.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 어느 곳에 살아도 걸어갈 수 있는 골목상권 하나는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저성장 시대에 골목상권의 매출이 증가했다면, 매출이 감소한 상권도 있지 않을까?


2015년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보고서(「KB 지식비타민」, 이하 KB보고서)에서는 골목상권이 아닌 상권을 대형 중심상권과 몰링 상권으로 분류했다. 대형 중심상권은 명동, 강남역, 부산 서면, 대구 동성로 등 도심 중심지에 있는 상권이다. 몰링 상권은 삼성동, 영등포역, 동대문시장 등 대형 쇼핑몰 중심으로 형성된 상권이다. 골목상권은 연남동, 삼청동, 가로수길 등 주거지 인근에 형성된 근린상권이나 기존 상권의 배후상권이 새롭게 활성화된 지역이다.


KB보고서가 모호하게 분류한 상권이 대로변 상권이다. 전형적인 다운타운 상권은 아니지만 주요 권역 내의 거점 상권으로 기능하는 상권이다. 대로변 상권을 독립적인 상권 형태로 추가하면, 골목상권이 아닌 상권은 중심상권, 대로변 상권, 몰링 상권 3개가 된다.


이들 상권은 골목상권과 비교해 어떻게 성장하고 있을까? 2016년 12월 동아일보와 BC카드 빅데이터센터가 서울의 주요 25개 상권을 조사해 공개한 연평균 신용카드 이용금액 증감률을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BC카드가 주목한 상권 25개 지역 중 골목 상권은 10개 지역에 달한다.


성장률 평균은 골목상권이 15.3퍼센트로 가장 높다. 그리고 대로변 상권 8.9퍼센트, 중심상권이 8.7퍼센트, 몰링 상권 4.9퍼센트 순으로 나타났다. 골목상권 성장률이 다른 상권보다 약 두세 배 높았다. 골목상권이 아닌 나머지 3개 상권의 성장률은 모두 상권 전체 평균인 9.7퍼센트를 밑돌았다. 그중 가장 부진한 상권이 몰링 상권이다. 골목상권이 뜨면서 중심상권, 대로변 상권, 몰링 상권 등 나머지 상권의 성장이 모두 둔화됐고, 특히 몰링 상권의 성장이 현저하게 하락했다.



개별 상권 성장률 순위에서도 골목상권의 부상과 비 골목상권의 약화가 뚜렷하게 보인다. 순위 증감률 1위는 용산구청(녹사평)이고, 홍익대(서교동), 삼청동, 경리단길, 서울대입구역(샤로수길)이 그다음으로 성장률이 높았다. 반면 중심상권 명동(-3.9퍼센트)과 몰링 상권 동대문 역사문화공원(-4.0퍼센트)의 카드 이용금액은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잠실역과 코엑스의 성장세도 각각 0.7퍼센트, 8.9퍼센트로 서울 평균(9.7퍼센트)에 못 미쳤다.


이코노미스트와 삼성카드가 공동 기획한 「대한민국 100대 상권」 보고서도 비슷한 결론을 내린다. 대한민국 100대 상권의 평균 이용금액(2016년 1~2월 기준, 비교대상은 2013년 1~2월) 순위 중 중심상권 명동(충무로 2가)이 가장 성장률이 낮은 상권으로 기록됐다. 골목상권 중에서는 이태원 일대의 성장세가 단연 돋보였다. 이태원 상권에 속한 용산구청, 경리단길, 이태원역이 각각 상위권 수준인 32.6퍼센트, 17.4퍼센트, 12.9퍼센트 성장했다.


우리가 골목상권에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끊임없는 지리적 확장이다. SK텔레콤 지오비전은 상권 집중분석 서비스를 통해 연평균 신용카드 이용금액 증감률에서 상위권인 이태원 상권, 홍대 상권, 서촌(북촌) 상권, 문래 상권의 지리적 확장을 보여준다.


이태원 상권은 역 중심이 아닌 분산형 구조로 골목길 구석구석 상권이 급속히 확대되었다. 본래 이태원 상권은 이태원1동에서부터 한남2동까지 이르는 1.4킬로미터 구간을 지칭했으나, 녹사평역을 기준으로 안쪽 골목길 사이사이를 따라 점차 확장됐다. 이태원 상권은 이제 이태원역을 중심으로 북동쪽의 녹사평역, 장진우 골목, 경리단길, 남서쪽의 앤틱 거리, 우사단길, 꼼데가르송길을 아우르는 거대 상권이 되었다.


홍대역부터 이어지는 경의선 책거리(좌)와 연희동 골목길(우)


홍대 앞에서 시작한 홍대 상권은 1차적으로 상수동과 합정동으로 확장한 후 최근에는 망원동, 연남동, 연희동으로 팽창하고 있다. 경의선 숲길이 열리면서 연남동이 홍대 상권의 중심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삼청동과 가회동이 중심이 된 북촌 한옥마을도 계동, 원서동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경복궁을 사이에 두고 북촌과 광화문 골목상권을 양분하는 서촌도 북촌의 여파로 활성화된 상권이다. 골목상권의 성장세가 다른 상권을 압도한다면, 과연 규모도 다른 상권 수준으로 성장했을까?



서울 시내 주요 상권의 규모는?


상권별 매출액과 유동인구는 한국경제신문과 SK텔레콤 지오비전 서비스가 발간한 「2017 불황을 모르는 대박상권」 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중심상권 2개(건대입구, 명동), 대로변 상권 8개(노량진, 마곡 신방화역, 마포역, 양재역·양재 시민의 숲, 여의도 동부, 종로 피맛골, 천호동, 청담), 몰링 상권 2개(동대문, 삼성역), 골목상권 9개(문래동, 샤로수길, 서래마을, 서촌, 성수동, 연남동, 용산 열정도, 종로 익선동, 해방촌·경리단 뒷길) 등 총 21개 상권을 심층 분석했다.


음식, 서비스, 의료, 소매, 교육 5개 업종의 매출액을 합산한 1일 총매출액 순위에서 명동(중심상권)과 청담동(대로변 상권)은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다. 명동 매출액 4조 원과 청담동 매출액 1299억 원은 골목상권으로 가장 큰 규모인 성수동(380억 원)을 크게 앞선다.


1일 총매출액 2위와 3위는 청담(대로변 상권), 종로 피맛골(대로변 상권)이다. 업종별로는 1위 명동(중심상권)은 소매업 매출액(2조 23억 4600만 원)이 가장 높고, 2위 청담(대로변 상권)은 의료업 매출액(561억 6000만 원)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음식업 매출에 의존하는 골목상권은 구조적으로 중심상권과 대로변 상권의 매출액을 따라가기 어렵다.


1일 유동인구는 노량진(44만 명), 여의도 동부(32만 명), 종로 피맛골(26만 명)이 각각 1, 2, 3위를 차지했다. 골목상권 중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샤로수길은 14만 명에 그쳤다. (한국경제신문사와 SK텔레콤 지오비전 서비스는 전체 상권의 유동인구가 아닌 그들이 주목한 상권 반경(250~800미터) 내의 유동인구를 측정했기 때문에 실제 유동인구는 발표된 유동인구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골목상권의 유동인구가 아직 다른 상권에 미치지는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동인구 1인당 매출액을 비교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골목상권이 대로변 상권과 몰링 상권을 능가하는 상권으로 도약했다. 유동인구 1인당 총매출액 순위는 1위 명동, 2위 문래동, 3위 건대입구, 4위 청담, 5위 성수동, 6위 서래마을, 7위 천호동, 8위 종로 익선동으로, 골목상권이 상위권에 골고루 포진돼 있다.


2위를 차지한 문래동(골목상권)의 유동인구 1인당 총매출액은 272만 원으로 3위 건대입구(중심상권)의 229만 원보다 43만 원 앞서고, 4위 청담(대로변 상권)의 81만 원과는 191만 원의 차이를 보인다.


유동인구 1인당 음식업 매출액은 1위 명동, 2위 건대입구, 3위 문래동, 4위 서래마을, 5위 종로 익선동, 6위 해방촌·경리단 뒷길, 7위 서촌, 8위 천호동 순으로 골목상권이 상위권을 점유하고 있다. 네 개의 상권별 유동인구 1인당 매출액 평균을 비교하면, 골목상권이 중심상권에는 뒤지지만 대로변 상권, 몰링 상권보다는 우세한 것으로 나타난다.


유동인구 1인당 총매출액은 골목상권(40만 원)이 대로변 상권(28만 원)과 몰링 상권(23만 원)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유동인구 1인당 음식업 매출액도 골목상권(13만 원)이 대로변 상권(8만 원)과 몰링 상권(7만 원)을 웃돈다.



지금까지 분석한 다양한 통계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골목상권이 대로변 상권, 몰링 상권과 대등하게 경쟁하는 새로운 상권이라는 사실이다. 매출액이나 유동인구는 대로변 상권과 몰링 상권보다 낮지만, 유동인구 1인당 총매출액, 유동인구 1인당 음식업 매출액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골목상권의 확장 추세가 지속된다면 중심상권, 대로변 상권, 몰링 상권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백화점과 쇼핑몰이 쇠락하는 세계적인 추세를 고려할 때, 골목상권의 부상으로 가장 위협받는 상권은 몰링 상권이다.



골목상권의 미래


그렇다면 과연 골목상권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소소한 일상을 즐기고 취향을 소비하고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추세를 볼 때 골목상권은 상권성장을 주도할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자신 있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기존 자료로는 대략적인 골목상권의 규모와 성장세 파악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체 매출 규모와 유동인구뿐 아니라 업종, 점포 형태, 영업 기간, 점포 위치 등 다양한 기준으로 골목상권 매출과 성장 추이를 분석하려면 체계적인 표본 조사가 필요하다. 정부가 골목상권의 건전한 성장을 원한다면 우선 정확한 통계의 수집과 체계적인 연구의 지원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골목길 자본론> 모종린 작가 번개 (1월 8일 월요일)   

http://bookbybook.co.kr/22116699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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