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모두 글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다"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대단한 것 같다. 압축적 문장에 담긴 아름다움. 짧은 문장 안에 그렇게나 섬세한 마음을 담아내는 건 어떤 느낌일까? 학창 시절 배울 때는 그렇게 재미없고 지겨웠는데, 그때 배웠던 시들을 가끔 다시 읽고는 하는데, 그때마다 감탄을 한다. 그런 마음을 시로 담을 정도면 얼마나 많은 숙고의 시간이 있었을지.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읽으면,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쓴 이의 마음과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들이, 마음 안에서 요통을 치는 것 같이 울렁거려 두 손으로 가슴을 꾹 누르고는 한다.
요즘 '나는 반딧불'이란 노래를 가끔 듣는다. 찾아서 듣는다기 보다 여기저기서 들린다가 맞는 표현 같지만, 어쨌든 듣게 됐다.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따져가며 듣기보다 그냥 음률이 좋으면 듣는 편인데, 자주 듣다 보면 가사는 저절로 알게 된다. '나는 반딧불'이란 노래도 그랬다. 그리고 가사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그 가사를 들을 때마다 '꼭 반짝여야 할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꼭 반짝여야만 할까? 반짝이지 않으면 안 되나?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이 되는 것도 좋겠지만 어둠으로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드래곤 라자'라고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이 있다. 독서 목록 중 몇 안 되는 판타지 소설이었다. 열 권인가로 이루어진 소설이었는데, 도서관에 앉아서 하루 만에 다 읽고 다음날 그다음 날까지 총 세 번 정도 반복해서 읽을 만큼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거기에서 그림자가 없는 마을이 나온다. 사실 읽은 지 오래돼서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둠인가가 사라져서 그림자가 없어진 마을이 나온다. 그림자가 없어진 마을은 아주 기괴하고 괴상한 모양새를 하고 있으며 작열하는 태양에 모든 것들이 말라죽는다는 그런 내용이 있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기억의 조작이 있을 수 있다.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어둠만이 존재하는 세상도, 빛만이 존재하는 세상도, 아마 세상다운 세상은 되지 못할 것이다.
태양이 너무 뜨거운 날에는 그늘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빛 속의 검은 한 점이 되고, 햇살 뜨거운 날 그늘이 되고,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는 명암이 되고, 모두가 빛이 되려 한다면 한 명쯤은 어둠이 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마음의 그늘이 되고, 빛을 더 밝아 보이게 하고, 사람을 사람답게 세상을 세상답게 하는, 어둠이 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저 빛을 위한 배경이더라도, 배경이 없는 세상은 없으니까.
예전에 쓰인 시들을 읽으며 그들이 시 안에 심어 놓은 그늘을 보곤 한다. 어떤 문장에는 정의로, 어떤 시구에는 희생으로, 어떤 단어에는 의지로, 어떤 마침에는 간절함으로, 가슴을 울컥하게 하는, 빛 속에 가려져 있더라도 언젠가는 더 선명하게 떠오를, 투박하게 찍힌 먹물 같은 어둠.
그런 글을 쓰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면 좋겠다.